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마음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냉장고 깊은 곳에서 묵은 장조림 하나를 꺼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코끝이 찌릿하다. 무심코 밀어두었던 음식들이 언젠가부터 내 식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마음속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제때 꺼내지 못한 말, 돌려주지 못한 미안함, 미루기만 했던 용서 하나. 말하지 못한 감정들은 속에서 발효되고, 때론 독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아물겠지, 잊히겠지, 그렇게 덮어두었는데 어느 날 꺼내 보니 이미 상해버린 말들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마음의 유통기한을 확인해야 한다. 더는 품고 있으면 안 되는 감정, 더는 묵히지 말아야 할 생각. 유통기한 지난 반찬은 미련 없이 버리면서, 왜 마음만은 그렇게 오래도록 붙들고 있었을까.
오늘은, 장조림과 함께 오래 묵힌 서운함 하나도 조용히 내보냈다. 그리고 마음 한켠을 비워두었다. 서운함이 머물던 자리에 이해를 놓아두고, 미처 다하지 못한 말 대신 늦었지만 따뜻한 안부를 떠올렸다.
우리는 매일 밥을 짓고 반찬을 새로 차리듯, 마음
도 날마다 새로 정돈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상하지 않게, 썩지 않게, 내 안의 것을 때맞춰 꺼내고 다시 부드럽게 덮어주는 일. 그렇게 삶의 맛이 조금씩 깊어지는 것 같다. 오늘의 식탁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듯,
마음의 식탁도 내일 또 새로이 차려갈 것이다.
에필로그
식탁은 다시 차려진다. 누군가의 밥상에 초대받는 일이 이렇게도 고마운 일이었나 싶다. 허기진 배보다 허기진 마음이 먼저 반응했던 날들.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고 나서야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다.
밥은 매일 먹지만, 매일 같은 마음으로 먹진 않는다. 어느 날은 화해의 밥, 어느 날은 눈물 섞인 밥, 어느 날은 겨우 입에 넣는 생존의 밥. 하지만 그 모든 날을 지나고 나면 결국 우리는 또 식탁 앞에 앉는다. 혼자든, 둘이든, 여럿이든 누군가를 위해 다시 밥을 짓고, 반찬을 고르고, 자리를 내어준다.
이 글들을 쓰는 동안 나도 내 마음의 식탁을 정리했다. 버릴 건 버리고, 데워야 할 건 데우고, 다시 꺼내야 할 이야기들은 조금 더 정성껏 담아보았다.
살다 보면 말도, 관계도, 밥처럼 식는다. 하지만 또다시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식탁은, 언제든 다시 차려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