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의 그림자 아래, 침묵하는 판단의 자리

영화 <행복의 나라>

by 박 스테파노

고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라는 이유로 마주한 <행복의 나라> (2024. 추창민)는, 끝내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채 신파의 익숙한 궤도를 따라간다. 이 작품은 ‘10·26’이라는 역사적 균열을 배경으로, 그날의 실행자였던 중앙정보부 비서관 박흥주 대령을 전면에 세운다. 그러나 영화는 끝내 하나의 문장—명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복종해야 한다는 운명—으로 모든 질문을 봉쇄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사유는 멈추고 영화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군인과 변호사의 대립, 군사정권과 인권의 충돌이라는 구도는 이미 수없이 반복된 익숙한 설계다. 문제는 그 낡음 자체보다, 그 위에 덧칠된 감정의 방향에 있다. 역사의 폭력과 균열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보다, 그것을 낭만적 서사로 희석하는 태도. 이는 단순한 진부함을 넘어, 기억을 왜곡하는 방식에 가깝다.


흥주라는 인물은 권력의 주변에서 명령을 수행하던 존재였다. 그의 선택을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순간, 판단의 중단은 미덕으로 둔갑한다. 그러나 사고를 멈춘 복종은 결코 무해하지 않다. 그것은 언제든 다른 시대, 다른 이름으로 반복될 수 있는 위험한 신호로 남는다.


독재자의 가슴을 겨눈 총성이 과연 내란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석이 갈린다. 그러나 스스로를 ‘어리석은 원칙주의자’로 명명하며, 명령 수행을 윤리적 고결함으로 치환하는 태도는 쉽게 용인되기 어렵다. 원칙과 근본, 그리고 극단이 뒤섞인 채 유통되는 오늘의 언어 환경 속에서, 이러한 서사는 더욱 위태롭게 작동한다.


결국 이 영화가 남기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질문의 부재다. 그리고 그 공백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복종은 언제 미덕이 되고, 언제 비극이 되는가.


영화 <행복의 나라> 중 한 장면.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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