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다른 이름 01
짐을 싸다 말고 잊었다
내가 누구였는지
짐이 무엇이었는지
길은 있었나
아니, 그냥 펼쳐진
무언가 낮은 쪽
그쪽이 어딘지도
이제는 묻지 않는다
발바닥이 나를 밀었다
나는 나를 들고 있었다
어깨가 꺾이고
허리가 무너지고
심장은 무거운 짐이었다
고독은 상태가 아니다
고독은 운동이었다
한 귀퉁이에 섰다
모서리처럼 단면처럼
부스러진 세계의 끝에
선이 흘렀고
면은 탈락했고
구체는 조용히 파열됐다
말은 남지 않았다
이름은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가 묻지 않았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어디로 가는 중이었고
그 어디는 없었고
그 누구도 아니었다
움직임만 있었다
움직임만 있었다
움직임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