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단상 - 이해 이전의 사랑에 대하여
1.
“옳고 그른건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다른 사람을 욕해서는 안 돼. 우리도 그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수는 있는거야.”
― 이철환 「연탄길1」 중 ―
세상에는 유난히 옳고 그름을 서둘러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타인의 삶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신만의 잣대를 꺼내 들고, 그 위에 선을 곧게 긋는다. 그리고 그 선 안과 밖을 손쉽게 나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간 타인의 장면 하나를 붙잡고, 마치 삶 전체를 내려다본 듯 판단한다.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고. 생각은 곧 결론이 되고, 결론은 곧 평가로 굳어진다.
그러나 가장 흔하고도 깊은 거짓은, ‘조금 아는 것’을 ‘전부 아는 것’으로 바꾸어 말할 때 생겨난다. 아주 짧은 시간의 경험, 단편적인 정보 몇 조각으로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한 듯 착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쉽게 말하고, 쉽게 규정한다. 알았다는 말 뒤에는 언제나 판단이 따라붙는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러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어느 글에서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다”는 문장을 마주했을 때,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몸살처럼 묵직한 통증이 마음 깊은 곳에서 번져왔다. 그 문장은 나를 향한 질문처럼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나는 사랑에 앞서 늘 완전한 이해를 요구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대에게, 세상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까지 말이다.
그 순간부터 ‘이해’라는 말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이해란 과연 무엇일까.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긍일까, 머리로 받아들이는 인지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설명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납득일까. 우리는 흔히 이해를 조건처럼 내민다. 이해할 수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고, 납득해야만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어쩌면 사랑을 가장 쉽게 포기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사랑은 이해의 결과라기보다 시작일지도 모른다. 사랑하기에 이해하려 애쓰고, 끝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머무는 마음.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떠나지 않는 태도. 이해가 부족한 자리에 대신 놓이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품음일 것이다.
나는 이제 그런 사랑을 꿈꾼다. 완전히 알지 못해도, 끝내 설명하지 못해도, 조심스럽게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겨진 여백마저 함께 견뎌내는 사랑을. 옳고 그름을 재단하기보다, 서로의 불완전함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마음을. 그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하는 가장 느리지만 가장 단단한 힘이 아닐까, 조용히 생각해본다.
2.
가톨릭 성가 46번은 <사랑의 송가>다. 개신교에서도 함께 부르는, 교파를 넘어 오래 사랑받아온 노래다. 1994년 겨울, 군 입대를 일주일 앞두고 소천하신 할머니 김봉술 여사가 가장 아끼던 성가이기도 하다. 그 노래는 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익숙해졌고, 계절처럼 반복되어 마음에 남아 있다.
투병이라는 핑계, 삶이 버겁다는 핑계로 냉담 아닌 냉담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오랜만에 성경을 펼쳤다. 책갈피처럼 자연스레 열린 곳은 <사랑의 송가>의 가사가 된 코린토 1서 13장이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묘하게 정확한 자리였다.
한 자 한 자 다시 읽어 내려가자, 어릴 적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말들이 이제는 조용히 가슴에 내려앉았다. 특히 아래의 구절 앞에서 오래 멈춰 섰다. 부분적으로는 알고 있다고, 다 아는 것처럼 여겼던 지난날들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완전한 날을 기다리며, 가장 으뜸인 사랑을 선택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코린토 1서 13.7~10-
사랑이란 결국 진실 앞에서 함께 기뻐할 수 있는 태도다. 그럴 수 있기에 믿고, 바라고, 견디며, 덮어줄 수 있다. 그럴듯한 예언과 신령한 언어, 쌓아 올린 지식이 아무리 많다 해도,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는 모두 스러지고 만다. 특히 부분을 전부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온전한 전체 앞에서, 그 오만은 아무 쓸모도 남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고,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부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전부를 향하려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부를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사건을 낱낱이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스쳐 지나가는 작은 장면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갖는 일에 가깝다.
부분을 붙들고 판단하기보다, 온전함을 향해 머무는 것. 그 느리고 서투른 태도 속에서, 사랑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3.
부분과 전체에 대한 사유는 자연스레 마트료시카로 나를 이끌었다. 러시아어 발음을 고려하면 ‘마뜨료쉬까’가 더 정확하겠지만, 국어원의 외국어 표기법에 따른 글쓰기를 따르기로 한다. 마트료시카는 ‘엄마’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이름을 지닌 인형이다. 오늘날에는 러시아를 방문하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가장 널리 알려진 러시아 전통 기념품이기도 하다.
