무계획 여행의 정점
계획하지 않는 것을 계획하다
몇년 전 준비된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회사를 그냥 그만 뒀다. 사실 '그냥'은 아니고 월급을 포기하기까지 수천, 수만번의 고민 끝에 내 마음의 건강을 챙기기로 용기를 냈다. 아무 계획도 없었다. 일단 3개월 이상은 쉬어야지. 그리고 해외여행을 떠나야지. 이 정도의 생각으로 백수생활을 시작했다.
우선은 휴양이 필요해서 발리로 떠났다. 11일 간의 달콤했던 여행의 맛.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가고 싶은 나라와 루트를 짜다 보니 40일 정도의 일정이 됐다. 포르투갈은 그 중 마지막 나라였다.
포르투갈을 다녀온 사람들 모두 '포르투'라는 도시를 너무나 좋았다고 말했다. 나또한 그러했다. 모루정원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질리지가 않았다. 혼자 떠났지만 많은 친구들을 포르투에서도 만났다. 잔디밭에 각자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고 나눠 먹으며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깜깜해진 뒤의 야경도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을 거쳐오며 만난 여행 동행자들 중 포르투의 이 광경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포르투에는 렐루 서점이라는 명소도 있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모티브가 됐다는 공간.
서점에 갔던 날엔 비가 조금 왔다. 그 전에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젤라또도 하나 먹었다. 사진은 아주 화창한 순간을 담았다.
포르투에 묵는 동안 자주 갔던 전망대. 직전에 여행했던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방문했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근교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발목을 접질러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귀국해야 하나 할 정도로 왼쪽 발목이 심하게 부었다. 병원에 갔지만 소염제와 양말 같은 붕대만 신겨줬을 뿐. 한국이었다면 반깁스를 할 정도의 상태였다는 걸 귀국하고 나서야 알았다.
아무튼 돌아갈 수 없었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의 10여일 이상이 남아 있었다. 원래의 계획은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세비야-그라나다를 여행하고 포르투갈로 날아가 포르투-리스본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스페인은 많이 걷고 돌아다녀야 하는 일정들이었고 포르투갈, 특히 포르투는 거의 무계획으로 쉬엄쉬엄 도시를 즐길 생각이었다. 그래서 스페인의 2개 도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급하게 포르투에서 머무는 일정을 일주일 정도 늘렸다. 에어비앤비로 쉬기 좋아 보이는 숙소를 예약했고 낮잠도 많이 자고 여독도 풀며 여유있게 지냈다. 3층인 걸 모르고 예약했던 건 안 비밀. 그 계단을 오르내리냐고 발목이 악화되었을 지도 모를 일.
포르투 일주일 살이를 마치고 리스본으로 넘어왔다. 웬걸 리스본이 너무, 너무너무 좋았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일단 친근하고 친절했다. 한국 정서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리스본은 수도라고 하지만 아주 많은 언덕들로 이루어진 낭만 가득한 도시였다. 내가 상상하던 복잡한 도심의 느낌은 없었다.
여기저기 자유롭게 (택시로) 다니고 구경도 발 닿는 대로 했다. 발목 부상으로 합법적으로 택시를 타고 다니는 호사를 누렸다.
이런 악세사리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잔뜩 사왔고 후회 없다. 코르크 재질의 기념품들도 여러가지를 사왔는데 선물하기 좋았다.
리스본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이 노란 트램이다. 아쉽게도 타보진 못했다. 워낙 무계획으로 다니다보니 트램 앞에서 사진찍고 타봐야지 하는 날이 노란 트램이 운행하지 않는 날이었다. 그래도 사진은 유럽여행 통틀어 베스트컷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컷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에그타르트(나타)도 빠질 수 없다. '1일 2 나타'를 꼬박 먹었다. 떠나는 비행기에도 5개 포장해서 함께했다.
포르투갈에서는 날씨가 거의 계속 좋았다. 싱그러운 초목과 햇볕에 매일매일 감사했다.
그냥 어디를 찍어도 엽서 같이 나온다. 포르투갈을 생각하면 저 오렌지색 지붕이 항상 떠오른다.
현지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장면들일 수 있지만 사진으로 담으니 그럴싸하게 남은 거 같다. 스마트폰 배경화면으로 쓰기에 좋은 사진들 같다고 생각한다.
포토에세이,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겠고 그냥 이렇게 써볼라고 한다. 잘 나온 사진들과 함께 기승전결 없이 내 감상과 느낌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포르투갈 여행했던 시간들을 떠오르니 미소가 지어진다. 다음 편에 소개할 사진들도 얼른 골라 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