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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Sep 04. 2022

워킹 딕셔너리

'심심한' 사과 논란에 대한 '심심한' 생각

어릴 적, 이 어리다는 기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철 모르던 모든 시기에, 제법 잘난 체 떠는 다소 재수 없다 평가되는 사람이었답니다. 애써 포장하자면 왕성한 호기심과 남다른 귀동냥으로 쌓아 둔 아주 얇은 지식과 정보를 뽐내기 좋아했습니다. 직장에 가서도 그 성향은 어딜 가지 않았지요. 이런저런 시사상식이나 트렌드에 대한 갑론을박의 수다 자리에 사전적 정의와 최근 사례를 거들먹 걸리기 좋아했습니다. 그때 붙여진 별명이 "워킹 딕셔너리 (walking dictionary)'였답니다. 생각해 보니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워킹 딕셔너리 (이미지: 스마트 윤선생)

그래도 남다른 재능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실상 이 특성의 이면에는 남모르는 "비밀기술"이 있었습니다. 바로 '빠른 검색'이었습니다. 아는 척, 잘난 척의 유지를 위해 독서 목록에 온갖 사전이 추가되고 사무실 책상 한편에 두고선 누군가의 요청이 있으면 재빠른 검색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양, 대답을 건네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전은 '검색, 서핑, 구글링'으로 변모하였을 뿐, 여전히 잘난 체 떨기는 아직 떨치지 못했습니다. 주로 아내 앞에서만 한다는 것이 달라진 것일 뿐이지요.


지난날의 부끄러운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바로 "'심심한' 사과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카페 측이 사인회 오류 사과문에서 사용한 ‘심심하다’라는 표현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이 뜻을 잘못 이해하면서부터 촉발된 것이지요. '심심하다'의 동음이의적 표현이 문제가 되었지요. '몹시 깊게'라는 뜻의  심심(甚深)이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순우리말 심심과 변별이 안된 것이지요. 저도 처음에는 혀끝을 찼습니다. 한자 단어가 많은 우리말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한자교육이 필요하다고, 장단음 구조만 생활화돼도 괜찮은데 라며 젊은 세대의 '문해력'에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접한 기사를 보며 좀 더 깊게 생각하니,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https://naver.me/GK5ffS4y

오상진은 “문제는 지나친 자기 확신과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오만이 부딪혔을 때 발생한다”며 “고객을 상대하는 업체가 사과를 하면서 조롱할 이유는 없다. ‘심심한’이란 말이 거슬릴 수도 있었겠지만, 순간의 화를 누르고 사전을 한번 찾아봤다면 이런 갈등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조롱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마이클 샌델은 학식을 갖춘 이들의 거드름과 무시가 사회의 갈등을 격화시켰다고 분석했다”며 “한 번 더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태도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기사 본문 중-


어휘와 표현이 소멸되는 현상, 책 아니 글을 읽지 않는 환경에서의 읽고 맥락을 짚어 내는 힘의 부족, 그리고 디지털 환경 속에서의 난무하는 축약과 조어의 부작용은 비판과 검증되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 사용자의 부류, 연령, 직업 등으로 또 다른 차별적 비아냥은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기 판단의 우월감에 사로 잡힌 자의식, 즉 '식자(識者)의 자의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 전 백성을 아끼는 임금이 한자의 어려움이 계급과 계층의 골을 깊게 만든다는 생각에 새로운 문자를 창제합니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가여운 백성들이 서로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 말과 글이 서로 통하지 않기에'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한글의 창제 이유입니다. 돈과 권력으로 나누어 버린 계급의식은 배우고 알아가는 기본인 글과 말에도 담벼락을 설치합니다. 유럽 사회에서는 예외 투성이의 문법 복잡한 프랑스어가 귀족의 상징이 되고, 수명을 다한 라틴어가 성직자의 존귀를 포장하였으며, 말과 글이 차이가 나는데도 한자를 고집하는 20세기까지의 한국사회가 그러합니다.


어찌 권력층뿐일까요. 소위 '보그 병신체'라고 하는 패션잡지의 외래어, 외국어 남용된 칼럼 화보는 어떠한가요. 미국 유학 시절을 뽐내려 형용사나 용어를 굳이 영어로 강의하는 교수나 한글 대체 가능함에도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영어 표기를 고집하는 IT업계의 세미나와 콘퍼런스도 마찬가지입니다(뜨끔). F와 P 발음 모호한 '일국의 대통령'은 자신의 영어실력 밑천이 드러나는지도 모르는 체. 온통 '플랫폼', '인프라'타령입니다. 출근길 기자 문답도 '도어 스텝핑'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소위 사회 각계 지도층들과 권력, 그리고 그것들을 추종하는 미디어 환경의 자의식이 도태되어 있는 동안, 민중의 식견과 안목, 실력과 지식은 급속히 향상되었습니다. 정보기술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이 가속화를 시켰지만, 그 자의식 가득한 '배우고 가진 것 많은 무리'들의 도태된 시대정신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권력자들의 일탈이 없었다면 우리가 살면서 탄핵, 인용, 각하 등의 어려운 법행정 용어를 실생활에서 사용할 일이 있었을까요? 다 그들의 덕입니다. 최근 뉴스 대담 프로그램을 보면 참 간단한 말을 어렵게 하는 경우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분명 한국말인데 뭔소리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정당 지도부가 각종 고발건으로 형해화((形骸化)되는 것은 정당정치의 당위적 가치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 명징(明徵)되는 것이라고 연찬회에서 주장한 말은 소구력(訴求力)을 잃었습니다." -어느 정치평론가의 말 재구성-


*형해화(形骸化)

내용은 없이 뼈대만 있게 된다는 뜻으로, 형식만 있고 가치나 의미가 없게 됨을 이르는 말.


*명징(明徵)

명백(明白)한 증거(證據).


*소구력 (訴求力)

광고가 시청자나 상품 수요자의 사고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힘.


말과 글은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나누는 일입니다. 배운 것, 가진 것을 자랑하는 수단으로의 말과 글은 아주 부차적인 선택 사항일 뿐입니다. 마음과 생각의 전달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실체가 고스란히 전해 졌는가이지, 화려하고 배운 티 나는 고상한 포장이 아닐 것입니다. '심심한 사과'에서 우리는 '심심한'이라는 덫에 걸려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한 것은 실체보다 절차가 중요한(비대위 가처분 인용) 율사들 출신의 정당 지도부, 입법 정신과 취지보다 한 글자 -등-의 중의적 해석(시행령 개정)으로 의기양양한 자칭 일국의 장관보다, 일상에서 소소한 말과 글로 마음을 전하는 우리들은 더 훌륭합니다.


끝으로 김규항 님의 페북의 생각을 퍼서 나눕니다.


김규항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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