어원을 더듬어 보면, 마트료시카는 러시아어로 ‘기혼 여성’을 뜻하는 이름 마트료나(Матрёна)에 지소형 접미사 시카(-шка)가 붙은 형태다. ‘작은 마트료나’라는 뜻이다. 다산과 다복, 부유함과 행운을 상징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물건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기원과 확산은 러시아 내부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 등 구 소련권 국가들의 기념품 상점에서도 종종 마트료시카를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이 인형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기 때문이다.
다른 러시아 전통 인형들과 비교하면 마트료시카의 탄생은 18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겨우 한 세기 남짓한 역사다. 그 시작에는 뜻밖에도 일본이 있다. 1880년대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의 철도왕 사바 마몬토프가 일본의 칠복신(七福神, 시치후쿠진) 인형, 그중에서도 복록수(福禄寿, 후쿠로쿠주) 인형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인형을 사들여 귀국한 뒤, 자신이 조성한 예술가 마을 아브람체보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에게 이를 보여주며 유사한 형태의 인형 제작을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세르게이 말류틴이 디자인을 맡고, 바실리 지뵤즈도츠킨이 실제 조각을 담당하며 마트료시카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러시아의 전통 문화와 공예, 일본의 칠복신 인형, 그리고 상자 속에 상자가 들어 있는 중국의 상자 공예품이 절묘하게 결합된 마트료시카는 1900년, 사바 마몬토프의 아내 옐리자베타 마몬토바에 의해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되었다. 그곳에서 동메달을 수상하며 유럽의 주목을 받았다. 1904년에는 파리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왔고, 이후 여러 나라로 수출되며 명성을 넓혀갔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마트료시카의 제작은 멈추지 않았다. 전통 문화와 공예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지녔던 소련 수뇌부는 마트료시카의 생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제작량은 급증했고, 형태와 규모 역시 점점 확장되었다. 1970년, 연방 정부는 높이 1미터에 71개의 인형이 차례로 들어 있는 마트료시카를 제작해 오사카 엑스포에 전시하기도 했다. 이로써 마트료시카는 구소련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 인형을 바라보며, 거대한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체제 안에서 자신이 하나의 작은 부분임을 인식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 안에 또 다른 인형이 있고, 그 안에 다시 더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구조. 부분은 언제나 전체 안에 놓이고, 전체는 다시 부분들의 집합으로 존재한다. 마트료시카는 말없이 그 사실을 반복해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공예품을 넘어, 인간과 사회, 그리고 권력의 구조를 은근히 비추는 작은 은유였는지도 모른다.
4.
"이제 감히 말하거니와, 인간이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들은 자기들의 세계보다 높은 차원에 실재로 존재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의 무한한 복잡성을 감지하고 아찔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신이라는 개념은 바로 그런 현기증에 맞서 안도감을 얻기 위한 한낱 외관이 아닐까?”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은 읽는 즐거움이 분명한 책이다. 익숙한 개념과 낯선 개념을 그의 상상력으로 비틀고 확장하며, 사전이라는 형식을 문학에 가깝게 변주한다. 그중 <마트료시카> 항목에서 그는 전체와 부분을 둘러싼 인간의 착각, 그리고 그 착각에서 비롯된 오만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설령 전자가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한들, 자기가 원자라고 하는 훨씬 방대한 집합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사유는 출발한다. 이어서 원자는 자신이 분자의 일부라는 사실을, 분자는 치아라는 말초 기관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는다. 물론 이 모든 질문은 그들이 실제로 인지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치아는 자신이 입이라는 기관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까.
이렇게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하나의 다이아그램으로 묶어보면,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전자는 자신이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극히 작은 일부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의 끝에서, 베르베르는 신을 믿는다는 인간의 확언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드러낸다. 누군가 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한낱 원자가 분자와 기관, 신체와 인간의 존재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무신론자는, 전자가 자신의 경험 너머에 더 높은 층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사람에 가깝다. 분자도, 기관도, 신체도, 인간도 없다고 말하는 셈이다. 분명한 것은 이 양쪽의 단언 모두 진리와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베르베르는 이 불편한 진실을 마트료시카라는 사물에 빗대어 말한다. 인간의 인지와 상상력을 넘어서는 전체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경험 몇 조각으로 전체를 안다고 주장하는 일은 무모하고도 헛되다. 원자와 분자, 치아와 인간의 차원에서 시선을 아래로 두고 본다면, 인간과 지구, 태양계, 은하계와 우주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과연 가능할까. 더 나아가, 우주마저도 지금은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더 거대한 어떤 것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면, 그때 전자는, 그리고 인간은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큰 것 안에 작은 것이 들어 있고, 그 작은 것 안에 다시 더 작은 것이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베르베르는 우리가 우리를 초월하는 하나의 러시아 인형 세트 안에 들어 있다고 말한다. 전자에서 우주에 이르는 이 질서 속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의 진리가 손에 남는다. 그것은 사랑이다.
