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기자의 칼럼을 읽고 나서
김장하 선생이 말하지 않았나.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라고. 검찰청은 정치 검사들이 아니라 평범한 검사들이 지탱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검찰개혁은 성공한다. -기사 본문 결론-
한국일보 강철원 기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 이루어진 검찰개혁이 실패한 이유를 ‘표(衆)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인사 교체’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즉, 어느 학교의 사례를 들어 ‘교사 말 잘 듣고 성적 우수한 학생’(기존 특수부 검사 그룹)을 몰아내고 ‘목소리 크지만 성적 낮은 학생들’(문재인 정부에 협력적이지만 역량·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한 검사들)을 기용하자, 교실 내에서는 반목과 불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자는 검찰개혁이 ‘정치 검사를 처단’하는 데만 매달리면서 평범한 검사들의 자존심을 무시했고, 그 결과 내부 결속을 무너뜨려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이어 이재명 후보가 제안한 ‘검찰청 폐지·수사·기소 분리·영장 청구권 폐지’ 등 대대적 개혁도 평범한 검사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또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공들여도 허언은 허공에 떠돈다. 강철원 기자의 “검찰엔 정치 검사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칼럼을 면밀히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레거시 언론들이 취하는 스탠스의 기표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계엄 내란을 일으킨 검사 출신 대통령의 해악은 알겠지만, 그간 스스로 권력 창출의 창구라 자신했던 검찰과의 절연은 오랜 흡연자의 금연결심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검사들의 마음’이라는 허상이 얼마나 사유의 빈틈을 남겼는지를 날카롭게 짚어낼 필요가 있다.
칼럼은 “평범한 검사들의 마음”을 얻어야 검찰개혁이 성공한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검찰개혁=검찰 내부의 감정적 합의’를 동의조건으로 삼았다. 그러나 검찰이라는 제도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를 넘어서는 권력 작동 기제와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검찰개혁이 실패한 진짜 이유는, 정치권과 행정부가 조직 내부의 반발을 두려워해 개혁 의지를 흐트러뜨렸기 때문이 아니라, 개혁의 의제가 충분히 사회적으로 숙의되지 않았고, 조직의 다층적 작동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조직이 지닌 본질적 모순을 해부하고, 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학교 반장 하나 바꾸듯이 검찰을 다룰 수 있다는 비전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검찰 역할을 재정립하고, 작은 조직 변화를 넘어 체계를 재구성하는 대전환의 관점이 필요하다.
학교 비유의 허와 실
칼럼이 열어젖힌 문은 참으로 유혹적이었다. 50년간 전교 회장과 반장은 언제나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 차지했고, 어느 순간 새 이사장이 나타나 “평범한 하위권 학생도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교실은 두 패로 가르마를 타고, 적잖은 학생이 “내가 왜 성적 하위권인 이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라며 분노했다. 언뜻 보면 검찰 조직의 전형을 그린 풍경이다. 기존 특수부 검사들을 몰아내고, 다소 눈에 띄지 않았던 평범한 검사들을 전면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인사 개편을, 이사장의 일방적 혁신 의지와 겹쳐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학교 공동체와 검찰 조직은 차원의 격차가 있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한 공동체로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민주적 토론의 장이 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검찰은 국가의 수사·기소권을 독점한 권력 기관이다. 학교 삶이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라면, 검찰은 이미 견고하게 세워진 고딕 대성당과 같다. 그 안에서 누군가를 끌어내리고 다른 누군가를 세우는 일은, 단지 사람 교체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책임과 법적 권한, 조직문화가 복합적으로 얽힌 채 수십 년간 누적된 무게가 한 번에 해체되지 않는다.
성적 순위에 따른 반장 배치’와 ‘검찰 인사’ 연결은, 양자의 가치 기준(학업 성취 vs. 법률 전문성·윤리·독립성)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일치시키는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기자는 ‘80등 이하인(=하위권) 학생이 반장으로 임명되자 불만 터뜨린 아이들’이라는 간단한 예시만으로 조직 내 불협화음을 설명하지만, 검찰 내에서도 이미 다수 검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전문성 문제를 고민해왔다. 따라서 ‘하위권 학생=내부 구성원 대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검사’라는 등식 자체가 지나치게 단순화됐다.
