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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망 Feb 27. 2022

30평대에서 20평대로 이사를 했다.

2022년 2월 21일의 기록

2022.2.26 / 이사한 새집 / sony a7r2 / sony 28mm f2.0


전세로 집을 구해 살다 보면 내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이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2년 전 근무지를 옮기며 직장 근처의 전셋집을 구해 살다 보니 2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고 계약기간 만료일인 2022년 2월이 다가왔다. 시간은 참 상대적이다. 직장을 생각하면 2년이란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갔었던 것 같은데 전세계약 기간인 2년이란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전세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전세 연장 청구권'이라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집주인이 전세 계약된 집에 전입을 한다고 세입자에게 말하면 세입자는 전세 연장 청구권을 쓸 수도 없고 얌전히 이사할 준비를 해야 한다.  


뭐든 미리 준비해야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 탓에 전세계약 만료 5개월 전부터 새로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출퇴근이 편리하고 직장과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으로 지역을 한정해 이사할 집을 구하다 보니 쉽사리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약 3주 여간 여러 부동산과 집을 직접 방문하면서 이사 날짜 협의가 가능하고 직장과도 가까우며 원래의 전셋집과 전세금이 같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원래 살던 집보다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만 한다는 점. 아파트 매매가와 함께 올라버린 전세 시세로 인해 30평대에서 20평대로 이사하게 되었다. 


10평의 공간이 줄어든다는 것에서 아주 잠깐 설움을 느꼈다. 주거공간에서의 여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백으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나였기에 더욱 서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2인 가구라 20평대의 집에서도 충분히 불편함 없이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서러움은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나의 마음을 잠식했다. 전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송금하니 이사를 해야 한다는 현실이 더욱 깊숙이 다가왔다. 현실을 직시하니 설움은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평소에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터라 지금 상황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으로 내 좁은 마음에서 서러움이란 불청객을 쫓아 보냈다. 서러움이 나간 마음의 자리는 '비움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찼다. 주거공간이 좁아지는 만큼, 좁은 공간에서도 여백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사 전까지 쓸모없는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원래 버리는 것은 좋아하고 나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나는 이번 이사를 '쓸모없는 것을 버리는 기회'로 삼았다. 성격이 급한 나는 계약서에 찍은 도장 인주가 마르기도 전에 옷방, 앞 베란다, 뒷베란다를 오고 가며 버릴 것들을 빠르게 스캔했다. 5년의 결혼생활 동안 이것저것 쌓아놓고 살다 보니 베란다에는 출처와 쓰임을 도무지 알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사까지의 4개월 동안 차근차근 정리하고 버릴 생각을 하니 또 다른 인생의 목표가 생긴 것 같이 생기가 돌았다.


버릴 물건과 정리할 물건을 나누는 기준은 명확했다. '지난 2년간 단 한 번이라도 나와 구일이가 사용한 물건인가?' 사용을 하지 않았던 물건이라면 아무리 쓰임이 좋아 보이는 물건이라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을 선택했고, 사용을 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이라면 과감하게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스트레스를 풀 겸 물건들을 분류해 하나하나 버려갔다. 그렇게 버리다 보니 이사할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고 집은 여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참 피곤한 일이지만 육체적으로는 더더욱 피곤한 일이다. 2년 동안 정리 잘된 집에서 살기 위해 이사 후 일주일의 정리가 참 중요하다. 양가 부모님들의 재능(?) 지원으로 헤진 문지방에 페인트칠을 하고 새로운 커튼을 달았다. 드레스룸을 깔끔히 정리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스탠드 조명을 방마다 설치하니 나름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완성되었다. 비록 내가 원했던 주거공간의 여백은 많이 없지만 작아진 공간이 더욱 따듯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넓은 평수에서 좁은 평수로 이사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묵은 짐을 버릴 의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버리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이사에서 배웠던 가장 큰 교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조금은 거창할 수도 있지만 이사를 하며 이사와 인생을 살아내는 것에 공통점을 발견했다. 버리다 보면 여백이 생기고 여백에 새로운 것을 채우며 행복을 느낀다는 점. 물론 이사는 일회성이 짙은 행위이고 일상을 살아내는 것은 지속성이 짙은 행위이지만 이사하며 묵은 짐을 과감하게 버리듯 하루하루 쌓아둔 마음의 짐 또한 잘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는 점에서 둘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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