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의 릴레이 연작 에세이 <글루미 릴레이> 리뷰
나름 풋풋했던 20대에 성당 주일학교 교사로 보낸 날들이 있었다. 지하 구석방 교사실에 날마다 이어 적는 날적이의 이름은 ‘주어진 자리’였다. 대부분 하루하루를 고민으로 이고 사는 청춘들의 일상과 그 안의 고민들이 이어 달리듯 빈 종이를 채워 나갔다. 가끔은 그 글에 답장을 실어 글을 이어 가기도 했고, 그저 하트 하나, 별표 하나로 응원을 보태기도 했다. 각자의 ‘주어진 자리’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렇게 이어진 날적이는 우울한 청춘들의 기댈 쉼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팍팍한 삶을 살아내는 투병 중에, 브런치를 통해 귀한 인연을 만났다. 아내에게는 언니 같고, 내게는 누님 같은 분으로, 벅찬 하루하루를 함께 걱정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다. 직접적인 응원과 손길뿐만 아니라, 그분이 써 내려가는 글을 읽으며 일종의 위안을 듬뿍 받곤 한다. 독실하신 신앙과 깊은 성심으로 쓰신 절기와 전례 연재, 그리고 스스로 써 보시는 주일 강론 연재를 보며 용기와 힘을 얻어, 종교와 신앙의 글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글방구리 작가님이다.
고급스러운 날적이, <글루미 릴레이>
쉼터 같은 자리를 내어 주신 글방구리 작가님께서, 이웃한 브런치 작가들과 릴레이 집필하여 출판한 책 <글루미 릴레이>를 보내 주셔서 나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을 받아 든 첫 느낌이 참 좋았다. 무게 있는 질 좋은 종이에 다채로운 컬러를 입힌 그야말로 정성이 깃든 책이었다. 간만에 좋은 종이를 손끝으로 느끼는 기분은 실물 독서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최근 전자책 서비스에 의존해 독서를 해오다가, 오랜만에 마주한 이 고급스러운 책은 읽기 전부터 좋은 기운을 나누어 주는 듯했다. 고급스러움이란, 코코 샤넬의 말을 빌리자면, 풍요와 부유함이 아니라 ‘천박함의 부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말 고급스러운 선물이 되었다.
책의 구성은 ‘우울–글루미’에 대한 각자의 나름 사유적 글을 묶어 냈다. 최초에 오렌 작가님이 브런치에서 만난 주옥 같은 글의 주인공들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렌 문학상’이라는 재기 넘치는 작은 이벤트를 시작했고, 그로부터 이어진 인연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다. 자신만의 골방에서 꾸준히 글쓰기를 일구어 내는 작가들과, 그 진주 같은 글들을 단숨에 프로젝트로 엮은 기획자, 그리고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한 조력자의 한마음이 모여 고급스러운 결실을 만들어 냈다.
제목이 <글루미 릴레이>라서 사실 처음에는 주저했다. 아직 암 투병 한가운데에 있고, 제법 의연한 척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죽음을 떠올리는 입장에서 ‘우울’이라는 제목은 선뜻 책을 펼치기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좋은 종이의 촉감 때문이었는지, 글 하나하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게 책을 열었고, 한숨에 읽어 내려갔다. 다행히도 그 글 속 우울은 각기 저마다의 다른 이름을 한 희망이었고, 그 우울을 딛고 글을 써 내려간 작가들의 숨결 하나하나가 새로운 응원으로서 내게 다가왔다. 열여덟 명의 ‘약한 고리’들이 현실이라는 무거운 중력을 지탱해 줄 연대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책이 내게 준 새로운 결실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책을 만들어 낸 이들이 누구도 ‘전문 작가’로서의 포즈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업도 다르고, 연령도 다르고, 살아온 삶의 경로도 다르다. 하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쓴다’는 행위를 통해 자기 존재의 증거를 남긴다. 누군가는 그것을 생존의 방식으로 삼고, 누군가는 그것을 기도처럼 고백한다. 때로는 절망 위에서, 때로는 무심한 일상 속에서. 그렇게 건네는 글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너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작은 손짓이 된다.
결국 <글루미 릴레이>는 ‘우울’이라는 감정을 감추거나 제거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이들의 존재를 비추는 ‘내밀한 렌즈’가 된다. 각각의 글이 다른 호흡과 시선으로 출발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커다란 고백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비틀거리며 나아간다. 그리고 그 ‘비틀거림’의 진폭이 깊을수록, 타인의 고통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일러준다.
고독과 연대 사이에서 피어나는 작은 틈
글을 읽다 보니, 문득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가 떠올랐다. 소설 속 말테라는 인물이 여러 도시를 떠돌며 겪는 고독 속에서도, 낯선 이와 나누는 짧은 대화나 우연히 길에서 만난 아이에게 빵을 건네는 작은 선의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릴케는 구체적인 ‘기적’을 묘사하지 않지만, 무관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를 건네는 순간마저도 ‘연대의 입구’라고 말한다. 개인이 지닌 사소한 선의가 모이면, 결국 그 사람 삶 전체를 바꾸는 어떤 울림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글루미 릴레이>도 이 오병이어적 의미와 맞닿아 있다.