각 개인이 갖는 자존심은 순전히 시험 등수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은 학업 성취만이 아니라, 소속감과 윤리적 신념, 동료에 대한 연대감 같은 더 복합적인 결을 가지고 있다. 마치 철학자들이 경고했듯이, ‘범주 오류’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검찰 내부에도 숙의와 합의를 통해 법치주의를 수호하려는 검사가 있고, 정치적 계산 속에서도 소신을 지키려 분투하는 검사도 있다. 이를 ‘하위권 학생’이라는 단일한 틀로 재단한다면, 조직 안팎의 긴장과 갈등이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칼럼은 “문재인 정부가 특정 ‘정치 검사’를 몰아냈더니 평범한 검사들이 설 자리를 잃고 반발했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집단(예: 윤석열 사단)을 배제한 것만으로 검찰 전체 구성원이 개혁에 반감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정치 검사 응징의 효능감은 금세 사라져”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왜 효능감이 사라졌는지는 기술하지 않는다. 즉, 검사들의 불만이 단순히 ‘지위를 잃었다’는 감정적 반발 때문인지, 아니면 개혁의 내용 자체가 문제였는지 구체적 인과를 제시하지 않는다. “평범한 검사들의 마음을 얻어야 개혁이 성공”이라는 결론부는, 검찰 조직 전체를 ‘한 덩어리’로 간주했을 뿐, 개별 검사들이 어떤 철학적·윤리적 동기를 바탕으로 집단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
정치적 개혁의 본질과 왜곡
칼럼은 이어서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검찰청 폐지’, ‘수사·기소 분리’, ‘영장 청구권 폐지’ 등을 언급하며, “평범한 검사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개혁의 본질에 대해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치 개혁의 핵심은 “기득권의 안위”가 아니라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시스템 구축”이기 때문이다. 만약 개혁이 어느 특정 집단—이 경우엔 ‘평범한 검사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관점만을 강조한다면, 결국 그 개혁은 내부 이해관계와 감정에 좌우되는 미봉책에 불과해진다.
칼럼은 이재명 후보의 ‘검찰청 폐지’, ‘수사-기소 분리’, ‘영장 청구권 독점 폐지’ 등을 단순히 ‘검찰 내부 지지’를 얻어야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발언은 거대한 권력 구조 재편이라는 공공선의 관점보다, 내부 기득권자의 안정만을 우선시하는 관점이다.
민주주의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기관이 자율적으로 내부 합의를 통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시민·정치권·시민사회가 다각도로 견제하고 합의해 제도적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다. 이를 ‘평범한 검사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검찰개혁 자체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은 검찰의 지나친 권력 남용을 막고 투명성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이를 ‘검찰 내부 반발’이란 프레임으로만 보게 되면,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검사들의 일방적 이익 관철’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이는 정치개혁의 본질을 호도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이론에서 권력 기관의 독립성과 견제는 공동체의 결의와 외부 감시를 통해 다져진다. 검찰 내부 구성원의 감정이 흔들린다고 해서 개혁의 목표인 ‘법 앞의 평등’과 ‘투명한 수사’를 포기할 순 없는 법이다. 오히려 검찰 개혁은 정치권, 시민사회, 언론,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와 국민의 목소리가 함께 엮여야 하는 공론의 장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럼은 “평범한 검사들의 마음”이라는 프레임으로, 마치 개혁의 정당성이 자체로 의심받아서는 안 될 것처럼 호도한다. 더 나아가 그 정당성마저도 ‘검사들의 마음’으로 환원해버린다. 이는 정치 개혁의 발걸음을 내부적 저항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오류다.
칼럼 곳곳에서 ‘평범한 검사들’은 정치적 야망이 없었고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않았다’고 평가되지만, 현실적으로 검찰 내부에도 당·정과의 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사례가 적지 않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례(사퇴 후 정치권 진출)를 제외하더라도, 과거 판사 출신 검사나 로스쿨 출신 검사들이 법무부·청와대 인사와 긴밀히 소통해왔다. 따라서 아무런 정치적 계산이 없던 검사라는 이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검찰이 스스로를 ‘정치 검사’와 ‘평범한 검사’로 구분하고, 평범함을 이상화함으로써 ‘정치화되지 않은 순결한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시도 자체가 정치적 담론 형성 과정의 하나다. 이는 검찰 조직이 스스로 권위와 정당성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셈법으로 볼 수도 있다.
