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들 속 서늘한 생각
지난해 여름도 올해와 다름없었다고들 한다 그 기억이 없다 지난 여름도 이렇게 무더웠었나 고개를 갸웃하다 습격처럼 떠오른 작년 오늘의 사진이 묵은 침묵을 꿰뚫는다 붉고 노란 핏주머니들이 매달린 주사실은 감염을 피해 얼음처럼 차갑게 냉각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바닥처럼 납작하게 누워 있었다 그날의 일상이란 것이 늘 그랬다
새벽같이 눈을 뜨고 바람도 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 채혈을 하고 수혈을 위해 조심스레 검체를 보관하고 두어 시간 지나 마주한 주치의는 깊게 주름진 미간으로 오늘도 피를 맞고 가세요라고 말한다 위로라 하기에 너무 얇은 말 그러나 돌아서는 발걸음 뒤로 남은 말은 어딘가 서툰 응원의 언저리에서 오래 맴돌았다
이삼일쯤 건너 또다시 새벽 알람에 일어나 빠른 샤워를 하고 바나나 하나를 둘이 나누어 먹고 740번 버스를 타며 두 명이요라고 말하고 교통카드로 하루의 출석을 찍는다 여섯시 반에 열리는 채혈실 앞에서 대기번호는 매번 열 번째 너머이고 나보다 먼저 도착한 어르신들의 굽은 등 너머에 조용히 앉아 또다시 채혈하고 진료받고 피를 맞는다
마음도 덥고 몸도 덥다던 그날들 속에서 걱정만은 묘하게 시원한 기운처럼 뼈 사이로 스며들었고 나는 그렇게 무더운 줄도 모르고 지냈다 피의 온기보다 낮은 방의 공기 그 침묵 속에서 한 방울씩 흘려보내던 여름의 시간들
그래서 지금 이 열대야가 무엇인지 나는 안다 한밤에도 식지 않는 더위의 숨결 속에서 견뎌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열대야의 반대말이 있다면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낮은 체온 환한 이마 위에 얹어둔 검은 그림자 아래 미지근하게 식어가는 숨 그 위에 놓인 아주 조용한 생의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