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문신과 소년심판 사이, 기다림의 풍경

표식으로 읽는 시대, 심판으로 재단되는 사람

by 박 스테파노

살갗 아래 남은 용기의 흔적


병을 얻은 뒤 몸이 가장 먼저 말해온 변화는 체중의 이탈이었다. 척추는 뼈의 석회화가 진행되며 연골이 닳아 눌렸고, 키도 어느새 3센티미터쯤 사라졌다. 그러나 그 감소는 결국 체중의 격변 앞에서 조용한 부스러움에 가까웠다. 한때 운동을 생활처럼 즐기며 두텁게 쌓아올린 근육 덕에, 쉰을 바라보는 나이까지도 나는 굵은 팔뚝과 단단한 허벅지, 승모근이 선명한 어깨를 갖고 있었다. 그 몸이 2023년, 잦은 이사와 이전으로 삶이 흔들리던 시기에 조금씩 무너졌고, 결국 발병을 확인하던 병원의 저울 앞에서는 예전보다 23킬로그램이나 빠진 나를 마주했다. 요즘은 그 절반 이상을 되찾았지만, 몸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공백만은 아직 착시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살의 부피가 줄어들며 처음 마주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는, 내 어깨에서 삼두로 이어지는 ‘나만의 표식’이 미세하게 줄었다 다시 늘어나는 장면이었다. 왼쪽 어깨에는 손바닥을 완전히 덮고도 남는 크기의 타투가 있다. 삶이 기울기 시작하던 어느 날, 마흔을 넘긴 나이에 과감히 어깨 한 면을 채웠다.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과 그 표징을 새겨 넣어 만든 문신은, 그날 이후로 묘한 부적처럼 작동했다. 여섯 시간을 견디며 생살에 바늘을 꽂아 넣었던 그 고통의 시간은 전쟁 같은 세상에서 나를 식별해 주는 조용한 용기로 바뀌었고, 인내라는 이름으로 오래 기억 속에 남았다. 지금은 합법화되어 누구나 비교적 쉽게 새길 수 있지만, 당시의 선택은 내게 큰 결단이었다.


한 때는 '건장'했던. 내 사진


문신(文身), 타투(Tattoo)라 불리는 이 시술은 한동안 ‘입묵(入墨)’, ‘자문(刺文)’ 등의 이름 아래 '유사의료행위'로 분류되었다. 불법의 긴 그림자는 의료권 침해를 이유로 한 의사들의 주장과 그에 따른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2025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문신사법’이 통과되며 비의료인의 시술이 정식으로 허용되었고, 국가 면허를 받은 문신사만 시술할 수 있게 되었다. 33년 동안 의료행위로 묶여 있던 문신은 마침내 양지로 올라섰지만, 시행까지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고 문신 제거는 여전히 의료인의 몫으로 남는다. 미성년자의 시술은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 역시 근간을 이룬다.


문신은 살갗을 바늘로 찔러 피부와 피하조직에 작은 상처를 낸 뒤 먹물이나 물감을 흘려 넣어 형상을 남기는 행위로, 염색에 가까운 헤나 등과 달리 한 번 새기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원시시대 고대 문명에서는 계급을 구분하거나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표식으로 쓰였고, 남태평양 마오리족과 같은 공동체에는 그 관습이 여전히 이어져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유교국가가 정비되며 문신이 ‘야만의 흔적’으로 여겨졌지만, 간혹 징표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존재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 문신이 문화적 실천으로 성행했으나,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유교적 금기가 강화되었다. 『경국대전』에까지 그 규율이 명시될 만큼 금령은 엄격했지만, 민간에서는 오히려 은밀히 ‘성행’했다. 어우동은 자신과 동침한 남자들의 이름을 몸에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전쟁터로 향하기 전 몸에 이름을 새겨 넣던 부병자자(赴兵刺字)의 풍습은 일종의 최후의 식별자로 기능했다. 살갗에 새겨 넣는 글자와 무늬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존재를 기억하고 지켜내려는 마지막 언어였던 셈이다.


이 모든 기록을 다시 더듬으며 나는 생각한다. 내 어깨의 문신 역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삶이 흔들리던 어느 해의 결심과 사랑, 그리고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을 끌고 살아내려는 나만의 용기가 스며든 흔적이라는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살갗에 새겨진 무늬는 줄었다가 다시 늘어나는 지금의 몸처럼, 여전히 생의 경계에서 미세한 숨결로 움직이고 있다.