한때 시간이 넘쳐나 하루에 다섯 시간씩 책을 붙들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몰래 읽던 금서처럼, 머리를 번쩍 세우는 회초리를 날리던 문장들이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펼친 책의 한 귀퉁이에서, 우주와 세계에 대한 사유가 고스란히 쏟아져 나오곤 했다. “무엇을 그리 아등바등하는가, 먼지 같은 인간들아.”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기에도 벅찬 존재라는 사실만 알아도 늦지 않다고, 그러니 서로를 안아주고 조용히 속삭여주라고 말하듯. 그 문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5.
어제의 복음 말씀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 팔복’을 전하는 마태오 복음이었다. 오래전부터 귀에 익은 말씀이지만, 첫 구절부터 선뜻 이해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마태오 복음 5.3 ―
성경 원어인 헬라어에서 ‘가난’을 뜻하는 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의 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키는 ‘페네스(penēs)’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절대적 파산을 의미하는 ‘프토코스(ptōchos)’다. 마태오 복음 5장 3절에 사용된 단어는 분명 후자, ‘프토코스’다.
이 가난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자발적인 비움이며, 깊은 겸손에 가깝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재물의 많고 적음을 넘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빈곤을 인정하는 태도를 뜻한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하는 상태. 그것이 곧 ‘마음의 가난’이다. 이 정신은 구약의 ‘아나빔(Anawim)’, 곧 세상에 기댈 곳 없어 오직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었던 ‘주님의 가난한 이들’의 전통과도 이어진다.
교회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복되다고 말한다. 그들이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자아와 교만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하느님이 머무실 자리가 없지만, 스스로를 비운 마음은 은총을 담아낼 그릇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삶으로 건너와 곱씹다 보니, 나의 해석은 조금 달라졌다. 극도의 가난, 파산에 가까운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가난은 뜻밖의 선물 같은 기회를 내어준다. 바로 마음을 비울 기회다.
극심한 곤궁 속에서는 의외로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그중 하나는 누군가를 크게 미워하거나, 더 나아가 저주할 틈이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나는 누구를 미워할 여유조차 없었다. 예전에 품었던 미움의 판단들마저 내 몫으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삶 앞에서, 미워한다는 감정은 어쩌면 사치에 가깝다.
요 며칠은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항암 비용과 검사비, 약제비에 더해 작은 방세와 에너지 비용, 그리고 하루 한 끼를 겨우 챙기는 가난한 밥상까지. 벌이는 막막하고, 전화기를 붙들고 앵벌이 같은 하소연을 이어가야 했다. 받아야 할 당연한 몫을 호소로 바꿔야 하는 상황의 아이러니는 계속되었다.
사정을 설명한 뒤 돌아오는 거절의 답변이 그리 서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응조차 없는 무관심이 더 두려웠다. 그럼에도 그들을 미워할 마음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성을 내고 화를 터뜨리는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산상설교의 깊은 뜻을, 그제야 조금은 눈치챈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시간과 자리는 늘 무언의 뜻을 전해왔을 텐데, 힘들다는 푸념에 가려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의 분노할 일을 외면하는 태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각자의 몫일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분노가 치밀었던 순간은 응원하던 야구팀의 어이없는 역전패 정도였다. 가난하고 비루한 일상 위에 미움과 분노까지 얹어 놓았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더 나아진 내일이 오더라도,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았던 오늘의 가난을 잊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마음이 가난해졌던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가장 조용한 자리로 이끌어주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6.
몸과 마음은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삶을 함께 견디는 유기적인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군대에서 정훈 교육을 받던 시간에 들었던 한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psychosomatic. 정신을 뜻하는 psycho와 몸을 의미하는 soma가 결합된 말, 곧 ‘심신증’이다. 심리적 스트레스나 갈등이 신체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실제로 통증이나 이상은 분명한데, 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질환은 몸에 나타나지만, 그 기원은 마음에 있는 경우다.
