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허상, 권위의 분식- 위기의 '백종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의 세상

by 박 스테파노

최근 더본코리아의 주가는 백종원 대표를 둘러싼 연이은 구설수로 인해 출렁였다. ‘빽햄’ 품질 논란, 원산지 표기 오류, 불법 건축물 운영 의혹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부고발자는 “상표권 남용, 가맹점 갑질, 오리지너리티 과장”이라는 폭로성 주장을 메일함에 남겼다. 하루 뒤, 주가는 공모가 대비 급락했고, 시장의 차가운 시선은 더본코리아의 재무제표가 아닌 대표 개인이 구축해온 권위의 허상에 닿기 시작했다.


백종원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더본 코리아의 평가 하락으로 방송을 접고 기업활동에 매진하겠다 고개 숙여 사과하였다. 사진=연합뉴스



우삼겹이라는 말장난의 공학


장 보드리야르가 <시뮬라크르와 시뮬레이션>에서 지적했듯, 원본이 사라진 자리에 더 진짜처럼 보이는 복제품이 등장할 때 우리는 그것을 ‘진짜’라 믿는다. 백종원의 ‘우삼겹’은 그런 시뮬라크르의 전형이었다. 원래 존재하지 않는 부위를 새롭게 이름 붙이는 언어적 연출로 그는 일종의 요리적 착시를 유도했다. 얇게 썬 미국산 소 갈비살은 일본 규동집에서는 오래전부터 쓰이던 식재료였지만, ‘우삼겹’이라는 조어를 통해 전혀 새로운 음식처럼 제시되었다.


‘우’는 소를, ‘삼겹’은 돼지의 삼겹살을 의미한다. 전혀 다른 해부학적 종의 부위를 언어적으로 결합해 익숙한 듯 낯선 신조어를 만들고, 이를 자신만의 창조로 포장한 것이다. 이 조어는 마케팅의 도구가 되었고, 상표권 등록(레시피 특허가 아닌)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백종원은 기존의 요식업장에서 이미 판매하고 있던 유사 메뉴에 대해 사실상 언어적 독점을 행사했다. 이는 단지 창의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언어를 이용한 상업적 지배이며,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브랜드 권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최초는 레시피가 아닌 상표다. 상표등록만 되어 있고 당시 일식 요리에 흔한 갈빗살 구이(야키니쿠) 이상의 독창적 메뉴가 아니다. 사진=더본 코리아


그의 권위는 독창적 조리기술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그는 요리사가 아니며, 조리사 면허도 없고, 조리 교육기관에서 정규 수련을 받은 이력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요리 심사를 하고, 전국 가맹점에 조리법을 지시한다. 이 권위는 실질적 전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무엇보다 ‘말의 마법’에서 파생된 허상의 권위다.



골목의 주인에서 골목의 역사 지우개로


압구정과 신사동 일대의 오래된 주차장과 정비소 자리에 야간의 틈새를 파고든 포장마차가 성행한지 제법이었다. 원조를 따지기 힘들만큼 붐이 일었던 시절 '한신포차'를 연 백종원은, 이를 자신만의 ‘대형 포차 사업(텐트바 포차)의 원조’이라 강조한다. 하지만 1980년대 잠원동 포장마차촌, 압구정의 카센터 야드를 이용한 포차를 비롯해, 강남 일대에는 이미 다양한 포장마차 문화가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골목 문화 위에 ‘한신포차’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덧씌운 것이다. 이 한신포차라는 이름도 잠원동 자동차 정비소 골목의 포차를 당시 반포 키즈들이 붙인 구전적 명칭을 참조해 그대로 상표 등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미디어 서사는 마치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의 발명품이었던 것처럼 역사를 재구성한다. ‘도시재생’이나 ‘골목상권 부흥’이라는 표어는 감성적 공감을 유도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소상공인의 문화를 브랜드화하고, 결국 대규모 가맹 사업으로 확장하는 전략에 가깝다. 유명세로 오리지널티를 왜곡하고 그 분칠된 브랜드 위에 자본의 탑을 세울 뿐이다. 골목상권을 걱정하는 사람이 프렌차이즈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식당 관리 장교는 군사특기 보직이 아니고 그가 최초도 아니다. 사진= KBS '대화의 희열', SBS '힐링캠프'