몸에 새긴 시대의 그림자와 이름들


구소련 군인들은 긴 군복 안쪽에 수를 놓거나, 아프가니스탄 파병 시에는 피의 형질을 잃지 않기 위해 혈액형을 문신으로 새겼다. 그 사실은 훗날 빅또르 최가 <Группа крови(혈액형)>라는 반전 노래를 내놓는 데 영감을 주었고, 윤도현밴드 YB가 이를 번안하며 또 다른 시대적 울림으로 이어졌다. 한편, 나치 독일의 슈츠슈타펠(SS) 소속 군인들은 왼팔 안쪽, 겨드랑이 부근에 Blutgruppentätowierung라 불리는 혈액형 문신을 새겼다. 본래 목적은 부상 시 빠른 수혈을 위해서였으나, 전쟁이 끝나자 그 문양은 되려 그들을 가려내 체포하는 식별표가 되었다. 몸에 남긴 표식이 생을 구하기 위한 장치에서 곧바로 심판의 징표로 뒤바뀐 셈이었다.


문신이 상처를 은폐하거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되는 경우도 있다. 걸그룹 씨스타의 효린은 어린 시절 수술로 남은 큰 흉터를 가리기 위해 문신을 새겼고, 래퍼 에미넴 역시 자해의 흔적 위에 그림을 얹어 자신의 내면을 봉합했다. 최근에는 장애나 흉터를 덮어주는 ‘커버링 타투’가 사회공헌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는 문화적 흔적이 적지 않은데도 문신은 오랫동안 범죄의 기호로 간주되었다. 목욕탕과 수영장의 출입이 거부되던 시절이 있었고, 군대나 경찰 채용 과정에서도 불이익이 따랐다. 문신의 의미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극단적으로 흔들렸고, 한 몸에 새겨진 무늬가 곧바로 한 인간을 규정하는 낙인이 되었다.


1691년 필리핀에서 끌려온 남태평양 출신 ‘왕자 지올로’팸플릿. 온몸에 문신을 한 이 ‘희귀 인간’은 영국 런던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전시되다 천연두로 사망. 위키미디어 코먼스


역사 깊은 곳에서는 문신이 형벌의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죄인과 노예에게 문신을 새겨 소속과 굴욕을 드러냈다. 중죄인에게 부과된 묵형(墨刑)과 자자형(刺字形)은 죄의 목록을 얼굴과 팔다리에 새겨 넣어 ‘주홍글씨’의 효과를 남겼고, 그 또한 일종의 사회적 격리를 위한 신체적 선고였다. 우리 역사에서 이를 ‘경을 친다.’라고 표현한 까닭은, ‘경(黥)’이 이마나 팔뚝에 죄명을 새기는 형벌을 의미하고, ‘치다’가 ‘겪다’ 혹은 ‘치르다’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경은 보통 귀양과 병행되었으며, ‘경을 칠 놈’이라는 욕설 또한 이 형벌에서 기원했다고 전한다. 현대의 실명 공개나 전자 발찌라는 방식을 떠올리면 그 낙인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낙인(烙印)은 stigma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부정적 이미지로 주로 회자된다. 그러나 같은 표식이 신뢰와 명성을 쌓아 올리기도 한다. 대초원의 유목민과 미국 서부 개척자들은 가축에 낙인을 찍어 소유를 구분했고, 고기와 가죽이 유통되며 그 낙인이 곧 품질의 보증표가 되었다. 그렇게 명성이 쌓이며 ‘브랜드’라는 개념이 태어났다. 낙인이 어떤 이에게는 주홍글씨가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명성을 이끄는 서명이 되는 것이다.


타투와 문신도 그러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혐오의 표식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언어가 될 수 있다. 문신의 의미가 단선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이유는, 결국 인간의 삶이 그 표식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연예인도, 정치인도, 기업가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각자의 몸에 새겨 넣는 문양이든, 마음에 남은 흔적이든, 그 의미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을 띤다. 인생은 결국 그 ‘나름’의 모양을 조금씩 빚어 가는 과정이고, 문신은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남겨진 조용한 흔적에 불과하다.



