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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Jan 11. 2022

재벌 3세의 RU21

안드로메다에서 온 숙취해소제

멸공의 RU21


직업이 '재벌 3세'인 정모 씨의 "멸공" 선언이 연일 뜨겁습니다. 자신의 주식이 담보된 이마트 계열은 땅 짚고 헤엄치는 비즈니스이고, 스타벅스 같이 프랜차이즈 솔리드 대리점을 자신의 '브랜드'라 우기는 엉성한 경영 능력은 이미 검증이 되었지요. 문제는 자신이 아닌 모친과 여자 형제들의 사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주주들의 이익에 큰 침해를 입혔다는 것인데, 그에 대한 "책임론"은 그룹 안팎으로 드세질 모양입니다. 사회적 구순기를 막 벗어난 철부지 금수저의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고 싶지 않지만, 그의 포스팅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RU21"이라는 숙취해소제의 사진입니다.

콩사탕도 싫다고 한다


사실 이 포스팅에는 '멸공'과 상호 텍스트 하는 함의가 있습니다. RU21이라는 숙취해소제의 "정체" 때문이랍니다. 이 약은 2004년 국내에 출시된 '건강보조제'로서 구 소련의 첩보기관 KGB의 스파이 활동을 위해 발명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극강의 각성 작용을 통해 술에 취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1999년 비밀이 해제되면서 서방국가로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냉전 시대에도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비밀 아닌 비밀로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런저런 제약ㆍ식품회사에서 2000년대 초반에 본격 출시를 하며, 컨디션ㆍ여명 808과 음주 전 숙취 '방지제'로 애주가들에게 애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뭐가 문제인지 보이시나요? '멸공' 구호에 '구 소련 KGB'라는 냉전시대의 산물을 끌어냅니다. 아직 곳곳에 공산당, 빨갱이 천지이기에 늘 경계하는 '초전박살'의 정신이 깃든 포스팅은 그의 비루한 정신세계는 '맘대로'라고 쳐도, 논리 상충에 궤변 비약이기 때문이지요. 존재가 사라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의 첩보기관을 '멸공'의 단서로 듭니다. 그것도 자신이 손수 복용하면서 말이죠. 멸사봉공의 투지라고 해야 되나요.


(2004년 동아일보 기사)


구 소련의 만병통치약 - 전자 알약(AES)


정치적 이야기를 진하게 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구 소련의 산물 숙취 해소제 보고 있자니, 1990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의 효시가 되는 "개방ㆍ개혁-뻬레스뜨로이까, 글라디노스트"로 문호가 개방된 시기가 떠 올랐습니다. 여행과 유학이 허가되면서, 러시아는 '미지의 영역'으로 핫한 해외 여행지로 떠올랐습니다. 그 여행길 끝에 돌아오는 가방에는 필수적인 러시아 고유의 상품들을 챙기기 마련이었습니다. 보드카, 마뜨로슈까(까도 까도 나오는 인형), 호박 보석, 그리고 이 것. 바로 소위 "총알"로 통했던 "전자 알약"이었습니다.

러시아 여행 필수 기념품


소위  "총알"이라고 하는 것은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러시아의 「자율적 전기자극장치」 (Autonomous Electronic Stimulator, 이하 AES) 속칭입니다. 흔히 러시아 전자 알약으로 통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한국 식당가에서는 AES가 한때 '효자'였다면서 회상하기도 합니다. 하기야 '건강'이라는 관광 아이템은 여전히 유효한 상술이니까요.


'전자 알약'은 '만병통치약'으로 치부되었습니다. 환자의 인슐린 의존도를 낮추고 혈액 내 콜레스테롤을 줄여주며, 만성 변비 특효약일 뿐만 아니라 성기능 장애까지 치료한다고 선전하는 것에 혹 할만해 보입니다. 더욱이 크렘린 고위 간부들이 민간인들 모르게 복용했던 약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더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AES를 생산 업체는 콤퍼넨트사와 톰스크사의 한국시장 과열경쟁으로 유해ㆍ가짜 논란도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전자 알약은 현재에도 진행형


사실 AES의 원조인 톰스크사의 개발 목적은 매우 순수했습니다. 70년대 아가포니코프, 코보제프 박사 등을 중심으로 한 톰스크 의료팀은 전기 충격으로 인체 생리작용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이론에 근거, 의료기구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냉전 시대에 '과학 기술 우위'에 주목하던 크렘린궁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결과 양산에 성공한 84년에 소련 고위 간부 건강 문제를 담당하는 소련 보건부 제4총국(일명 크렘린 병원)에 독점 공급되었다고 합니다. 대략 1백20만 개가 제조되어 소련 공산당 고위 간부와 일부 특권층이 복용해 왔다고 전해 집니다.