이와 같은 전략은 그의 군대 서사에서도 반복된다. 그는 스스로를 ‘최초의 취사장교’라 자칭하지만, 실상 육군에는 이미 오랜 기간 조리 담당 장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육군은 모든 부대마다 장교 한 명을 간부식당 관리 업무에 배치하도록 한다. 이는 부대관리훈령(행정규칙)에도 명시된 일반적인 부대 운영 절차로, 특정 시점에 '취사장교'라는 독립된 직책이나 제도가 신설된 바가 없다. 즉, ‘취사장교’는 공식 병과나 군사특기가 아니라, 일반 포병·기갑·정보 등 모든 장교가 순환 보직으로 겸임하는 역할일 뿐이다. 그럼에도 미디어는 그를 마치 군대 요리문화를 혁신한 개척자처럼 그려낸다. 역사와 제도, 지역의 기억은 사라지고, 하나의 인물이 모든 신화의 기점으로 떠오른다.



스타 전문가의 분장실과 대중의 착각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권위는 실력보다 이미지에 의존한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은 더 이상 학문적 축적이나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설민석은 역사학자도, 교육학자도 아니지만,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과 감정 자극에 능한 연출, 연기를 통해 대중적 권위를 얻었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오류와 과장은 방송이 아닌 현장에서 치열하게 공부해온 연구자들의 신뢰를 침식시켰다.


강형욱 역시 반려견 훈련 전문가로 자리매김했지만, 방송 속 단번의 교정은 수년간의 경험과 복잡한 훈육 과정을 단편화시킨다. 오은영 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의사 면허가 있지만, 최근 임상 진료는 중단한 상태이며, 방송의 장면 속에서는 실제 진료가 아닌 ‘카운슬링 드라마’가 연출된다. 시청자는 이 연출을 진짜 상담이라 착각하고, 감정적 공감 속에서 전문가 권위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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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를 내세운 트렌드 팔로잉 콘텐츠는 이미 미디어의 필수적인 요소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이전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얻고 세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이 항상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력과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채 과대 포장된 능력치가 결국 탄로 나게 되는 경우기 많았었지요. 학력과 경력을 감추기 쉬웠던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사실 지금도 유효합니다.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요리사로 인식되고, 공인 자격이 없는 상황에서 자칭 반려견 전문가의 무모하고 폭압적인 브리딩이 주목되는 세상입니다. 위조 학력과 가짜 신분의 강의 전문가, 역사 강사들에게 농락을 당하고서는 주춤대기는 하지만, 미디어 그것도 방송에 노출되는 것이 마치 '공인 공증'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 틈에서 오은영 박사의 존재는 돋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에 맞는 콘텐츠에 신뢰할 수 있는 백그라운드, 그리고 적절히 자극적인 솔루션이 그녀를 '방송가의 수도꼭지'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문 내용 중-


김미경, 김창옥과 같은 스타 강사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정성’과 ‘자기계발’의 미학을 팔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이야기의 상당수는 과장되거나 픽션에 가깝다. 이들은 감정의 소비를 통해 대중적 인정을 얻고, 그 인정이 권위로 전화되는 구조 속에 있다. 호감이 신뢰를 대체하고, 이미지가 실재를 삼키는 하이퍼리얼리티의 세계다.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이론은 ‘누가 평가하고, 누가 듣고, 누가 벗어날 수 있느냐’를 문제 삼았다. 이들은 모두 ‘미디어 친화적 스토리텔러’로서, 본질적 전문성(학계·현장·임상)의 제한을 넘어 ‘스타 파워’라는 새로운 문화자본을 확보했다. 그 결과, 전통적 ‘역사학자·훈육 전문가·임상의사·동기부여 강사’라는 경계장이 무너지고, ‘미디어에서 증명된 나’만으로 그 분야의 평가 권한이 부여되었다. 가짜가 진짜를 이긴 셈이다.


