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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해방의 시작

사순묵상-08

by 박 스테파노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이 어제였다.

춘분은 equinox라는 라틴어/프랑스어 어원의 단어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동등(equi)한 밤(nox)을 뜻한다. 밤을 이기고 해가 더 들기 시작하는 춘분은 보리를 갈고 춘경을 시작하는 시기다. 보통 절기는 먹고사는 문제, 농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거리석이 되는데, 춘분은 '시작'을 알린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나이떡을 나이만큼 나누어 먹으며 겨울을 살아내어 실질적인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었고, 농사를 위해 일꾼들에게 떡을 먹여 머슴 떡이라는 문화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 민족만 춘분을 중요시한 것은 아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인들에게 중요한데, 춘분은 빠스카(과월절, 유월절)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였다. 이집트 디아스포라에서 해방을 맞이하는 모세의 탈출기의 클라이맥스인 장자를 죽이되 제물의 피를 바른 문지방을 건너(과월, 유월) 가는 날을 기리는 기념일의 시작이다. 보통 이날을 맞이해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선조들의 고된 탈출을 기린다.


이 과월절을 보내기 위해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해 수난의 시작을 알리니 기독교에서도 신ㆍ구약적으로 매우 중요한 절기다. 부활절은 춘분 후 보름이 지난 첫 번째 일요일로 지정하기에 교회력이 지금의 달력대로 지내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유대, 반기독교 세력의 본거지 이란도 춘분을 중요하게 지낸다. 페르시아력으로 새해의 첫날이다.


꽃을 피우겠지


길고 긴 겨울밤이 봄날 햇살에 점점 몸을 감추고 빛이 어둠보다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절기 춘분. 춘분을 기리고 맞이하는 이유는 저마다이겠지만, 큰 뜻에서 길고 길었던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는 의미가 깊다고 볼 수 있다. 겨울바람을 보내 꽃과 싹을 틔울 수 있는 충분한 햇볕이 보장되는 날들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니까. 실지로 새로운 생장의 시작이 된다.


하지만 춘분은 몸이 아픈 어르신들이 있는 집안에는 한 고비를 넘기는 임계점이 되기도 한다. 겨우내 잘 버티어 오다 봄바람에 그만 긴장을 늦추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몸이 힘들었던 내게도 중요한 시기다. 신약이 들어 반짝이고 있지만, 암 진행과 항암으로 숨어들었던 고질적인 자가면역질환이 올라오고, 그에 따른 통증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 또한 잘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봄날을 그린다.


지난 길고 긴 겨울 부여잡고 잘 버틴 만큼

꽃샘추위에도 놀라지 말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를

너와 나의 또 다른 봄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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