심판의 문턱에서 흔들리는 마음들


최근 연예계의 소식들은 유난히 뜨거운 온도를 띠고 있다. 그 열기 속에는 사건의 본질과는 다른 의도가 섞여 있다는 말도 돌고, 대중의 반응은 이성적 판단을 넘어 감정의 소용돌이로 흘러가는 중이다. 특히 선한 이미지를 구축해 왔던 어느 배우의 소년 시절 범죄가 뒤늦게 드러난 사건은 마음에 오래 걸렸다. 사건 자체보다 마음에 남은 것은 사후적 노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지나치게 쉬운 관용과 과도하게 가벼운 엄벌주의가 공존하는 이유는 그것이 ‘남의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편에 서든, 가해자였던 이의 과거와 피해를 겪은 사람의 삶에 대한 성급한 말들이 다시 또 다른 낙인을 찍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저는 소년을 혐오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가 내뱉는 이 대사는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작품의 정수에 가까운 문장이다. 소년심판을 교화의 과정으로만 오해하며 무조건적 온정으로 바라보려는 대중적 환상을 정면으로 흔드는 말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범죄의 당사자를 ‘소년’이라고 부르면서도 단호하게 꾸짖고, 과거에는 반말로 재판을 진행하며 죄의 무게를 명확히 드러내기도 했다. 소년이 약자라서 관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그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회적 책임이 그 관용에 섞여 있는 것뿐이지, 경감의 이유는 결코 아니다.


드라마 <소년심판>의 한장면. 넷플릭스 제공


문득 ‘심판’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붙잡았다. 사전을 열어보면 심판(審判)은 ‘어떤 문제와 관련된 일이나 사람의 잘잘못을 가려 결정하는 일’이라 풀이되어 있다. 종교적 맥락에서는 ‘신이 인간과 속세의 죄를 제재하는 일’이라 적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이 이어진다. 심판은 ‘심리(審理)’와 ‘재판(裁判)’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한다. 곧 궁금증이 일었다. ‘심리’는 무엇이고, ‘재판’은 무엇일까.


심리는 재판에 앞서 법원이 사건의 근거가 되는 사실과 증거, 그리고 각자의 주장을 검토하는 공식적 절차다. 쉽게 말해 원고와 피고, 증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며, 영어로 hearing이라고 한다. 심리는 재판의 골조를 세우기 위해 사실관계와 법률적 타당성을 조사하는 과정이고, 그 절차는 공평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판사는 이 과정에서 해당 사건을 재판에 부칠 만큼의 증거가 있는지를 가늠한다.


재판(judgement)은 이렇게 준비된 사실들을 토대로 법원이 내리는 공권적 판단이다. 민사·형사·행정 재판으로 구분되며, 판결·결정·명령 등으로 이어진다. 본래 ‘옷을 마름질하듯 생각을 재단한다’는 어원에서 출발한 개념이라고 한다. 옳고 그름을 자르고 가르는 일에서 오늘날 사법적 판단의 의미로 발전한 셈이다.


이 둘이 합쳐진 것이 ‘심판’이다. 심리가 저류에서 흐름을 정리한다면, 재판은 그 흐름을 수면 위로 올려 최종적 판단으로 마무리한다. 한때 법률에서는 ‘심판’이라는 용어가 실제로 사용되었다. 가사 심판법이 대표적인데, 비공개로 진행되며 법원에 일정한 재량을 인정하는 절차였다. 이후 가사 사건이 복잡해지며 가사 소송법으로 개정되었고, ‘심판’이라는 말은 법률적 용례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래서 <소년심판>의 제목에 담긴 낱말 하나가 유독 무겁게 다가왔다. 지방법원 소년부 판사의 일상을 떠올릴 때 흔히 ‘재판’이라는 언어가 먼저 떠오르지만, ‘심판’이라는 낱말은 다른 온도와 깊이를 전한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 속에서 생을 마친 이가 전능자 앞에서 최종적 판단을 기다리는 장면처럼, 혹은 염라대왕의 처분 앞에서 극락과 지옥의 경계에 선 결정적인 순간처럼 다가온다. 그 울림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소년을 둘러싼 판단은 언제나 어른들의 책임을 반사해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심판의 감정은 결국 우리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 서 있는 일에 가깝다.



소년을 바라보는 법의 그림자와 빛


뉴스와 여러 보도를 통해 익숙하게 들었듯, 소년이 법적 피고소인이 되거나 처벌·처분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일반 재판의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나 상당수 사례가 소년법에 따라 '소년보호' 사건으로 다뤄지기 때문에, '심리'와 '재판'을 아우르는 결정을 흔히 '심판'이라 부른다.