또한 어빙 고프만의 시선으로 보면, 이들의 모든 활동은 ‘일관된 자기 연출’이다. 무대(방송·유튜브)는 ‘프론트 스테이지(front stage)’, 실제 현장·학회·클리닉은 종종 ‘백스테이지(back stage)’로 철저히 분리된다. 미디어 소비자는 프론트 스테이지의 화려함만 보지만, 그 뒤의 준비·실패·모순은 은폐된 채 ‘완벽 연기’만이 유통된다. 확대 해석해 드라마 속 전문가들을 신뢰하는 꼴이 되고 만다.



가맹제국의 환상과 실재의 윤리


더본코리아는 ‘착한 프랜차이즈’라는 슬로건 아래 가맹비와 로열티를 받지 않는다고 홍보하지만, 실제 수익은 본사에서 일괄 제공하는 인테리어, 설비, 식재료 납품에서 발생한다. 가맹점주는 독립된 사업자가 아닌, 브랜드 시스템에 종속된 소비자에 가깝다. 상권 내 자사 브랜드의 중복 출점은 내부 경쟁을 유도하고, 본사만이 수혜를 입는 구조다. 이는 한국 스토어체인, 즉 프랜차이즈 연쇄점의 가장 큰 문제인데 더본 코리아는 이 문제제기를 늘 회피했다.


더본 코리아 매출 실적. 이미지=시사저널e, 서울파이낸스제공 데이터를 도식화


백종원 대표는 종종 “우리는 가맹비·로열티를 받지 않는다”거나 “창업비용이 낮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가맹비는 면제하지만, 인테리어·설비·물류비 등에서 수익을 확보한다. 예를 들자면, 한신포차·홍콩반점 등은 ‘더본F&C’ 등 계열사를 통해 식자재·조리소스·기기류를 공급하며 사실상의 로열티 역할을 하는 구조다. 예비 창업자 입장에서는 브랜드를 빌리는 대가로 ‘보이지 않는 고정비 부담’을 계속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또한 본사 주도로 메뉴나 가격을 바꾸고, 이벤트나 광고도 본사 방침에 따라 일방적으로 진행되며, 이는 자영업자의 자율성과 경영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더본코리아는 상권과 관계없이 가맹점을 빠르게 확장하며, 일종의 브랜드 희석화와 자기잠식(Cannibalization) 현상을 유발한다. 홍콩반점,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등이 한 지역 상권 내에 중복 입점하여 기존 가맹점 수익을 깎아먹는 구조를 낳기도 한다. 업종이 다르다 강변하는 것은 눈속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끼 소비를 하는 소비주체가 중식, 삼겹살, 닭발을 경계없이 전부 소비할 일은 제로에 가깝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가맹점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익성은 하락, 반면 본사는 브랜드 확장을 통해 홍보와 스케일 이익을 얻는 구조가 된다.


백종원은 미디어에서 '요리를 가르치는 선한 사업가' 이미지로 비춰지지만, 더본코리아는 본질적으로 가맹점 리스크를 하청시키는 구조이며, 한국 외식 산업의 과포화·중복투자·하향 평준화의 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될 수 있다. ‘가맹점주의 꿈’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본사가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이며, 이는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 전반이 가진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강하게 말하자면 다수의 위험 부담을 통해 소수가 이득을 편취하는 폰지와 다름없다.



권위의 시뮬레이션, 하이퍼 리얼리티


백종원의 브랜드 전술에는 '심사자의 권위'도 있다.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을 통해 “누가 무엇을 평가할 권리가 있는가”가 사회적 계급과 연계된다고 보았다. 전문 셰프가 아닌 이가 시식 평가 권한을 갖는 것은, 요리계라는 ‘경계장(field)’을 비전문가의 문화자본(유명세·대중 친밀감)으로 점령하는 행위다. 이로써 ‘심사의 전문성’이 무너지고, 경계유지(barrière)가 허물어지며 시청률과 스타파워가 곧 권위가 된다.


