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고 익숙한 일상에 대하여
오랜만에 퍼질러 잔 잠 끝
떡진 머리칼, 그 부끄러운 형체를
세면대에 처박고 씻어 누른다
오래간만에 돌린 텔레비전
저놈의 기계에선 더 이상
잔혹한 소식마저 없다
애써 구한 기일(期日)의 연장 덕에
낡아빠진 나를 마주할 뿐
불안감은 저만치 달아나고
결과 없이 늘어지는 일과는
마치 유예된 형벌처럼
그저 한 번의 롤러코스터라
스스로 속이며
이 봄의 한가운데
웅크리고 있다
저 밖에 세상 어떤 큰 사건이 터지든 말든
내 오래된 가려움증은
이 짓궂은 손을 멈추지 않고 긁적거리게 만들고
다달이 날아오는 청구서들은
단 한 푼도 변함없으니, 보아라
일상이라는 저 음습한 놈은
그렇게 조용하고 끈질기게
무섭게 삶의 대부분을
좀먹어 들어간다
그래, 그럼 그렇지
다시 이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기어들어가야겠지
저마다 소중하다는 제 삶을
이 음침한 일상으로
기어코 채워 넣어야겠지
나는
이 작고 조용한, 그러나 썩어가는 일상을
기어코 바꾸고 싶다
세상을 뒤엎으려면 내 삶
이 고약한 일상부터
뒤집어엎어야 할 터이니
산 너머 또 산이
그 너머 또 산이
끝없이 이어진 풍경 앞에서
털썩,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때
그때마다 나는
이 작은, 아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상의 변화를
부끄럽게나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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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것의 다른 의미는 불운한 일이 부재한 상태를 말한다. 불행한 소란도 불운한 소동도 없는 그런 날들이 역설적으로 행복한 날이 된다. 그러나 이런 평온이 지속되기는 참 힘들다. 외부의 일들이 없더라도 내 마음속이 시끌 시끌하니 말이다. 이럴 때면 나의 세계와 내가 어쩔 수 없는 세계를 분리해 마음 가져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것이 흐트러짐 없는 일상의 수행이다. 시간에 맞추어 기상하고 취침하며 밥을 먹고 열심히 일하다 독서에 빠지고 밀린 영화를 보는 일. 하찮아 보이지만 일상을 채우는 일이고 인생의 대부분을 쌓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