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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Oct 22. 2021

직장을 다니며 부모님을 찾아 뵙는다는 것

2021년 8월 27일의 기록

2020.12.23 / 청도 / Sony a7r2 / Sony 55mm f1.8

대학시절, 불안정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때는 부모님이 나에게 주는 심리적 풍요로움, 물리적인 보살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오롯이 나에 대한 고민과 걱정들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잘 차려준 밥상이 있었고, 내 방을 폭탄 투하 현장으로 만들어 놓아도 학교를 다녀오면 잘 정리된 방이 나를 맞이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 후 가정을 이루었다. 아직 부모가 되지는 못했지만, '아이를 가져볼까'생각이 드는 요즘 부모님들이 나에게 해 주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된다. 내 방을 청소하고, 저녁밥을 해 주고, 빨래를 개어주고, 나의 말을 들어주고, 용돈을 주고, 응원을 해 주는, 그 모든 하나하나가 그분들의 치열한 노력이었다는 깨달음. 


고등학교 시절 공부로 스트레스에 짓눌려 살던 시절, 부모님을 대상으로 온갖 감정을 쏟아냈었다. 그 기간이 꽤 길어서,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나의 어려움을 알아달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부모님에게 나의 힘듦, 짜증남, 불안함, 초조함을 짊어지우게 했다. 그때 난 내 감정만 생각하는 누구보다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특별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슬픈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은 채.   


부모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음에도, 학창시절 부모님을 의지해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음에도, 직장이란 곳을 다니고 있는 요즘 지치고 힘이 들 때 나는 부모님을 찾지 않는다. 나의 힘듦을 외면하실 분들이 아니고, 누구보다 나에게 심리적 치유를 선물하실 분들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스트레스에 짓눌릴 때면 부모님을 찾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스트레스가 대부분인데, 그 스트레스를 사람에게 의지해서 풀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그런 걸 거야'

'부모님이 직장 스트레스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분들에게 말하지 않는 건 아닐까?' 


난 그저 더 이상 부모님은 내 감정의 짐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뿐이다. 나의 힘듦이 그들의 힘듦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마음. 

아버지가 퇴직을 하시고, 부쩍 기운이 없어진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청도에 놀러 가면 아버지는 우리에게 본인이 열정 하시는 일에 대해 말했고, 그때 느껴지던 생기가 사라진 느낌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앗, 또 말이 좀 길어지시겠네'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듣지 못하게 된 지금은 그 이해되지 않는, 아버지의 생기만 느껴지던 그 이야기들이 그리워진다. 


아버지의 퇴직 이후에 '이제는 부모님이 나와 형에게 조금은 의지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해 본다. 학창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이라도 아픈 곳이 있으시면 투정도 부려 보신다거나, '어느 영양제가 좋다더라' 슬쩍 말도 해 보신다거나. 


'오늘 옆집에 있던 아줌마가 또 주차를 이상하게 했지 뭐야' '이상한 차가 자꾸 우리 땅에 주차를 해 놓아서 자동차 주차할 곳이 없어' '고추를 잔뜩 심어놨더니 벌레가 다 갉아먹었지 뭐니'라는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지만, 부모님이 나에게 격의 없이 투정을 부렸으면 좋겠다, 생각해 본다. 내가 학창 시절 그랬던 것처럼.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게 되면 부모님 집이 가까운 거리에 있더라도 자주 찾아뵙기가 쉽지 않다. '치열하게 살았던 주중에 대한 보상으로 주말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니까'라는 것이 나의 가장 좋은 핑계이다. 부모님이 나를 항상 기다리시고, 자주 찾아오기를 바란다는 것도 알지만 그렇게 하기가 참 쉽지가 않다. 

마음은 백번 찾아뵙고 싶지만, 참 그 마음을 실천 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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