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셔틀을 타면
병원과 지하철 사이
짧은 구간을 잇는 셔틀버스 안
막내 이모뻘 아주머니 셋이
꽃처럼, 혹은 바람처럼 앉는다
엉덩이보다 먼저 도착한 말 몇 송이
아주머니 셋이 피운 수다꽃
버스 안 가장자리부터 차오른다
남편은 언제나 등장과 동시에 흉이 되고
아들은 아직도 취직 중이고
친구 아들은 큰 회사 다니며 곧 집 산다지
친구 남편은 올해도 승진했다나
말꽃은 가지마다 피고
웃음은 까르르 데구르 톡톡 튀며
좁은 차창을 넘나든다
전화벨이 울린다
"누고?"
"그런데?"
"알았다, 고마 끊으라"
그 순간 살구빛 목소리는
이내 말라붙은 칼날이 되어
초겨울 바람으로 굳는다
냉랭한 톤, 꺼칠한 단음
성적 통지표 받은 날 어무이의 저녁 같았다
무슨 일인진 몰라도
돈 안 갚는 친구였을까
실업급여 끊긴 남편이었을까
아직도 용돈 찾는 다 자란 아들의 빈 주머니일 수도
주어도 없고 목적어도 없는 말
그러나 우리는 안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라는 걸
숨 한 번, 쉼표 하나 겨우 건너 그 짧은 틈 뒤에
다시 피어나는 말꽃의 잎들
"그래가, 지가 어쩌겠노"
"맞다, 그 집은 진짜 별로더라"
다시 수다가 피고
다시 말이 굴러다닌다
입은 쉼 없이 놀고 마음은 울지도 못한다
잊은 듯, 아니 잊기로 한 듯 말은 더 빠르게 튀고
웃음은 더 가볍게 깔깔, 또 깔깔 희극배우처럼
무대 뒤에서 눈물 닦고 무대 앞에서 웃는 것처럼
아, 어머니들 입술로 집을 짓는다
허름하고 바람 새는 삶이지만
그래서 더욱 말이 필요했다
말을 멈추지 않는 건
삶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였는지도
잡담으로 하루를 지탱하는
그 작은 고집, 그 오래된 기술
어무이도 그렇게
입술로 바람 막는 집을 지으셨나 보다
허름해도, 자꾸 기울어도
수다 속에서만큼은 당신이 당신일 수 있었던 시간들
속을 들키지 않으려 말을 쏟고
침묵 대신 수다를 피워
구질구질한 삶에 작은 버팀목 하나 세운다
슬픔은 드러나지 않는다
차라리 입술로 집을 더 짓는다
친구의 남편을 옆집 아들을 몇 번쯤 더 자랑하고 만다
그게 하루를 견디는 방식이기에
나는 그때, 그 언젠가 전화기 앞의 긴 통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심통 부리며 방문을 닫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방 안보다
어무이의 마음이 더 갇혀 있었을지도
이제는 서로 소식조차 드문 어색한 이름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멋도 정도 없는 아들 하나가
당신의 수다 상대가 되었으면,
그저 말없이 손이 빈 전화기를 바라본다
그 연습을 오늘은 낯선 사람들과 해보려 살아 낸다
시간이라는 집을 입술로 지으며
그 집 안에, 어무니의 속사정을 앉히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