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밀어내고 가을이 오면
서울역 플랫폼에 발을 디디는 순간
부산에서 달려온 속도가 숨을 거두고
내 바지자락 끝에 작은 생명이 매달려 있었다
귀뚜라미 한 마리
마치 떠나는 여름의 가장자리를 붙잡듯
가느다란 발톱으로 계절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폭염은 하루마다 짜증의 심지를 태웠고
가을은 먼 설화처럼 뒷골목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맞다
시간은 물길을 만들고
바람은 문을 열 것이며
가을은 누구의 허락도 없이 찾아올 것이다
술이 익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오직 시간 하나였던 것처럼
그때 문득 나희덕 시를 노래에 담은
안치환의 귀뚜라미가 떠올랐다
그 노래에서 가을은
맑은 하늘이 풀숲을 넘어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이었다
그날이 오면
이 여름밤의 더위와 고단함도
서랍 속 오래된 사진처럼 밀려나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울음이 거둬지고
풀잎 위 가을빛이 뒤척이는 날
나는 다시 희망을 불러내어
계절의 강을 건너 살아 있음을 노래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