‘진짜 셰프’ 심판 vs. ‘연예인 백종원’ 심판의 경계가 흐려지며, 실제 조리 능력 대신 TV적 연출력과 브랜드 이미지가 심사의 권위로 전이된다. 보드리야르는 이를 ‘시뮬라크르’(simulation)라 부르며, 원본(전문 셰프 권위)이 사라진 자리에 “하이퍼리얼”(hyperreality)—실제보다 더 ‘그럴듯한’ 권위—가 세워진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는 ‘진짜 맛’보다 ‘백종원의 브랜드 보증’이라는 기호(sign)를 소비하게 되는 셈이다.


경쟁 예능은 시청률 확보와 PPL(간접광고), 브랜드 콜라보라는 상업적 이해관계에 종속된다. ‘백종원 심사’는 프로그램 자체의 신뢰도를 담보하면서도, 동시다발적 자사 브랜드 홍보(더본코리아 계열 식당·제품 노출)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공정 심사라는 공공성·교육적 가치는 후순위로 밀리고, ‘브랜드 가치 극대화’가 핵심 KPI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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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부활이나 최종 대결 품평의 대부분을 제작진이 억지 합리화한 두 사람이 진행한다. 요리사이고픈 사업가와 요리사의 요리사가 되고픈 셰프의 품평이 유일한 바이블이 된다. 그 품평으로 가려지는 '비범'이 마치 '정답'처럼 각인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수년 전 칼럼 <슈퍼히어로의 서바이벌>에서도 이야기한 바가 있어 그 일부 발췌를 아래에 첨부해 본다. -본문 내용 중-


헨리 젠킨스가 말한 ‘참여문화’는 소비자가 콘텐츠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권력을 나누는 구조를 지향했지만, 이곳에서는 소비자가 권위에 참여하는 대신 감성적 동일시로 포섭되고 만다. 우리는 텔레비전과 유튜브를 통해 인물을 소비하고, 그 인물의 브랜드를 소비하며, 그 소비를 통해 형성된 권위를 다시 우리 삶에 적용한다. 이 순환은 비평 없는 사회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젠킨스는 또한 미디어 소비자의 능동적 참여가 강조되는 시대라 말했다. ‘백종원 심사’는 대중이 이미 알고 좋아하는 스타를 통해 친숙함을 공급하고, SNS 투표·댓글·해시태그 참여를 촉진했다. 이는 ‘시청자 참여’ 차원에선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심사의 전문성·공정성 논의를 사후적 해시태그 감성으로 환원시키고, 비판적 담론 형성을 약화시킨다는 역설을 낳는다. 비평과 평론이 사라진 시대의 확연한 표징이다.



허상의 연기, 권위의 불씨를 걷어내며


실제의 권위는 실패와 고통, 성찰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통과하며 얻어진다. 스튜디오 조명 뒤의 반복된 연습과 시행착오, 비가 새던 옛 포장마차의 아스팔트 바닥, 이름 없이 일하던 주방 보조의 손끝에서 권위는 천천히 형성된다. 우리는 그 권위의 느린 시간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권위의 본질은 결국 타인의 삶 앞에 서는 태도의 문제다. 대중적 호감이 아닌 실재의 축적 위에서만 권위는 정당할 수 있다. 허상의 말장난, 조작된 기원, 편집된 이미지가 아니라, 쓸쓸할 정도로 정직한 실패의 기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미디어는 그것을 보여주지 않기에,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진짜는 누구일까? 가짜의 휘영대는 반짝임에 위해 세상은 진짜를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사진=넷플릭스코리아 흑백요리사


백종원 씨는 많은 팬덤을 가졌다. 비판 자체가 큰 부담이 되는 이유다. 가지지 못한자의 배아픈 소리로 치부되거나 유명인에 대한 물어 뜯기 식의 가십으로 퉁쳐지기 십상이다. 모든 반동은 무지에서 비롯한다. 서울대 법대 나온 검사라서, 사람보다 조직에 충성한다 해서 선택한 팬덤 정치의 산물은 우리 모두에게 퇴행이라는 보속을 감당하게 했다. 거짓 반짝임을 모르는게 죄다.


우리는 지금, 반짝이는 조명을 끄고 어둠 속에서 권위의 진짜 얼굴을 다시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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