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 생각의 시창작 12
달은
해가 숨어 들어야만
비로소 얼굴을 드러낸다
해가 서쪽 바다 속으로 깊게 잠길 동안
달은 이미 동산 위에서
자신의 부드러운 부양을 감춘 채
묵묵히 기다린다
일출은
해가 동쪽 수평선 위로
살짝 얼굴을 내밀 때부터
눈에 들어오지만
월출은
달이 이미 떠 있어도
해가 물러나기 전에는
그 존재를 알 수 없다
찬란하고 강렬한 빛은
소박하고 은은한 빛을 덮어버린다
햇살이 세상을 가득 물들이며
울긋불긋한 색채를 쏟아낼 때
달빛이 천천히 드리우는
깊은 밤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얼마나 고마운가
빛나지 않아도
고마운 것
빛나지 않아도
소중한 것
그 가치를 깨닫기에는
삶은 너무나 짧다
영글어 가는 것은
달빛만이 아니다
일상 속에도
서서히 익어가는 은은한 빛이 있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는 숨은 빛들
그 조용한 결실 속에서
삶은 깊이를 더한다
오늘도
모든 날들이
찬찬히, 그러나 분명하게
익어가기를
조용히 숨을 들이키듯
달빛처럼
* 세상의 모든 '나홀로'와 '단둘이'에게. 추석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