철학적 사유의 빈틈
비유와 은유가 지닌 미학적 장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실체를 왜곡할 때, 은유는 오히려 망상의 온상이 된다. 학교 비유를 통해 “누구를 자리에 앉혔느냐”만으로 조직 변화의 성패를 논한다면, 우리는 ‘범주 오류’의 경고음을 무시하는 셈이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언어 게임이 혼란스러우면 개념의 경계도 흐려진다. 이 칼럼은 조직이라는 복잡계의 경계를 다소 단순화해 ‘정치 검사 vs. 평범한 검사’라는 이분법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비평을 촉발하려 하지만, 결국 내부의 다층적 갈등과 상호작용을 은폐한 채 질문을 맺는다.
학교는 교육 공동체이자 민주적 토론 공간이지만, 검찰은 국가 수사·기소권을 독점한 권력 기구다. 둘의 ‘사회적 역할’과 ‘권력 작용 메커니즘’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논리구조(권력 교체가 내부 불신을 키운다)로 치환한 것은 철학적 사고에서 ‘범주 오류(category error)’에 가깝다. 기자는 ‘80등 이하의 하위권 학생이 반장이 되면 자존심 상해 따른다’고 말한다. 이는 ‘개인은 자신의 성취 지표에 따라 자존심을 세운다’는 인간 본성론에 의존한 발언이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보면, 개인은 자존심뿐 아니라 소속감, 가치관, 윤리적 기준 등 복합적 정체성을 갖고 움직인다. 단순히 ‘등수’ 하나만으로 ‘자존심’이 결정될 수 있다고 보는 시선은 실존주의적 인간 이해를 간과한 단면적 논리다.
윤리적 관점에서도 문제는 잔존한다. 칼럼이 “정치 검사를 응징하라”는 정서에 호소하는 순간, 검찰 내부 구성원 모두를 피해자로 전유하는 윤리적 동정이 부각된다. 하지만 이 동정은 칸트적 윤리에서 요구하는 보편적 정당성이나 정의의 실현과는 거리감이 있다. 검찰 내부에도 이미 공공선을 고민하는 검사들은 존재해 왔고, 그들은 단순히 ‘정치 검사’가 빠진 명부를 바라보지 않는다. 이들은 제도적 안전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급진적 물갈이가 오히려 더 큰 불신을 초래했다고 본다. 즉, 앞에서 지적했듯이, ‘평범한 검사 마음’이란 내부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은 윤리적 근거의 지평을 좁힌 결과다.
칼럼은 ‘정치 검사’ 처단을 두고 마치 ‘윤리적 불순’으로 단정짓고, ‘평범한 검사’에게 ‘자존심’을 줌으로써 ‘개혁을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권력과 윤리는 별개의 축이 아니다.
권력은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으며, 제도와 규범 내부에서 작동한다. 검찰 내부에서 아무리 ‘평범한 검사’라 해도, 조직 구조 안에서 이미 권력 관계에 편승해 있다. 이들을 단순히 ‘피해자’로 전유하여 윤리적 동정을 유발하는 방식은, 오히려 권력-지배 구조를 은폐하는 수사가 될 수 있다. 칼럼이 말하는 ‘평범한 검사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은, 윤리적 동기부여를 ‘사회적 합의’ 수준으로 낮춘다. 그러나 윤리적 정당성은 최후에는 보편적 도덕법칙(정당성, 정의)으로 환원되어야 하는 것이지, 단지 ‘다수의 마음(감정)’으로 결정될 수 없는 문제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관료제와 전문직
막스 베버가 분석한 관료제의 특성에 따르면, 조직은 단순 인간들의 집합이 아니다. 대규모 조직 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사 교체 실패’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적절한 규범, 위계, 암묵적 문화가 형성되고, 개인은 그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찰 개혁이 실패한 이유를 단지 ‘정치 검사’를 쳐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면, 관료제의 관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베버가 말했듯이, 관료제는 합리적·비인격적으로 작동하기에 급격한 변화에 저항하기 마련이다.
검찰 역시 수십 년간 쌓인 조직문화가 존재하며, 개혁세력과 현장 중간관리자, 그리고 현장 일선 검사들 사이에 ‘문화적 불일치’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범한 검사’라고 칭해진 다수 검사도, 이미 특정 사건(대기업 수사, 정치인 수사)에서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수사의 독립성, 조직 내 정치적 파벌, 인사고과 시스템 등 복합적 요인들이 얽혀 있어 단순히 ‘마음’만 얻으면 개혁이 성공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감정적 접근이다.
