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에 정말 "심쿵"할까? 그럴수도 걱정되니까

최악의 비호감 선거가 아닌 중대 선거

by 박 스테파노

"중대 선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이 정치세계에 관심을 두기 전에 어디선가 들었는가 가늠이 어려운 단어입니다.

'중대 선거’ (critical-election)란?

중대 선거(重大選擧 critical election)란 말은 선거 공화국이라는 미국에서 발생한 단어입니다. 미국의 V.O. Key교수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로써, "전기적 선거"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키이 교수에 의하면 미국의 선거과정이라는 것은 30년을 주기로 안정적 국면에서의 선거연합(alignment)이 갑자기, 혹은 서서히 재편된다는 realignment이론에서 나온 말입니다.

역사 속의 중대선거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 지난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정치학자들은 이렇게 규정합니다. 오랫동안 반복된 전형적인 정치 패턴이 유지되는 ‘정상 선거’(normal-election)와 달리, 기존 정치 패턴을 깨뜨린 계기가 됐다는 뜻에서 그러합니다. 루스벨트가 집권한 13년 세월은 공화당이 주도했던 기존 정치구도를 뿌리째 뒤흔들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냈습니다. 공화당의 모토였던 ‘작은 정부’가 ‘큰 정부’로 바뀌면서 공공사업의 확대와 적극적인 시장개입이 이뤄졌습니다. 유권자 구도도 흑인과 여성, 남부지역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백인과 대기업, 북부지역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큰 틀이 짜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거로 선출된 권력과 정권에 따라 국가와 시대의 흐름이 바뀌는 터닝포인트를 부여하는 선거가 '중대 선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틀에서 한국의 정치사에서 '중대 선거'로 불려질 수 있는 국면은 두 번 정도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소위 '87년 체제'를 시작하게 만든 87년 대선 직선제와 '2002년 대선-2004년 17대 총선'을 들 수 있습니다. 87년 체제와 민주화 시대를 시작한 '87년 대선'은 분명한 '중대 선거'로 기억되고 있지만, '2002년 대선 - 2004년 총선'의 경우는 시각에 따라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이 갈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의 판을 짠 것은 분명하지만, 결론적으로 다음 정권유지에 실패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시대정신을 산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중대 선거의 기미를 보인 순간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시도로만 그치는 경우에는 의미가 퇴색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을 '중대 선거'의 해로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또한 이 중대 선거를 통한 새로운 '정치체제'의 출현을 점치는 전문가들도 거의 없습니다. 그 해석에 있어서는 선뜻 반대의견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총선과 대선이 함께 이루어지는 해도 아니고, 거기에 더하여 새로운 형태의 정치참여와 새로운 세대로의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그 의미를 뒷받침해 주고 있지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연속된 좌파 정권의 집권이냐, 보수로의 복고 회귀인가하는 정치 지형의 중대 기로에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진영을 "악의 축"으로만 규명해 대척함으로써 얻는 정치적 지지가 퇴석되고, "나한테 이득이 되는" 정치 세력이 누구인가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양대 후보들의 입에서는 '철학'과 '신념'같은 거대담론보다는, 자잘하고 세분화된 각론들의 줄 세우기가 한창입니다. "소확행"이니, "심쿵"이니 하며 말이지요. 실용적이고 일상적이라는 호평도 있으나, "중대 선거"를 바라는 입장에서 걱정이 가득 찹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935115


정치와 담을 쌓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 조차, 이번 대선에 대하여서는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허상이 벗기어지면서,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도를 높이게 되었고 더불어 기존의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치집단에 대한 전면 교체에 대한 바람이 자연 발생되었기 때문이지요. 촛불의 함성이 있었고 기득권이 시민을 겁내 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난 탄핵 정국에서 보았고, 또 이번 민주통합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65만 이상의 총선의 여당 몰표로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관심이 몰리고 열의에 가득한 참여의 의지는 분명 정치구조 개혁과 사회혁신에 큰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열기 속에 혹 '헛다리 집기'식의 허상이 없는지, 목적과 문제의식을 제대로 하고 정확한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까운 현상으로, 대선에 뛰어든 주자들의 정치적 철학과 향후 비전을 포함한 총론적인 정책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은 두 가지 사항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권 비판", 그리고 "비판만 가득한 청년과 부자 열망이라는 새로운 계급"에 대한 각자의 눈물겨운 구애. 청년, 부동산 말고 복지ㆍ평화ㆍ불평등 해소는 어디 갔을까요?

두 사안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실효성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라. 무언가 찜찜하지 않는가요? 계급이 된 한 그룹은 이런저런 "숙제"들을 후보들에게 내어 관련하여 답변을 요구하여 지지 표명을 하겠다고 하고, 한 그룹은 당장 어떻게 돈을 벌게 해 줄 것인지 공개 답변하라고 요구합니다. 물론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안에서 통과가 되면, 이들이 정말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대표할 사람으로 증명되는 것인가요?

과대평가로 드러난 "마이크로타겟팅", 10년 된 전략


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어찌 숲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모르겠는가요?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조금 달라집니다. 나무 하나하나에 과중한 의미를 두어 보는 사람은 정작 숲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라는 이웃이라는 그리고 원칙과 상식이라는 지켜야 할 커다란 숲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안에 청년 세대를 귀히 여기어야 하는 이유도, 모두가 부유하고 윤택한 삶을 누려야 하는 이유도 다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가, 어떤 세력이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 제안을 내세우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2021년의 한 해가 진정한 '중대 선거의 해'로 역사 속에 남겨질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고민 없이 휩쓸리거나, 혹은 사리사욕 가득한 계산질을 하거나, 남들보다 튀어 보이고 싶어서 색다르게 행동하거나... 이런 목적으로 목소리 높이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를 "이벤트"로 여기는 '정치 셀럽'들 말입니다.


그래서 "소확행"이니, "심쿵"이니 하는 지방선거에서나 나올 법한 카피들이 참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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