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묵상 03
요한 복음서의 마지막 장, 그 숯불가에서 들려온 "나를 따르라"(요 21,19)는 말씀은 쉬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 묘한 낯설음을 안고 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처음 베드로를 향해 발해졌던 그 음성과 같은 기표를 사용하지만, 이 두 번째 부르심은 사뭇 다른 맥락 위에 놓여 있다. 그것은 이미 세 번의 부인을 통해 처절한 실패의 심연을 경험한 제자에게, 부활의 신비를 통과한 스승이 건네는 말이기에 그렇다. 첫 부르심이 가능성의 약속이었다면, 이 두 번째 부르심은 실패 이후의 가능성, 낙담 너머의 회복에 관한 질문처럼 들린다. 우리는 과연 실패한 자신을 이끌고 그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 자신의 존재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가톨릭 전례의 신비 속으로 깊이 들어갈 때, 특히 성찬 전례 중 침묵의 순간들은 이 부르심의 또 다른 차원을 드러낸다. 제사장의 삼중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친밀한 동행'의 경험은, 어쩌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던지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7)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 마음의 가장 어두운 구석까지 비추시는 그분의 시선 앞에서 우리는 자문하게 된다. 나는 과연 주님을 사랑하는가. 만약 사랑한다면, 나의 삶의 우선순위는 진정 그 사랑을 증언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를 가장 솔직하고 때로는 가장 비루한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만드는 칼날과 같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풍경을 보라. 자본주의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물질'과 '성공'이라는 시대의 우상 앞에 무릎 꿇고, 배타적인 근본주의의 이념으로 이웃을 가르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절실한 외침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초대다. 부자 청년에게 "네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마르 10,21) 하셨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손에 움켜쥔 물질적 욕망과 사회적 성공이라는 허상을 내려놓고,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곁으로 다가서라는 근원적인 부르심이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본질에 관한 요청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교권 경쟁과 세속적 명예욕은 또 어떤가.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교회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아픈 지점들이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위계와 지배가 아니라 '형제애'다.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하신 말씀은 단순히 관리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조문을 넘어서는 사랑의 실천, 목숨까지 내어놓는 돌봄의 책임감을 가르치신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웃을 돌보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필수의 짐이다. 그것은 우리 안의 이기심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고독한 투쟁이기도 하다.
가톨릭 영성 전통, 특히 이그나티우스 성인의 묵상 방법은 이 부르심을 내면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감각적 상상(meditatio)을 통해 복음의 현장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숯불을 피워놓고 기다리시는 그 해변에 서서, 어둠 속에서 당신을 부인했던 비루한 자신과 마주하라. 그리고 숯불 곁에서 조용히 생선을 구우시는 주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따뜻하고 깊은 눈빛이 당신의 영혼 가장 깊은 곳까지 비추는 순간을 체험하라. 이 인격적인 만남, 이 용서와 수용의 순간이 바로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응답할 힘을 준다. 그것은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응답이 된다.
하지만 "나를 따르라"는 초대는 개인의 내면 신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교회는 세상 안에서 '신앙의 사도직'을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지닌다. 정의롭지 못한 구조와 불의 앞에 침묵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또 다른 방식일 수 있다. 노동자의 권리, 이주민의 아픔,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대변하는 데 교회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의 가장 구체적이고도 어려운 사회적 실천이다. 이것은 편안함과 안정을 내려놓고 세상의 고통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용기를 요구한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아들 예수님께 처음으로 기적을 청하셨던 성모님의 겸손하고도 확고한 믿음을 기억하라. 우리도 성모님처럼 "주님, 저를 이끌어 주소서"라고 겸손히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타인의 필요를 먼저 살피고 주님의 복음적 용기를 가지고 행동으로 증언해야 한다. 진정한 제자는 그저 '말을 듣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며 '사랑을 실천하는 자'이다. 그것은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묵묵히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오늘 이 복음을 통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드리는 묵상 기도를 떠 올려 본다.
부활하신 주님,
세속적 욕망과 이념의 파도 앞에 제 마음이 흔들리고 길을 잃을 때마다, "나를 따르라" 하신 당신의 음성을 기억하게 하소서.
물질적 성공이라는 덧없는 우상 대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기쁨을 알게 하소서.
이 땅에서 당신의 자비와 정의를 증언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오직 주님과 동행함으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걷는 당신의 참된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