정신을 곧게 세워 소년법의 내부로 들어가면, 성인 재판과는 다른 결이 자리한다. 보호 처분에서 사법 조력자를 '변호인'이 아니라 '보조인'이라 부르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이 제도는 형사재판에 의한 처벌보다 소년보호에 의한 처분을 우선한다. 처벌은 단호한데, 처분이라니. 그리고 그 이름이 '소년보호 처분'이다. 법정에서 판사가 피고석의 아이를 일관되게 '소년'이라 호명하는 순간, 죄를 저지른 이에게조차 보호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제도의 성격이 드러난다.


더 걸리는 지점은 형사재판으로 넘어가더라도 소년범 감경(제60조 제2항)에 해당되어 형량이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사형 및 무기형 완화(제59조)에 따라 최고형이 20년이고, 무기나 사형은 선고할 수 없다. 또한 '부정기형'으로 선고되어, 장기와 단기를 함께 정하는 방식이 적용된다(소년법 제60조 제1항). 판례에서 "장기 3년, 단기 2년"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기형이 끝나는 시점에 교정당국의 평가를 거치면 장기형 만료 전에도 출소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대중적 논쟁의 불씨가 되곤 한다.


'촉법소년(형사미성년자)'으로 대표되는 청소년 범죄의 가벼운 처벌 문제는 오래된 사회적 쟁점이다. 소년법의 보호 아래 처벌이 경미하다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성인이 자신의 범죄를 청소년에게 뒤집어 씌우거나, 일정한 대가를 조건으로 대신 자수하도록 시키는 일들. 더 나아가 성인이 청소년에게 폭력이나 살인을 청부하는 극단적 사례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소년법은 흔히 '합법적 살인면허의 용인'이라는 비판에까지 노출된다.


드라마 속 소년들 역시 쉽게 반성하지 않는다. 개인적 억압감을 외부의 약자에게 쏟아내고, 보호시설에서는 술과 담배를 조건으로 시설 관리자와 거래하려 한다. 자신이 촉법소년임을 잘 알기에 성인의 범죄를 대신 자수하기도 하고, 형사재판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 코스프레 연기에 몰두하는 일도 흔하다. '교화'는 동화 속에서나 가능해 보이고, 반성이라는 단어는 기약 없이 멀어진다. 그래서 <소년심판>의 심은석 판사가 품은 혐오가 일견 설득력을 획득한다.


그러나 반사회적 청소년 범죄는 성인 범죄와 동일선상에서 다룰 수 없는 복잡성을 지닌다. 청소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 영역은 늘 높은 감수성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성숙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를 들어 성인과 동일한 처벌을 주장하는 흐름이 강해졌다.


드라마 <소년심판>의 한장면. 넷플릭스 제공


그렇다면 신체적 성숙이 곧 성인과 동일한 형사책임의 근거가 될까. 이 논리라면 '소년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가 된다. 잔혹한 범죄조차 미안함 없이 저지른 이들에게 보호처분이 온당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명확한 주장이 있다. 소년법은 소년범죄를 증가시키지 않으며, 법학·윤리학의 관점에서 나이에 따른 형벌의 차등은 정의에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소년법에 대한 혐오가 법과 윤리에 대한 무지, 혹은 엄벌주의의 연장선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엄벌주의가 들려주는 정서적 울분에 흔히 반문해 보게 된다. 그렇다면, 얼마나 벌을 주어야 충분할까. 5년이 부족하면 10년, 10년이 부족하면 20년? 하지만 '오늘만 살자'는 강력범들이 형량이 늘어난다고 범죄를 주저할까. 자유를 박탈하는 징역형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다. 2~3평 되는 방에 6~8명이 지내며 함께 지내며 사회와 단절되는 수년은 상상보다 무겁다. 그리고 형벌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극악한 범죄자들은 완전범죄에 더 몰두하고, 그 결과 후속 범죄는 더욱 잔인해질 가능성이 있다.


법은 늘 묻는다.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 능력으로 그 행위를 저질렀는가. 그에 따라 죄질이 달라지는 것이 법정신이다. 제정신으로 범한 범죄와 정신지체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단 능력의 본질적 저하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이며, 그래서 참작 사유가 된다. 현대 형법의 뿌리인 '책임주의'는 바로 이러한 사태를 놓치지 않는다. 엄벌주의가 정서의 이름으로 법을 대체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묻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소년의 시간을 건너는 일


최근 한 유명 배우를 둘러싼 비호와 비토의 갈래는, 어쩌면 ‘소년의 시간’을 더 유연하게 이해해 보려는 무의식적 동의처럼 보인다. 그 말은 곧 더 깊은 성찰이 요청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소년은 미숙하다. 경험의 부족이 아니라 판단 능력의 미완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그 미완을 참작하며, 교화의 가능성을 헤아리고, 억울함을 구제하려는 책임을 품는다. 그것이 이른바 책임주의라 부르는 태도일 것이다.