또한 사회학적 분업 이론의 관점에서 검찰의 역할을 보자. 검찰은 범죄를 발견하고, 수사하고, 기소하는 기능적 분업을 통해 사회 안정에 기여해 왔다. 일반 형사 사건부터 정치인 비리, 경제 범죄까지 검찰이 관여하는 스펙트럼은 광범위하다. 이 가운데 ‘정치적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면, 조직 전체의 전문적 사명과 대중적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검사들은 보이스피싱, 전세사기, 마약·딥페이크 범죄를 묵묵히 수사하며 피해자를 대변해왔다. 칼럼이 포착한 ‘평범한 검사들의 마음’이란, 이처럼 묵묵한 다수가 조직을 떠받들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지만, 그들이 왜 일종의 동요를 겪었는지, 그 배경에는 어떤 구조적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지에 대한 심층적 분석은 결여되어 있다.
검찰은 한국 사회에서 ‘법 집행자의 최전선’으로 기능해왔다. 현대 사회는 기능적 분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검찰 역시 ‘범죄 발견→수사→기소’라는 전문적 역할을 수행하며, 그 안에서 공공의 안전·질서를 유지하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다. 하지만 ‘정치검사 응징’이라는 정치적 이슈가 이 전문적 역할과 뒤섞이면서, ‘검사의 사회적 정당성’이 흔들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평범한 검사들의 자존심’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전문직이 사회 전체에서 가지는 정당성’이다. 칼럼은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마치 사회학적 분업을 파괴한 건 오로지 개인(정치 검사) 때문이라는 듯 글을 전개했다.
진정한 개혁의 조건을 위하여
검찰개혁을 위해 가장 먼저 자리해야 하는 것은 “누구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왜 이 조직이 이렇게 뿌리 깊은 저항을 보이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조직 안팎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시적 인사 교체나 표면적 개혁이 아니라, 제도적 안전장치와 투명성, 그리고 공론화의 공간이다. 다수의 마음을 얻는 일이야말로 중요하지만, 그 전제는 다수 속에 어떤 목소리가 있느냐를 충분히 듣고, 조직의 복합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
검찰은 본래 권력 집중과 인권 침해 위험을 안고 있는 조직이었다. 그 위험을 낮추기 위해, 비단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도 사법부·행정부 간 권력 균형을 논의해왔다. 그러한 논의를 단순히 ‘정치 검사의 응징’ 프레임으로 전유하는 것은, 개혁의 본질적 필요(권력 남용 방지, 수사·기소 기관 분리, 영장 청구권 폐지)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평범한 검사 마음’이라는 감성적 호소는, 실상 ‘개혁 기조에 일정 정도 우호적인 검사들조차 내부 갈등을 이유로 반대할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은 담고 있으나, 그 원인을 내부 감정적 층위에만 국한시킴으로써 정치적·구조적 맥락을 도외시했다.
물론 우리는 조직 내부의 상처를 외면할 수 없다. 학교 비유처럼, 하위권 학생이 반장이 되어 분노를 터트린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자리에서 밀려난 경험은 분노와 불안을 남긴다. 그러나 그 분노가 단지 누가 자리에 앉았느냐에만 기댄다면, 우리는 조직 변화의 지형도를 지도로 삼지 못한다. 칼럼이 지적했듯이, 검찰 내부에도 작은 사건 하나하나를 해결하는 평범한 검사들이 존재하며, 그들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들이 외로이 고립되지 않도록, 개혁의 방향성이 단순히 ‘정치 검사 응징’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우리는 구조적 정당성과 제도적 보호 장치를 확립해야 한다.
실제로 검찰개혁이 성공하려면, 평범한 검사들의 지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검사 집단 내부뿐 아니라 법조계 전반, 시민사회, 국회, 언론이 모두 참여해 공론화하고, 제도적 안전장치(독립적 기구·감시 시스템)를 마련해야 한다. 검찰 내부 구성원의 반발을 ‘정당하게’ 수렴하되, 그 반발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더 깊이 파고들어야 비로소 제도적 개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검찰개혁을 ‘감정의 드라마’로 치부하지 말자고 호소하고 싶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결국 조직 내부 소외 계층의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이 조직이 우리 사회와 맺고 있는 복잡한 인과의 그물을 얼마나 정밀하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교의 무너진 벽돌 하나쯤 교체한다고 해서 대성당의 골조가 튼튼해질 수 없듯이, 검찰 내부 갈등을 감정적으로 치유하는 것만으로는 제도를 지지할 근본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피해자를 대변하며, 묵묵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수많은 평범한 검사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우리는 이 조직을 다시 그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의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