《말테의 수기》 곳곳에는 ‘내면의 고독’을 곧잘 보여주는 문장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길 위의 무수한 얼굴들 속에서 자신만 홀로 분리된 존재처럼 느끼는 모습, 혹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서 이방인 같은 정서를 술회하는 구절들이 그렇다. 그러나 바로 그 고독의 순간이 역설적으로 ‘연대의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한 사람의 고독 속에 머문다는 것은, 사실 그 누군가가 곁에 서 있다는 미묘한 기운을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말테는 이렇게 썼다. 결국 고독은 끝없는 분리감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연결을 향한 절박한 감각을 일깨운다.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타자를 향한 기울어짐—곧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 하는 작은 충동—을 품고 있다.
이처럼 말테가 우연히 마주친 이방인의 풍경, 예컨대 역 광장에서 노점을 지키며 물건을 팔아야 하는 노인의 표정, 혹은 난간에 기대어 사색에 잠긴 중년 여성의 옷자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모습은, 당장 내 삶과 전혀 다른 듯 보이지만 동시에 나와 같은 맥락의 외로움을 공유하는 존재들이다. 말테는 그 순간 ‘나와 당신’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치 보이지 않는 실 하나가 우리를 서로 연결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결국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연대를 꿈꾸는 작은 틈’을 만들어낸다. 말테는 스스로를 ‘약한 고리’처럼 느끼지만, 바로 그 약함이 주변 풍경에 더욱 민감히 반응하게 만들고, 작은 틈을 통해 타인을 비로소 마주하게 한다. 그 작은 틈이 모여 또 다른 사람의 작고 소박한 손길을 포착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글루미 릴레이> 속의 작가들 또한 마찬가지다. 품 안에 품고 있던 우울을 꺼내어 이야기로 만든 저마다의 고심 어린 글쓰기는, 아주 작은 틈을 내어 삭막한 콘크리트 같은 우울 바닥에 싹을 틔운다. 그리곤 꽃을 피운다.
사소한 관찰이 모여 형성하는 공감의 그물망
말테는 여행 중에 마주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지만, 비범한 사건을 좇지는 않는다. 그의 눈은 오히려 ‘사소하지만 눈에 띄는’ 순간들을 향한다. 길모퉁이의 흡연자 한 쌍, 적막한 객차 한 칸에 스며드는 먼지 낀 빛, 굳게 닫힌 가게 문 앞에 쌓인 작은 낙엽 더미. 이런 장면들을 통해 말테는 ‘세상은 끝없이 말을 걸어 온다’고 믿는다.
사실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풍경—걸음을 옮길 때 발끝에 툭 감기는 돌멩이, 어느 골목에서 들리는 구두 굽 소리, 지나가는 아이의 가벼운 웃음—이야말로 세상이 우리에게 건네는 ‘미약한 손길’이라 할 수 있다. 말테와 같이, <글루미 릴레이>의 작가들은 그 손길 하나하나를 낚아채어 자신만의 언어로 그물을 엮어 낸다. 그 그물은 결국 다른 이들과의 공감으로 이어질 실타래다.
“누군가의 발걸음 하나, 그것이 모래 위에 찍히는 순간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말테는 이렇게 쓰고, 한동안 그 발자국에 집중한다. 그 발자국은 곧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며, 말테 자신도 한 명의 목격자로 남겨진다. 그러므로 ‘사소한 관찰’은 곧 ‘공감의 씨앗’을 품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보통 주목하지 않는 작은 풍경들을 면밀히 살필 때, 비로소 ‘나는 너와 이어져 있다’는 깨달음이 솟구치게 된다. 그 깨달음을 거창할 것 없는 저마다의 순간을 사소한 관찰로 엮어 낸다. 그리고 이 순간이 바로 ‘약한 고리가 연결되는 순간’이다.
기록의 힘, 작은 손길이 모여 산문이 되는 과정
우리의 사소한 관찰은 결국 ‘기록’이라는 형태로 완성된다. 한 줄, 한 줄이 모여 쌓일 때, 그 사유는 비로소 무게를 얻는다. 이때 기록의 역할을 살펴보면, 단지 사건을 적어 두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누군가를 관찰하고 그 이야기를 말로 남기는 순간, 그 사람은 작가의 기록 속에서 살아 숨 쉰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마치 오병이어 기적에서 ‘남은 조각들을 모으라’는 예수의 지시와도 닮아 있다. 즉, 작가는 자신의 사유와 감각이라는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종이 위에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비록 개별적으로 보면 누구에게나 쉽게 지나칠 만한 순간이지만, 모였을 때 놀랍도록 풍요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기록은 그 자체로 ‘연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록된 순간은 언제든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다시 읽힐 준비가 되어 있고, 읽는 이에게는 ‘나만의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는 ‘관찰의 흔적’을 넘어 ‘공명하는 떨림’을 전달한다. 그 떨림이란 곧 ‘언어의 에로스’—타인을 끌어당기고, 함께 공명하게 만드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글루미 릴레이>의 작가들은 언어를 통해 타인의 사소한 순간을 끌어당기고, 읽는 이조차 그 떨림을 공유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으면,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정말 내 앞에 그 사람이 있었다’고 느끼게 된다. 우울은 떨림으로, 그 떨림은 희망이라는 다른 언어로 전이된다. 출발어는 우울이지만, 도착어는 희망이 되는 기의 번역기가 되는 글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약한 고리’들이 서로 간극을 메우며 강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말테는 자신과 타자, 그리고 독자까지 이어 붙인다. 한 사람의 작은 기록이 다른 수많은 고독한 영혼들을 서로 연결하는 ‘언어의 연대기’가 되는 순간이다.
