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울 때는

by 빡작가

그리울 때는


그리울 때, 오래된 앨범의 바랜 사진 위를, 책장에 꽂힌 낡은 편지의 봉투를, 선반 위에 조심스레 올려둔 작은 기념품을. 따뜻한 촉감, 거친 표면, 손에 익은 감각들이 시간을 거슬러 간다. 눈을 감으면 더 생생하다. 결혼식 날 아버지의 촉촉한 손의 온기가 기억난다. 마치 어린 시절, 운동회가 끝난 후 땀에 젖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때처럼 그날 아버지의 감촉은 남아 있다.

그리울 때, 한없이 다정해진다. 사소한 기억 하나도 소중하게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인사, 길가에 핀 들꽃을 보고 나눴던 짧은 대화, 지친 하루 끝에 나눈 따뜻한 눈빛. 일상 속에서 무심코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다시금 가슴속에서 살아난다. 동생이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그 순간을. 짧은 휴가가 끝나갈 무렵 말없이 앉아 있던 동생의 표정을 어머니는 안쓰럽지만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울 때, 느려진다. 나는 언제나 바쁘다. 걸어가는 것보다 뛰어다닌다. 그리울 때 바쁘게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디딘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리움은 나를 잠시 붙잡아 놓는다. 동생이 휴가 마지막 날, 문 앞에 서서 돌아가기 싫다며 발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국, 바람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울 때, 나는 음악을 듣는다. 오래전 좋아했던 멜로디를 다시 들으면, 그 시절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Queen의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이 멀리서 들려오고, 누군가의 웃음소리처럼 흩어진 기억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나를 감싼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기타 치며 따라 불렀던 “Bohemiam Rhapsody”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가사의 뜻을 이해했을 때의 묘한 감정까지 함께 가슴속에서 꿈틀거린다.

그리울 때, 나는 한 줌의 바람을 잡아본다. 바람은 잡히지 않지만,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의 감촉이 있다. 손끝에 남는 잔향처럼, 그리움도 그렇게 한 번 스쳐 지나가면 된다. 붙잡으려 하면 멀어지고, 놓아주려 하면 더 깊어지는 감정. 문 앞에서 망설이던 동생이 결국 등을 돌리고 떠났을 때, 바람이 그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나는 그 바람을 따라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나에게 남아, 지금도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그리울 때, 나는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도 변할 것을 안다. 깊어질 수도 있고, 옅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그리움조차 따뜻한 추억으로 변할 순간이 올 것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나누었던 그때의 감정을 다시 한번 꼽 씹어보게 한다. 그리움이 스며든 지금을 조용히 안고 살아간다.


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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