정훈 장교는 이것이 반드시 병적인 상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일상의 경험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자주 마주한다고 했다. 술에 취해 넘어질 때를 예로 들었다. 멀쩡할 때보다 크게 다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낙상 순간 방어적 경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온몸이 굳지 않으니 충격이 분산된다는 말이다. 꽉 조여 맨 운동화를 술에 취한 채 끈도 풀지 않고 툭툭 벗어대는 모습에 비유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의식의 상태가 신체 반응을 지배한다는 하나의 증거로 제시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 반대도 성립하지 않을까. 몸의 상태 역시 마음의 결을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을 쓰다 보면, 이따금 몰아의 지경에 이른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태를 잠시 자각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그때만큼은 번민과 고통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마음 한가운데가 비워지는 듯한 감각.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가난에 가까운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붙들고 있던 생각과 계산, 두려움이 잠시 손을 놓는 시간이다.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의 가난은 글쓰기를 통해 가능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가난한 마음은 역설적으로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하고, 몰아의 엑스터시 같은 시간을 허락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고통을 잊기 위한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그 고통을 활자 위로 옮겨 놓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의례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취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술이나 약물에 취해 있어서도 안 되고, 욕심과 욕망에 잠겨 있어서도 곤란하다. 과분한 칭찬과 즉각적인 호응에 취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태에서는 고통을 똑바로 볼 수 없다.
직시되지 못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눈에 띄지 않는 마음의 구석으로 밀려날 뿐이다. 그곳에서 고통은 쌓이고 뒤엉켜 마음의 밀도를 높인다. 복작복작해진 마음에는 틈이 없다. 하느님도, 타인도, 스스로의 숨 쉴 자리도 들어설 수 없다. 그런 마음은 결코 가난해질 수 없다.
몸과 마음이 함께 떨고 함께 쉬는 존재라면, 글쓰기는 그 둘을 잠시 같은 속도로 호흡하게 만드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비우는 가난을 통해, 비로소 고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짧고 귀한 감각이 오늘도 나를 다시 펜 앞으로 불러온다.
7.
여러 날이 어수선했다. 아니, 한동안 내내 그랬던 것 같다. 방구석에 박힌 일상으로는 세상의 기류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묘한 불안이 감각처럼 스며들었다. 가난은 곧 이력이 되고, 그 발버둥은 소문이 되기 마련이라 인사를 먼저 건네는 이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도와달라는 말이 버거웠고, 응원을 청하는 인사조차 지겨웠을지도 모르겠다.
삶에서는 좋은 일과 아쉬운 일이 늘 교대로 찾아온다. 신약의 효능 덕에 수혈과 촉진제를 건너뛰고 지내고 있지만, 아내의 깊은 감기 앞에서는 가슴 사진 하나 찍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조금 더 살피지 못한 탓에 불편을 준 것 같아, 내리는 습설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해결과 지급의 약속은 다시 미뤄졌고, 매일은 조마조마와 두근거림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또 이겨내야 한다. 아직 궁리할 시간과 버틸 체력이 남아 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언젠가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읽고 쓰는 날을 기다려 본다. 댓평 남짓한 방의 창문은 드센 겨울 웃풍에 여름 옷 같은 블라인드를 내리고, 박스로 바람 드는 구석을 막아두었다. 한 뼘 남짓 보이던 하늘은 이제 상상 속에서만 그려진다.
새벽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뜻밖에 소풍 같다. 간만에 외출복을 입고, 하늘이 넓은 새벽 길을 달려가는 시간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채혈을 마치고 병원 성당에서 길지 않은 성체조배를 한다. 그리고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병원 카페 안젤로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켜 아내와 마주 앉는다. 그 시간이 생각보다 큰 행복을 건넨다. 책을 읽고, SNS를 훑고, 시간이 남으면 삼색 볼펜으로 낙서를 한다. 봄이면 꽃을 그리고, 가을이면 낙엽을 담아본다. 겨울에는 성당이 떠올라 쌍탑 교회당을 그려본다.
그러다 문득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 마르코복음 5. 41 ―
나보다 더 힘겨운 이들의 소식을 접하며 기도하고, 조심스레 위로를 건넨다. 믿음이 있는 이들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야 하고, 희망과 기쁨을 비추는 작은 촛불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복음이며, 이천 년 전 예수가 죽음으로 증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고난의 길 끝에서 ‘영원한 친구’가 무엇인지 조금 더 또렷이 알게 된다. 친구로 남아 주는 고마운 응원들, 먼 곳에서 매일같이 기도와 마음을 보내주는 누이 같은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언젠가는 나보다 조금 더 힘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를 계획하며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