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회(句回)의 수사학
정치의 말과 시간은 서로 얽혀 있다. 12·3 내란계엄 쿠데타의 그늘과 탄핵 정국, 그리고 조기 대선을 거쳐온 우리 정치 풍경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내건 슬로건 “지금은 이재명”은 단순한 호명을 넘어 ‘정치적 순간의 소환’이다. 이 호명 앞에서 “이제는 이재명”이 더 알맞지 않으냐는 반대 의견은, 언어가 지닌 시간의 축을 어떻게 꿰어 넣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무엇이 맞고 틀린지, 옳고 그른지의 논의는 이 시대적 상황과 불화한다.
먼저 “지금은”이 겨냥하는 것은 ‘현재형 정치’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바, 정치적 행위는 오직 ‘지금‐여기’에서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 호명은 유권자들에게 “바로 이 순간, 당신의 행동이 정치를 만든다”는 긴박한 호출이다. 시간의 흐름을 일시 정지시키고, 그 한 점에 시선을 고정시킴으로써 독자는 결단의 틈바구니에 내던져진다. 이때 ‘지금’은 모래시계의 마지막 알갱이처럼, 한 알 한 알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마저 청각화되는 절박한 순간이다.
반면 “이제는”은 다른 감정의 지평을 연다. 서사는 과거에서 현재로 나아가며 의미를 쌓아간다. 헤겔식 변증법이 그러하듯, ‘과거의 부정 → 현재의 부정 → 새로운 정합’이라는 스토리텔링이다. “이제는 이재명”은 이미 과거 어느 지점에서부터 달려온 궤적을 종합해, ‘변화의 완결’을 선포하는 어조다. 그 말끝에는 성장과 성취의 여운이 배어 있지만, 동시에 ‘이미 이루어진 것’에 안주하고자 하는 유혹도 담긴다.
현대 사회학자 하르무트 로자(Hartmut Rosa)의 사회적 가속화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욱 ‘지금‐여기’의 즉시적 경험을 갈망한다. 속도가 빠른 만큼, 결과도 즉각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런 환경에서 “지금은 이재명”은 ‘지체 없이’ 행동하라는 동시대인의 심리를 포착한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이 경고한 리스크 사회의 불확실성 앞에서, 과거 경험으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여기’의 결단만이 유일한 보루로 남는다.
하지만 “이제는”의 품에도 의미가 있다. 유권자들이 과거 투쟁의 궤적을 복기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곱씹으며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갈 때, 그간 달려온 발걸음을 “이제는 완전한 민주의 시간”으로 규정짓는 힘을 발휘한다. 이는 마치 길을 잃은 자에게 나침반을 내미는 일과 같다. 지금껏 헤매온 여정을 반추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방향을 확고히 다지는 의식이다.
그렇다면 왜 민주당은 “지금은 이재명”을 선택했을까.
쿠데타와 탄핵의 격랑 속에서 정치적 시간은 파편화되었다. 불안과 분열이 일상화된 채,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여기”의 대세론을 분명히 보여주고, 참여의 모멘텀을 단숨에 불태워야 했다. ‘대세는 이미 이재명’이라는 인식을 지금 당장 확인시키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반대 의견이 지적하듯, “이제는 이재명”이 담을 수 있는 것은 정치 시간의 연속성이다. 과거의 상처와 분투를 우회하지 않고 직시하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도약’을 담담히 선언하는 울림이 있다. 그러나 그 울림은 느리게 퍼지고, 때로는 울림 자체가 성취된 것으로 착각될 위험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만의 언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문학가가 작품의 제목을 유심히 고르는 것처럼, 정치권도 언어의 시간 축을 곧잘 다룬다. ‘지금’과 ‘이제’는 미묘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구회(句回)를 만들어낸다. 한쪽은 긴장과 집중을 통한 즉각적 행동을, 다른 한쪽은 서사적 회고와 성찰을 통한 공감과 결속을 유도한다.
결국 구호의 승부는, ‘정치적 순간’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그리고 ‘대중의 심리’를 어느 지점에 묶어둘 것인가의 문제다. 민주당이 ‘파편화된 시간’을 한 점으로 응집해 승부를 걸고자 했다면, ‘지금은 이재명’은 최선의 카드였을 터이다. 반면 ‘이제는 이재명’의 늦깎이 낭만을 선택할 때는, 조금 더 느린 호흡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서사의 교향곡을 엮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언어는 이렇게 시간의 굽이마다 새로운 음악을 연주한다.
정치의 언어가 던지는 시간은 언제나 복합적이다. 12·3 내란계엄 쿠데타의 상흔과 탄핵의 파편들, 조기 대선이라는 격랑의 물살 위에서 "지금은 이재명"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이름 부르기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순간'을 움켜쥐려는 의지의 외침이며, 공기처럼 스며든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포착하려는 예민한 촉수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이유다.
결국 선택은 시간의 파편을 어떻게 꿰맞출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한 점의 강렬함이든, 흐름의 온화함이든, 구호는 정치적 순간을 포착하는 렌즈다. 공허한 메마름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언어는 그 순간을 어떤 온도로 기록할 것인가를 묻는다. 선택의 문제이자 결단의 응답이다.
정치의 언어는 언제나 변주곡이다. 그 변주 속에서 구호는 단순한 이름 부르기를 넘어, 시간의 결이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저마다 다른 음표를 남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재는 구호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라는 것. 그 세계에 대한 진심이 필요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