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
무엇을 입어야 할까
박현주
5월이라는데, 옷장 앞에 멈춰 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두툼한 외투를 걸쳐야 할 만큼 쌀쌀하더니, 어제부터는 여름의 기운이 불쑥 찾아와 후텁지근한 열기를 뿜어낸다. 무엇을 입어야 할지, 작은 혼란 속에 서성인다.
스마트폰으로 날씨 예보를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영락없는 초봄이던 기온이 순식간에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얇은 블라우스에 가볍게 카디건을 걸쳐볼까 하다가도, 오후의 볕에 덥고 땀에 젖지나 않을까 망설인다. 작년 이맘때 나는 어떤 옷을 입었더라? 기억은 아스라이 흐릿하다.
한때 계절은 비교적 명확했다. 봄이면 개나리와 벚꽃을 신호 삼아 화사한 봄옷을 꺼냈고, 가을이면 낙엽의 색 변화에 맞춰 두툼한 니트와 코트를 준비했다. 그러나 이제 봄과 가을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간다. 사계절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자연의 예고편 같던 변화의 징후들도 희미해졌다.
올해 봄, 순례 여행길에서 나는 다시 한번 옷 선택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봄이니 따뜻할 것이라 생각하고 반팔 티셔츠며 얇은 옷만 챙겨갔지만, 뜻밖에도 바람이 매서웠다. 나는 덜덜 떨며 걷다가 결국 동행 중 내가 구역장을 역임했을 때 다른 구역장을 했던 실비아에게 경량 패딩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실비아는 여러 벌을 준비해 왔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는 그 옷에 의지했다.
돌아오는 날,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세탁 후 돌려 드리겠다고 했지만, 실비아는 손사래를 쳤다. "절대 괜찮아요. 내가 세탁해서 입으면 돼요." 나는 결국 그 말을 믿고 조심스럽게 옷을 건넸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 따뜻했던 패딩과 실비아의 배려가 생각나 조금은 미안하고도 고마웠다.
지구의 기후 위기는 나와 무관한 뉴스 속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옷장 앞의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현실로 다가왔다. 한겨울의 폭설과 한파, 그리고 예고된 장마와 폭염은 개인의 일상 속에도 균열을 만든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는커녕, 예상할 수 없는 변수 앞에서 머뭇거림은 더 길어졌다.
옷을 고르는 문제를 넘어, 이는 삶의 리듬과 속도, 기준점이 흔들리고 있음을 일깨운다. 계절의 변화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시간들이, 이제는 들쑥날쑥 예측 불가능한 리듬으로 내 삶을 관통한다.
그래도 해는 뜨고 달은 지듯, 우리의 일상은 계속된다. 나는 오늘도 옷장 문을 열고, 주춤거리다 결국 날씨에 맞는 옷을 고른다. 변화 속에서도 균형을 찾고자 하는 작은 몸짓이다. 내일은 또 어떤 날씨가 기다릴까. 그리고 내일, 나는 다시 어떤 고민 앞에 서 있을까. 옷장 앞에서의 이 짧은 사색은, 어쩌면 변해가는 세상과 그 속의 나를 응시하는 일상의 성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