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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알파고와 탄핵, 그리고 오늘

마음이 시끄러운 요즘

by 박 스테파노

8년 전엔 엄중한 탄핵의 결정이 내려졌다.

9년 전엔 알파고와 이세돌의 두 번째 대국이 있었다.


과거의 두 가지 일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기묘하게 연결되는 생각들이 있다.

시끄럽던 그 시간은 옛날 일이 되어 세상 조용해질 것이다.

시간차를 둔 두 사건을 속이 복잡한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1.

난생처음으로 아니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재판과 대국을 실시간으로 중계받아 보는 일 말이다. 그리고 결과를 이성적으로 예견하면서도 예측의 실패를 내심 두려워하며 지켜보았던 기억.


2.

결과를 보고 해석하는 관점은 저마다였다. 어떤 결과이든 마치 금방이라도 어마무시한 일들이 생겨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작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만 같은 사건이 휘몰아친 뒤 달라진 것은 딱히 꼽아 보기 어려웠다. 그저 미소한 인간보다 더 작은 티끌 같은 바이러스에 전 세계가 얼어붙었을 뿐이다.


3.

알파고... 중개하는 사람들의 말끝마다 알고리즘이니, 한대가 아닌 수 천대의 컴퓨터라니 1초의 십만 수의 연산이라니,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틀리지도 그렇다고 꼭 맞지도 않는 말들... 이러한 준비되지 않은 의견의 제시는 용감하기까지 했다. 무지는 용기를 부여했다. 이런 무지는 지금도 여전하다. AI가 만사형통의 암구호가 되어 버렸다. 아직도 국가부처의 70개의 주요 데이터는 서로 상호 참조도 안 되는 올드 사일로(Old Silo)어 갇혀 버린 지 오래다. 현실이다. 그러나 망상은 현실을 잠식하기 마련이다.


알파고는 AI시대의 도래를 예언했다. 사진=동아일보


4.

당시 국가원수는 신발에 붙어 있는 센서를 보고 인지컴퓨팅을 떠 올렸다. 알고 한 말이라면 알파고 수준의 분석력과 유추결론이겠지만 그저 무식함에서 비롯된 용기라면 재앙 수준이었다. 결국 1년도 지나지 않아 후자로 판명되고 말았다. 작금의 정치 지도자들은 달라졌을까? 제2의 엔디비아, HBM확보, AI굴기라는 텅 비어버린 허언만 가득하다. 그때는 눈앞에 센서라도 있었지.


5.

스카이넷과 기계인간이 우리를 지배할까 봐 걱정할 시간에 최적화와 분석의 모델링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윤리적 합의도출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것 없는 논의는 참 무서운 일이 된다. 그래서 이 바둑대국은 참 무서웠다. 그러나 아직도 디지털윤리와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대비는 미미하다. AI에 대한 산업 자본의 셈법이 더 중요한 인간 본성 수호의 숙의보다 앞서 있다. 아포칼립스의 도래가 아닐까.


6.

특정 이념이 이 세상을 지배할까 봐 두려워하는 시간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인지하고 머리를 맞대어야 했다. 옛날은 갔지만 사람들은 남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불길한 예감은 늘 척척 들어맞는다. 그들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깊었다. '우리'라고 착각했던 모두에 침습했던 그림자를 이제야 탓해서 무얼 할까. 이제 남은 이념이라고는 '확신'밖에 없는데 말이다. 모든 이기적 계산기를 통한 확신.


확신이야 말로 인류 최대의 적이다


7.

감성이 없는 지성; 비단 알파고와 같은 컴퓨팅만의 이야기는 아닐 듯했다. 그래서 감히 인지컴퓨팅으로 대체할 직업군을 꼽는다면 소위 이야기하는 '사'자 직업군, 즉 고강도 학습으로 자격을 얻은 뒤 감성 따윈 집에 두고 '기계적'으로 일하는 전문직들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밥그릇 타령이고 판검사는 재판을 거래의 시장에 올려놓았다. 오늘의 일이 아니다. 8년 전, 그전부터 주욱.


8.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임에도 그렇지 못하는 그 일들... 어쩌면 우리는 바라는 지도 몰랐다. 차라리 기계가 나을지도 모르니,,, 병원에서 법정에서 그리고 수많은 일상에서 전문적 지식의 견장에서 '인간'을 읽기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어쩌면 나도 그 부류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기계보다 더 인간미 없는 천한 자본의 꼭두각시... 꼭두각시가 되더라도 돈 통에 빠져 죽겠다는 새로운 세대들이 우리의 미래라니.


9.

그래서 알파고의 등장은 이따금 '혁명'이라 읽어지는지도. 기술과 산업의 혁명은 결국 사회의 계급과 계층을 뒤섞을 수도 있으니... 그래서 알파고 뒤에 있는 거대 자본주의의 거인이 두려운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욕망의 굴렁쇠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마치 권력과 자본의 결탁된 예상 어려울 만큼 막강한 힘은 혁명적 사건마저 컨트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 안에서 판 짜기를 하는 잘 포장된 썩은 생선은 썩어 냄새를 진동시킬 때까지 아무도 모를 수 있으니까.


10. 그래서 광장으로 나서야 한다. 여전히 촛불은 응원봉으로 준비되었고 광장은 갈려 있지만 언제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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