종범ㆍ공범으로 보였으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아이들, 피해자였음에도 강압에 의해 가해자로 둔갑된 사례는 낯설지 않다. 검사와 판사들은 법 집행의 최종 목적은 ‘억울한 이의 구제’에 있다고 말해 왔다. 처벌로 기강을 바로세우는 일이 우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사회에서 억울한 사람의 몫은 늘 약자에게 돌아간다. 소년법이 최소한의 안전망처럼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는 익히 들은 말을 다시 뒤집어 건넨다.


“아이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한다는 말이 있지요. (말을 뒤집으면) 아이 한 사람이 잘 못되면, 온 마을이 아이를 망치는 것 아닐까요.”


법의 책임주의를 비유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쉽게 이야기한다. 믿음을 보여 달라고, 나는 너를 믿고 있다고. 그러나 어른들이 말하는 ‘믿음’의 형상은 아이들의 언어와 다를 때가 많다. 아이들은 어른의 외형을 빌려 갖추었더라도 여전히 미숙하다. 어른들의 약속은 계약처럼 단단하지만, 아이들에게 믿음은 어쩌면 ‘기다림’이라는 낯선 시간에 가깝지 않을까.


가톨릭에는 ‘견진성사’가 있다. 세례 후 신앙을 스스로 굳게 받아들였음을 드러내는 성사다. 한자 ‘견진(堅振)’은 굳게 몸을 세운다는 뜻을 품고, 영어 the Sacrament of Confirmation, 라틴어 Confirmatio는 “확고, 확정”의 의미를 담는다. 세례를 출생신고에, 견진을 주민등록증 발급 혹은 성년의식에 견주곤 한다. 견진을 받아야 비로소 대부ㆍ대모가 될 자격을 갖는다. 누군가의 신앙을 책임질 성숙을 인정받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영세의 조건에 붙는 ‘시한’이다. 유아기나 유소년기 세례는 자율의지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다. 아이가 자라 스스로의 신앙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뜻을 담는다. 그래서 천주교는 견진 이전의 이들을 영적으로 미성년자로 여긴다. 신앙도 강요가 아니라 선택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기다림의 표지다. 보수적인 가톨릭마저 이 기다림을 받아들이는 셈이다.


견진성사의 장면. 부산교구 망미성당 제공


요즘 기사와 SNS를 오가며 발견하는 말들도 기다림을 향한다. 그 길이와 깊이에 정답은 없지만, 기다림 자체가 곧 믿음의 형태가 된다. 기다림 속에서 관계가 재정립되고, 미숙한 마음의 결이 바뀌며, 방관했던 어른의 책임이 서서히 깃든다.


기억하건대, <소년심판>을 보던 내내 속이 들끓었다. 교활하고 반성 없는 아이들에게는 혼쭐 외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왜 이런 모양인지, 부모와 어른들은 무엇을 했는지 혀를 찼다. 그러나 회차가 거듭되자, 혐오했던 아이들의 사연이 어렴풋이 보였고, 다시 범법자로 돌아온 당시 촉법소년들의 양태를 바라보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본이 부모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안일함, ‘내 아이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 유전자, 피해자를 탓하는 왜곡된 판단, 그리고 결과의 단면만 보고 엄벌을 외치는 법 감수성의 빈틈까지. 무엇 하나 비켜갈 수 없는, 어른들의 공동 책임이었다.


그래서 바란다. 기다려 달라는 진심에 응답할 수 있는 어른, 기다리라 말하고 그 시간을 지켜 주는 어른, 그런 마을을 이루었으면 한다. 억울한 아이 하나 나오지 않기 위해, 우리가 먼저 기다림을 배우는 시기가 아닐까. 대책 없는 제도와 여력 없는 사회, 무책임한 어른들이 서로를 키워내지 못한 채 묶여 있는 이 유기체 전체가.


이제는 소년의 시간이 제법 길어졌다. 성인이 된다는 일은 예전보다 훨씬 먼 자리로 밀려났다. 여러 이유로 미숙한 시간이 길어지고, 그 미숙 속에서 자꾸 넘어지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나이를 떠나 아직도 소년의 시간에 머물던 이가 진심으로 회심해 길을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그를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반응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공동정범임을 깨닫는 작은 고백인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냥 쉬었음' 에게 '쉴 틈이 없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