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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더 좁은 마음

늦은 아침 생각의 시창작 10

by 박 스테파노

잔혹한 가난은 새벽의 돌길에서 시작된다

안개는 낮은 지붕을 덮고 풀잎마다 맺힌 이슬은 햇살에 닿기도 전에 사라진다

나는 그 사라짐 속에서 배운다

미움도 이슬 같다는 것을 붙잡으려 하면 이미 흩어지고 숨을 고르면 어느새 증발한다


누구를 향한 미움도 끝내 내 잘못의 그림자로 되돌아오던 날들 허기에 잠긴 저녁마다 끓는 물만 올려놓던 가난한 부엌처럼

분노 대신 김이 피어올라 천장에 부딪혀 흩어마치 하늘 높은 곳에서 흘러내린 별빛처럼 잠시 반짝이다 사라진다


그러나 세상은 늘 잠시의 평온을 깨뜨린다

담장 너머의 웃음, 남의 흠을 찢어내어 빨랫줄에 걸어두듯 햇볕 아래 널어놓고 비웃는 목소리 그 웃음은 바람결에 흩날리며 남루한 걸음을 조롱하는 먼지로 변한다

나는 몇 번이고 그 먼지를 벽 너머로 내던지고 싶으나 던질수록 하늘은 더 좁아지고 더 캄캄해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미움마저 아깝다

세상은 이미 텔레비전만 켜도 눈을 가릴 만큼 불타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으니 차라리 그보다 덜한 하찮은 조롱은 돌멩이처럼 길가에 흘려두기로 한다

나는 믿는다

그 웃음은 언젠가 바람을 따라 뿌린 대로 되돌아오리라

그러면서도 나는 더 작은 풀잎의 그늘 속으로 숨어든다


저녁 무렵, 매미 소리는 잦아들고 노을은 강 위에 붉게 번졌다

나는 강가에 앉아 기도했다

풀잎처럼 내 어깨를 덮어주던 바람의 평화를

돌처럼 곁에 앉아 있던 그림자의 안식을


밤이 깊어가자 별빛이 물 위에 떨어졌다

파문이 번져가며 강은 은빛의 길을 연다

그 길 위에서 나는 깨닫는다

그때 문득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되다’는 말씀, 증오가 사치로 변하던 날들 그 사치마저 내려놓을 때 가난은 돌멩이 같은 감사로 남는다는 것을


그러나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멀리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흔들리고 거리마다 분노와 소음이 뒤엉켜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짊어질 수 없다

분노는 각자의 몫, 내 몫은 겨우 이 좁은 길 위를 걸어내는 일이다

나는 오히려 텔레비전 속 야구장의 허무한 역전패에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고 가난한 하루 앞에서는

미움마저 덧입히지 않는다


가난은 잔혹하나 나를 지켜준다

내 손에 남은 것은 돌 몇 개,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별빛 몇 점뿐

그 돌과 별빛이 나를 지탱하고 나는 오래도록 그 빛을 기억하고 싶다


내일의 새벽이 오더라도 나는 바란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았던

오늘의 가난이 강물 위 별빛처럼 오래 반짝이기를

더 나은 내일 속에서도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았던

오늘의 가난을 오래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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