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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Oct 02. 2022

난 '오은영 신드롬'이 불편하다

불행 포르노 각론에 파묻힌 구조적 파괴의 총론

방송계의 수도꼭지


방송계에서 '수도꼭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채널 무관하게 티브이를 틀기만 하면 나온다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외식 사업가 백종원, 반려견 매니지먼트 사업가 강형욱, 그리고 정신건강 전문의 카운슬링 콘텐츠 사업가 오은영 박사를 들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행보는 이견없이 오은영 박사가 아닐까 합니다. 미식ㆍ요리, 반려동물보다 자녀와 부모 관계, 그리고 심리상담이라는 주제가 팬데믹 시대에 더 와닿았고, 무엇보다 공증된 자격-국가자격 전문의-을 가진 전문가라는 것이 더 신뢰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수도꼭지 3대장

'전문가'를 내세운 트렌드 팔로잉 콘텐츠는 이미 미디어의 필수적인 요소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이전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얻고 세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이 항상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력과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채 과대 포장된 능력치가 결국 탄로 나게 되는 경우기 많았었지요. 학력과 경력을 감추기 쉬웠던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사실 지금도 유효합니다.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요리사로 인식되고, 공인 자격이 없는 상황에서 자칭 반려견 전문가의 무모하고 폭압적인 브리딩이 주목되는 세상입니다. 위조 학력과 가짜 신분의 강의 전문가, 역사 강사들에게 농락을 당하고서는 주춤대기는 하지만, 미디어 그것도 방송에 노출되는 것이 마치 '공인 공증'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 틈에서 오은영 박사의 존재는 돋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에 맞는 콘텐츠에 신뢰할 수 있는 백그라운드, 그리고 적절히 자극적인 솔루션이 그녀를 '방송가의 수도꼭지'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은영 박사의 신드롬은 적어도 허상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시대의 변화와 가치의 변환 속에서 세대 간의 갈등의 주기는 짧아졌고, 이제 아이들의 나이와 상관없이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의 갈등이 늘어났습니다. 거기에 더해 뜻하지 않은 팬데믹으로 이전에 없었던 접촉의 시간의 증대로 그 갈등의 국면은 더 심화되었습니다. 폭력이 자생하고 무기력적인 일탈이 반복되는 가정에 믿음직한 중재자로, 또 해결자로 솔루션을 던지는 오은영 박사는 '국민 멘토', '육아의 신', 그리고 각종 '불행의 치유자'로 신드롬을 일으킬 만합니다. 하지만 이 '오은영 신드롬'이 개인적으로 참 불편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은영'이라는 메신저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속 좁은 시샘과 부러움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불편합니다



불행 포르노(Misery Porn)라는 MSG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은 각 개인과 가정이 안고 있는 '불행'의 단편을 각론으로 규정하고 솔루셔닝 합니다. 행복은 고만 고만하고 불행은 저마다의 나름 나름이라고 하지만, 세대와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사랑하는 아이들이 갑자기 괴물화가 되거나 자랑스러운 부모가 뜬금없는 폭압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기에도 바쁠 가정의 식탁에서 서로 괴물과 원수로 만들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불행 포르노'라는 각론의 솔루션에 은근슬쩍 감추어집니다. 고도의 능력주의, 그로 인한 승자만의 세상, 학력 중시 주의, 부에 따른 교육 접근의 양극화, 무너진 공교육의 가치들은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자극적인 '불행한 이야기'들의 틈 속에 숨어 버립니다. 나의 이야기는 아니니 패널들에게 함께 동조하며 불행에 삿대질하고 노여워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불행 포르노'의 전생 시대라 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입니다.


불행 포르노라는 말은 극작 법, 영화, 연극, 소설, 게임 등에서 비판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캐릭터에게 비현실적이거나 작위적인 불행들을 지속 주입하며, 그러한 불행을 과다하게 전시하는 작품을 경멸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새드엔딩, 비극이라는 일반적 소재와 달리 서사 자체가 캐릭터의 '불행'에 포커싱 되어 극한 상황 속에서의 피해를 받는 주인공에 대한 불행만 묘사가 거듭, 반복되는 작품들을 이릅니다. 북유럽의 도그마 선언에 따른 <어둠 속의 탠스>, <님포매니악>, <도그빌> 그리고 최근 <기버나움>이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같이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는 작품들도 있고, 한국에서도 <인간실격>, <나의 아저씨> 같은 주목받은 드라마와 김기덕의 영화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화 기법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행 포르노는 단순한 평면구조에 반복되는 자극 점층으로 작품의 질보다는 관심과 어뷰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최근 영화 <호흡> 논란)