그 후 1991년에 민수용을 허가, 본격 생산을 하게 됐으며, 1992년 국제 의료 심포지엄에서 특별상을 받음으로써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제의 개발은 본디 '우주 비행사'들을 위한 비상약으로 개발되었다는 버전도 있습니다. 당시 우주 비행체 발사와 달착륙 같은 가상의 '우주 전쟁'이 냉전의 상징처럼 여기어지기도 하니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Made from Space


냉전의 산물이었던 '우주 비행'은 아직도 우리의 일상과 요원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선 후보의 '달 탐사 공약'도 생뚱맞아 보입니다. 우리의 일상과 상관없는 과학자들과 엔지니어, 그리고 덕후들의 어젠다로 보이기만 합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깜짝 놀랄 수가 있습니다. 이미 이 '우주인'과 '우주선'을 위한 기술은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되어 있습니다. 제법 오랜 기간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말이죠.


이런 질문에 우리는 자동차나 항공 기술만 떠 올리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품목들은 어떤가요? 메모리폼 침구, 정수기, 공기 청정기, 진공청소기, 안마의자, LED 마사지기, 이 모두 효율적인 우주 비행을 위한 연구가 상용화된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샴푸, 안티에이징 화장품, 선블록, 선바이저, 고성능 선글라스 같은 일상 잡화는 물론, 바람막이 점퍼, 초경량 러닝화, 나이키 에어, 깔창, 형상기억 합금 타이어, 스포츠 배낭, 그리고 동결 건조식품과 비타민까지 모두 '우주여행'을 하는 '우주인'을 위한 개발 제품입니다.

안녕, 많이 놀랐지?


노트북, 저장장치, 스마트폰, GPS, 구글어스 같은 직관적인 기술도 있지만, 안과 시술의 첨단인 라식ㆍ라섹의 시술도 애초에 우주 광학을 연구하다가 파생된 기술 '엑시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경향인 레이더 추적에 의한 자동 라식ㆍ라섹 시술의 근원은 우주선이 우주 정거장에 도킹하기 위한 표적 추적 기술에서 온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우주 기술'입니다.


냉전의 기술 경쟁은 "군비의 확대'와 '대량 살상 무기 개발'같이 인류 존재를 위협하는 저승사자이기도 하지만, 앞에 열거한 고도의 과학 기술을 일상의 편리함으로 가져다준 산타 클로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 우주 산업 개발은 재벌들의 놀이처럼 비추어져서, 그 본연의 가치가 퇴색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그리고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등 "돈 자랑"처럼 보이는 그들의 '우주 놀이'는 또 다른 산업의 경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재벌의 버킷 리스트가 세상의 이로움으로 다가오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업가 정신'이 작용하는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결과를 만드는 '꿈의 실현'


우물 안 개구리들의 안드로메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물 안 개구리들은 저마다의 '무지개'연못에서 개굴개굴 댈 뿐입니다. 원천 기술 없는 전자 제조업을 첨단 기술이라 말하는 시가 총액 1위의 마마보이, 마약 중독자 게임 보이, 그리고 콩사탕을 싫어하는 자이언트 베이비 까지. 그들의 왜곡된 세계관은 소위 '유니콘'들에게 전수되어 배임과 자기 이익 실현의 경계에서 자기 실속만 중요한 거지 같은 기업가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절망스러운 부분은 여기에 있는데, 52시간 타령이라니요.


철없는 직업이 '재벌 3세'인 관종은 주목을 끌고 싶은 자기 욕망 추구에는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뒷수습은 지분 하나 안 섞인 엄한 계열사 주주들과 자존감 땅에 친 임직원들의 몫이고, 엄한 국민들과 대중은 안 본 눈 사기에 바쁩니다. 숙취해소제 포스팅 하나가 세상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것이지요. 요란하게. 빈수레처럼.

개구리 연못엔 투투가 산다


사족)

예전 '폭행죄'로 구치소를 다녀온 모 재벌 2세는 출소 후 직원들에게 사과와 함께 보너스 500만 원 씩을 그룹사 전원에게 지급했다지요. 일명 '쪽 팔림 보너스', '가오 보너스'로 불렸지요. 적어도 쪽 팔린 것은 아는 세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직원 뿐 아니라 야구 팬에게도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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