말테적 시선이 던지는 초대, 남겨진 작은 빵 한 조각
말테와 <글루미 릴레이>의 작가들은 우리에게 누구나 ‘하나의 작은 빵 한 조각’을 품고 다니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좋다. 마음속 작은 배려, 길 위에서 흘린 시선, 소외된 이를 향한 무심한 미소 한 번, 혹은 낯선 이에게 건넨 짧은 안부 인사일 수 있다. 이 떨림의 기록이 증명하듯, 이 모든 것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결국엔 우리를 서로 이어 주는 실이 된다.
“희미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누군가의 지극한 시랑이 자신에게 전해져 온다. 사랑의 온기 속에서 오래전의 상처가 달빛 아래 비로소 희미해진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낼 용기가 기억의 방에도 은영의 마음속에도 한가득 채워지는 것만 같다. 무엇이든 꿈꾸고 해볼 수 있던 어린 날의 한 때처럼."
-<글루미 릴레이> '인형수선사'중-
Bono 작가님의 '인형수선사'의 결말이자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고독만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질문은 ‘연대를 향한 초대장’이다. 작은 순간에 머물지 않고, 주변을 찬찬히 살피며, 감각을 열어 두라는 초대장 말이다. 책 속 작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자기만의 기록을 쓰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기록이 모여 세상의 수많은 기록들과 실을 이루어, 보이지 않던 관계의 망을 드러낸다. 이것은 ‘약한 고리’가 점점 선명하게 보이는 또 하나의 오병이어적 희망이다.
말테가 깨닫고, <글루미 릴레이>의 작가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대로, ‘약한 고리’란 곧 서로를 껴안을 수 있는 ‘틈’이자 ‘가능성’이다. 중요한 것은 그 틈을 마주하고도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움츠러들지 않는 용기다. 나에게 남은 그 작은 ‘빵 조각’을 손에 쥐고, 말테처럼 세상을 향해 기록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그러면 분명, 그 조각은 다른 이의 조각과 만나 놀라운 연대의 기적을 이루어 낼지도 모르니까.
종종,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서 어둠 속을 걸어가는 일에 비유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듯, 의심과 침묵의 연속이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누군가가 건넨 문장 하나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그 문장이 어둠 속 작은 등불이 되어 다음 발걸음을 내딛게 만든다. <글루미 릴레이>는 그런 문장들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글이 누군가의 밤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 주는 것. 우리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그런 문장 하나를 서로 건네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실 부탁을 받거나 지인의 책에 대한 리뷰나 서평은 자제하는 편이다. 아내가 지적하듯,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T’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기에 빈말을 건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출판사나 기획사에서 개념서와 인문서 서평 부탁이 있었으나, 후속 의뢰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20년 넘게 빈틈과 오류를 찾아 개선을 도모하는 컨설턴트의 굳은살이 여전히 단단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발적으로 <글루미 릴레이>에 대한 추천 리뷰를 남긴다.
글을 읽는 사람만큼 글을 쓰는 사람이 늘었다. 글을 쓰는 사람만큼 책을 내는 사람도 늘었다. 책과 출판의 양산에 대하여 양가적인 생각이 스민다. ‘책을 내준다’는 기획과 ‘잘 팔리는 책을 쓰게 해 준다’는 강의가 넘치는 세상이다. 거기에 더해, 거대 언어 모델이라는 AI도 제법 흉내 근처까지 올라왔다. 이런 세태가, 자신만의 ‘글감옥’ 속에서 고민과 사유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지포스 같은 일상을 마주하는 글쟁이들을 더 의기소침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글루미 릴레이>는 우울의 연작이 아니라 희망을 품고 꽃을 피우는 ‘블루밍 릴레이’로 우리에게 작은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각자의 작은 기록이 모여 연대가 되는 과정이 우울이 희망으로 바뀌는 과정으로 지환되는 마법의 시간으로의 초대다. 엄청나게 완벽하지도, 입이 떡 벌어지게 힙하지도 않은 아주 사소한 관찰의 연작에서, 진짜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을 마주하길 감히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