불행 포르노

최근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관찰 예능'이 중심인데, 가족이나 가족에 준하는 구성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그들의 '문제', '불행'을 부각하는 구성으로 치닫습니다. 사회생활에 더딘 철부지가 된 프로 스포츠 은퇴 선수의 좌충우돌,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부모들의 미숙한 육아와 살림살이, 그리고 인기 시들해진 셀럽이나 셀럽이 되고픈 이들의 '불행'을 앞세운 토크쇼가 그런 것들입니다. 자신의 과거와 지금의 불행을 들먹여 방송에 노출되는 출연자나 그들에게 자신만의 잣대로 평가하는 멘트를 날리는 패널들, 그리고 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그 모습들에 혀를 차고 손바닥을 치며 훈수와 응원을 내뿜는 시청자까지, '솔루션'의 통쾌한 해결 이전에 나보다 불행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총체적인 문제, 구조적인 해결점, 그리고 함께 고민할 유대와 연대의 가치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지요. 뭐 예능이니까요.



<금쪽 변명소> 되지 않기를


오은영 박사의 신드롬은 방송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서점가에서도 오은영 박사의 인기는 최고의 수준입니다. <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코리아닷컴),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김영사), <오은영의 화해>(코리아닷컴),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김영사), 그리고 가장 최근 출간된 <오은영 박사가 전하는 금쪽이들의 진짜 마음속>(오은라이프사이언스)까지, 오은영 박사의 책들 대부분주요 서점 육아  자녀교육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에서 어럽지 않게 찾을  있습니다. 오은영 박사를 섭외하기 위한 주요 출판사 사이의 치열한 각축전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 있습니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듯이, 본인의 브랜드 가치가 최고일 때 최대의 결과를 생각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영끌과 떡상을 추종하는 만능 자본주의 세상에서 존경받을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이 욕심이라는 것은 제법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입니다. 오은영 박사는 상담을 위주로 하는 정신건강 전문의입니다. 그러나 최근 박사의 본업은 콘텐츠 비즈니스에 더 집중된 모습입니다.

개정 증보판

최근 출판한 <~금쪽이들의 진짜 마음속> 오은영 박사와 피부과 전문의인 남편이 공동 대표로 설립한 '오은라이프사이언스'에서 출간했습니다.  법인은 최근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고 주로 오박사의 강연을 관리하던 1 기획사를 확장한 것이지요.  주목할 것은  책이 2012년에 출판했으나 절판된 <아이의 스트레스> 개정 증보판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출판계의 불문율과 달리 표지나 띠지 어디에서도 개정 증보판이라는 것을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서문에 언급은 되어 있지만 출판 마케팅은 마치 신간처럼 광고하고 있습니다. 이후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국민 멘토'라는 찬사를 업고 개인의 이득까지 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공인의 경계에 스스로 들어 선만큼 자신의 행동을 점검해야 할 의무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행 포르노를 기반으로 솔루션으로 각광을 받고, 상업 광고에서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모습은 제게는 불편해 보입니다. 최근 마약 사범으로 구속된 인물이나 사회적 지탄을 받고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는 셀럽의 탈출구로 변질되는 <금쪽 상담소>는 자칫 <금쪽 변명소>로 되기 쉬어 보입니다. 초반에는 불행한 개인사나 가족사를 먼저 내세워서 자극 점을 내세웁니다. 후반부에 가서 논란이 된 사건을 은근슬쩍 거론하며 물 타기 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명하거나 미화하기 쉬운 '불행 포르노'에 '국민 멘토'라니, 금상첨화라고 느껴지겠지요.

<긍쪽 변명소>가 되지 않기를

최근의 세상에 대한 아쉬움 중 하나를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어른이 없어졌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김수환 추기경, 성철 스님,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이어령 선생의 부고 뒤에 남는 허전함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이 오십이 훌쩍 넘어도 어른에게 기대고 싶은 날이 제법입니다. 어른이 참 그립습니다. 인기와 관심으로 이룬 부와 명예가 있다면 최소한 어른의 책임감으로 힘든 삶들이 기댈 수 있도록 세상과 사회를 위한 고민과 행동 기대해 봅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속 좁은 마음에서의 투덜거림일 수도 있지만, 솔직한 마음입니다.

정말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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