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순간에 피어난 자유
박현주
코타키나발루로 떠난 여행. 공항 문이 열리자, 한 덩어리의 공기가 나를 삼켰다. 습기와 냄새, 낮게 깔린 활기까지 순식간에 피부로 스며들었다. 익숙함은 뒤로 밀려나고, 낯섦이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떨어짐’으로, 여행은 진짜가 되었다.
휴대폰이 내 손끝에서 미끄러져 딱, 하는 짧은 충격을 남기고 바닥에 누워버린 순간. 빛을 잃은 화면이 나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또 한 세계가 꺼진 듯한 공백. 그 작은 물건에 이토록 깊이 기대고 있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그 휴대폰은 마치 자유를 찾아 헐헐 떠난 연어처럼 나와의 연결을 단칼에 끊어버렸다. 첫날 하루는 길었다. 불편함이 길을 늘이는 듯했다. 길이 좁아지면 마음도 좁아진다는 말을 그날 이해했다.
처음에는 불편함이 내 곁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손을 뻗을 때마다 ‘없음’이 돌아왔고,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듯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하루가 지나고 두 번째 날이 시작되자 그 불편함은 서서히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연락이 닿지 않으니 생각도 단순해졌고, 기록하지 않으니 순간 자체에 마음이 닿았다. 검색으로 미리 ‘알아버리지’ 않으니, 눈앞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 더욱 선명했다.
이번 여행은 남편의 친구 부부와 두 번째 동행이었다. 작년 같은 계절에 함께했던 첫 여행에서는 서로의 말을 조심스레 고르고, 감정의 선을 살피며 맞추어 갔다.
하지만 두 번째 여행 각자의 온도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어색함보다는 반가움이 먼저였고, 표정 속 숨은 의미를 억지로 해석할 필요도 없었다. 여행은 우리의 마음을 천천히 데워주었다. 조금 느리고, 좀 더 수다스럽고, 약간의 서툶도 농담처럼 흘려보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어떤 관계는 대화를 많이 해서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속도로 걸어가며 깊어진다. 그들과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웃는 타이밍과 침묵의 여백까지 함께 나누었다.
남편과 친구들은 유난히 술을 좋아했다. 낯선 장소, 익숙한 사람, 그리고 여행이라는 비현실성이 그들의 잔을 자꾸만 채우게 했다. 가볍게 웃으며 넘길 때도 있었지만 여자들끼리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저 정도면 술이 여행하는 게 아닐까?”
피식 웃음이 새었고, 그마저도 그곳에서는 풍경이 되었다. 여행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기보다 느슨하게 만드는 게 더 먼저였다.
일정 중에 패러세일링을 했다. 배 위에서 낙하산을 펼쳐지고 하늘 쪽으로 천천히 끌려 올라가던 순간은 말로 온전히 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지상에서 멀어질수록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졌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멀어진 사람들의 모습이 작은 점으로 줄어들수록 나는 그동안 쥐고 있던 것들이 꼭 필요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도 파도가 흔들리는 리듬도 내가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불안정함 속에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있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만, 정작 마음을 쉬게 하는 건 예상 밖의 순간들이다.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파도에 몸을 맡기며 헤엄치다 보니, 아이들 어릴 적, 바닷가에서 놀던 모습이 떠올랐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겁도 없이 맞으며 까르르 웃던 얼굴. 파도가 세게 밀려와도 금세 일어나 다시 파도를 향해 뛰어가던 뒷모습에서 실패에 익숙해지기 전에 포기하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던 것일까.
그 용기를 찬탄했었다. 나는 물을 완전히 편안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장이 빠르게 두어 번 뛰는 순간이 있고 숨이 가빠지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물 위에 몸을 맡기면 조금씩 천천히 숨이 깊어진다. 파도가 다가올 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 도망이 아니라 여백이 될 수도 있다.
다음날 래프팅했다. 물살은 생각보다 순했고, 노를 젓는 팔은 금세 묵직해졌다. 서로의 탄성과 웃음이 섞여 강물 위에 흩어지고, 얼굴에 닿는 물방울이 잠든 감정을 깨우는 듯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타잔이었다. 멋지게 하늘을 가르는 순간을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해 놓고 줄을 잡고 발을 내디뎠지만, 몸은 내 기대를 배반했다. 어딘가 어정쩡한 각도로 뛰어올라 나는 예정에 없던 자세로 강물에 풍덩 빠졌다. 주변에서 터져 나온 웃음. 물속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어쩐지 더 맑아 보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가능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날 조금 알았다.
저녁이 되었다. 파도가 잔잔한 소리를 내며 밀려왔다. 해 질 무렵의 바다는 하루의 수고를 다 받아낸 듯 조용하고 넓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산토리니, 피지와 함께 이름을 올리는 세계 3대 명소 탄중아루 해변이었다. 사람들은 해변, 가장자리에 서거나 앉아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찰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화면이 꺼진 채였다.
그런데 그날, 하늘은 석양 대신 비를 데려왔다. 흐린 구름이 수평선을 감싸고, 바다는 잔잔했지만, 빛을 품지 못했다.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우산 아래로 비켜섰다. 누군가는 “오늘은 그림이 아니네요.” 하고 웃었다. 나도 잠시 실망을 느꼈지만, 비로 씻긴 바다는 더 담담했고 하늘은 모든 색을 숨긴 채 다른 무언가를 남기고 있었다.
해가 지는 장면을 보지 못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흐린 하늘 아래에서 배웠다. 때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눈부신 빛이 아니라 조용한 흐림 속에 찾아온다는 것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부서진 휴대폰을 들고 수리점에 갔을 때 40만 원이라는 수리비를 들으며 나는 잠시 멍해졌다. 결국 새 폰을 장만했다.
며칠 동안의 공백. 그 공백이 오히려 내 안의 소리를 다시 듣게 해 주었다. 손을 비우자 마음이 채워졌다. 화면이 꺼진 사이 내 안의 창이 켜졌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간다. 연결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증명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 시대에 사는 우리. 그러나 그 며칠의 여행은 나에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움직임이 없다고 삶이 멈춘 것은 아니라고. 기록이 없다고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연결되지 않아도 마음은 닿을 수 있다고. 끊어진 순간에 피어난 자유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었다. 그저 고요하게 스며드는 작은 바람 한 줄기였다.
손끝이 비어 있으니 마음의 주머니가 열렸다. 이제 나는 핸드폰을 켤 때마다 숨을 한 번 고른다. 작은 화면 속 세상은 손쉽고 빠르고 정확하지만, 눈앞의 세상은 느리고 불완전하고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끊어진 순간에 피어난 자유는 크게 외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다가와 마음 한가운데 작은 쉼터를 만든다.
다시 일상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나는 그 자유를 잊지 않기로 한다. 불완전한 순간이 오히려 온전한 나를 드러내는 때가 있다는 것을.
손을 비우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 그 여행. 그 기억을 꺼내 볼 때. 언제든 잠시 멈추고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용기가, 내 안에 남아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오늘도 손에 쥔 작은 화면 너머로 조금 더 다른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의 한 자락으로 그날의 바람과 햇살을 다시 받아낸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이 조금 더 가볍다.
잠시 멈출 수 있고, 잠시 비울 수 있고, 그사이에 다시 채울 수 있는 시간 그날의 바닷소리를 기억하며 그 멈춤이 그 자유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