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망 Jul 25. 2022

잊고 있었다, 회식 스트레스

2022년 7월 25일의 기록

2020.4.5 / 집 앞 지하철 역 입구 / sony a7r2 / sony 55mm f1.8


코로나가 창궐하며 직장인의 회식 문화도 참 많이 바뀌었다. 2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회식을 하곤 했었지만 코로나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은 인사발령이나 승진 등 특별한 인사상 이벤트가 있을 때에만 1차에서 간단히 끝나는 회식을 하곤 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심각하게 지향하는 나는 이러한 회식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속으로 참 반가웠다.


 지나가는 말로 선배들이 '예전에는 같이 노래방도 가고 2,3차까지 가서 맥주도 마시고 참 좋았는데 말이야'라고 말하면 리액션이 고장 나곤 한다. 머리로는 '긍정의 웃음을 짓자'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그 간단하던 웃음 짓기가 쉽지 않다. 귀가 본능이 있는 나로서는 현재의 회식 문화가 참 반가운 직장문화의 쇄신처럼 느껴진다.


최근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니 회식 이야기가 슬금슬금 나오곤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는 거라고, 회식 이야기가 나온 그다음 주 바로 회식이 잡혔다. 원래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 굳게 믿고 회식 이야기만 들으면 스트레스가 자연스레 올라왔지만 오랜만의 회식이라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부서에는 소위 말해 '꼰대'라 할 사람도 없었고 술도 와인으로 준비했다고 하니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는 되지 않을 터였다. 회식 장소도 대구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경치 좋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라고 하니 딱히 싫어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회식 날이 되어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직원들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회사 동료들과 분위기 있는 곳에서 식사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포함한 회사 직원들의 분위기와는 약간 어울리지 않는 잔잔한 재즈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바깥이 어둑해질수록 야경은 더욱 빛났다. 오랜만에 눈과 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와인 1병이 3병, 4병을 부르는 지경에 이르자 잊고 있던 회식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회식에서 오는 첫 번째 스트레스는 회사 밖에서도 회사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회사 동료들의 성격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회사 밖에서 하는 회사 이야기가 흥미롭고 좋을 리 없다. 단순히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만 하면 좋으련만 "대리 때는 응당 이래야 하고, 차장 때는 응당 저래야 한다"라는 약간의 편견 섞인 말을 듣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다. 


두 번째 스트레스는 소통의 부재에서부터 출발한다. 회식은 큰 틀에서 보면 사람들과 모여 의견을 나누는 모임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친구나 가족들과 모임을 가질 때는 대화의 주제에 대해 나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하며 감정과 심정을 공유한다. 나와 타인이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스트레스가 풀리고 타인과 나의 공통점이 발견되면 그 사소한 사실에 크게 감동하기도 한다. 


회식은 앞서 언급한 친구나 가족 모임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모두가, 그리고 모든 자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뱉은 말들은 아주 날카로운 시선으로 공감이 결여된 평가를 받게 된다. 


'언제부터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나?'

'회사 입사하고 두드러기 등 피부병으로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회사 들어오기 전에 술을 마셨으면 마실 수 있는 데로 일부러 술을 안 마시는 거네. 술은 좀 마실 줄 알아야 하는데' 


'골프는 왜 안치지?'

'골프보다는 러닝이나 웨이트 같은 땀내는 운동을 더 선호합니다. 그리고 골프를 치게 되면 돈을 많이 쓰게 되어서 아직은 부담스러워요'

'그래도 나중에 나이가 들고 하면 골프 만한 운동이 없어. 골프는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해'


위 대화들은 수많은 답이 정해진 대화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내 의견에 대한 그들만의 답이 정해져 있으니 의견을 피력하기가 두려워지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저 별로 공감하지도 않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하는 무기력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8년간 회사를 다니다 보니 마음이 맞는 직원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10년 이상 근속기간 차이가 나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후배인 내가 먼저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 등 시간이 날 때 만나자고 제안할 만큼 나에게는 편안한 분들이다. 이분들과의 모임에 회식이라는 이름은 붙이지 않는다. 그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한 날들의 연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