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의 처벌 관련
혹시 '관인'과 '관허'라고 아시나요?
법률용어는 늘 '그지 같지요'. 어려운 한자 단어에 의미도 일반적인 단어 의미보다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입니다. 법제의 생성과 보안, 폐지라는 일종의 라이프 사이클을 보더라도 참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어려운 이야기 최대한 풀어 볼까 합니다.
법은 행위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규명하지 않습니다. 현재하고 발생한 것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가장 딱딱하고 무거운 영역입니다. 법은 사회적 행위를 처음부터 규제하거나 단속하지는 않습니다. 갈등이 유발되거나, 헌법이 정한 대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거나,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할 뿐입니다. 이론적으로 철학적으로 말이죠.
예전에 '관인 주산학원', '관허 주산학원'이 존재했습니다.(연식이 나오지요?) 관(官)이 '인가'한 것인가, '허가'한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흔히 일상에서는 인가, 허가, 승인 등을 혼용하고, 특별한 구분 없이 통용되기에 더 헷갈리기 말련입니다. 그러나, 법체계를 이해하려면, 이 허가와 인가의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허가(許可)는 법령에 의하여 금지된 행위를 일정한 경우에 해제하여 적법하게 행할 수 있도록 한 행정처분을 말합니다. 허가는 법적으로 하명 행위로 강학적ㆍ명령적 성격이 있습니다. 허가를 어기면 '시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행위 자체가 무효가 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점의 경우 영업의 종류에 따라서 허가와 신고를 하여야 하는 경우가 나뉩니다. 음식과 주류를 제공이라는 기본적 영업행위를 위해, 일반음식점의 경우는 영업 '신고'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주로 주류를 위주로 제공하는 단란주점, 유흥주점의 경우에는 더 강화된 요건을 갖추어 (상업지역 여부, 건물의 용도, 주거지와의 거리, 시설기준 등 )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개인은 음식과 주류를 판매할 경제 활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제한 없이 허용하면 국가·사회적인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기는 업태와 행위가 발생합니다. 이에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여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에게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 것을 허가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주류의 판매와 금주령, 그리고 한국의 주세법 등을 떠 올리면 됩니다.
반면, 인가(認可)란 제 3자 사이의 법률행위에 대하여 행정청이 보충적으로 동의해줌으로써 효력을 완성시켜주는 행정행위를 말합니다. 인가는 법제 상 형성 행위로, 법률행위의 효력 발생 요건으로서 인가가 나지 않은 행위는 원칙적으로 무효이나 허가처럼 행정상 강제집행이나 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 것이 통례가 됩니다. 역시 어렵지요.
토지거래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토지거래인ㆍ허가는 개인 간의 토지거래라는 사적인 계약에 국가 관여하는 행정작용입니다. 투기적인 거래가 성행하거나 지가가 급격이 상승하는 지역, 또는 그러한 우려가 있는 지역에 대해 5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허가구역으로 지정하여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으로 토지거래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 계약은 무효가 됩니다. 다시 말해 타인의 법률행위에 행정청이 공익적 ·감독적 입장에서 관여하는 보충 행위를 인가라고 합니다.
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법제를 기안하면서, 처음은 인ㆍ허가의 규제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기준을 마련합니다. 구성원 모두가 잘 준수한다면 더 이상의 보충재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살이에 욕심과 일탈, 실수와 착오는 늘 발생합니다. 그런 것들에 강제적인 사후 조치가 없다면 반복되기 십상이 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법이 '형법'입니다.
형법(刑法)은 범죄와 형벌을 규정한 법입니다. 형법은 범죄와 형벌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 이에 대한 법적 효과로서 어떤 형벌이 부과되는가를 규정하는 것이지요. 오늘날에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형법은 범죄와 형벌 및 보안처분에 관한 법령의 전부를 지칭하는 것이 됩니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의 법을 독일에서는 대한민국과 같이 ‘형법’(Strafrecht)이라 하고 있으나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주로 ‘범죄법’(Criminal law)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형벌을 과할 수 있는 주체는 국가뿐이며 형벌을 받는 주체는 죄를 범한 자뿐입니다.
형법에는 그 보는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형벌에 의하여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보호하는 '사회 방위 기능'이 있고, 형벌에 의하여 죄를 범하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예방적 기능'이 있습니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국민 개개인에 대한 면을 볼 때 형법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가진다고 합니다.
첫째로 형법은 국민 각자에 대하여 일정한 행위가 범죄로서 무가치한 것이라는 것을 인지 이해하는 ‘규범적 기능'이 있습니다. 둘째로 국가는 형법을 제정하여 국민의 법익(法益)을 보호하고 만약 그에 대한 침해가 있을 때에는 형벌이라는 유력한 보호수단을 발동하는 ‘보호적 기능'이
있습니다. 셋째로 형법은 범죄의 범위와 개개의 범죄에 대한 형벌의 내용을 정의합니다. 이로써 국가의 형벌권을 제한하여 부당한 처벌로부터 국민을 수호하는 기능도 갖습니다. 이것을 보장적 기능 또는 마그나카르타적 기능이라고 하며 '죄형법정주의'는 바로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형법 규정, 즉 처벌 명문화와 강화의 효과
일례로 '개인정보보호법'도 유출 피해 사고의 발생 시, 유줄 기관ㆍ사업 책임자(대표이사)를 형사 처벌하는 법제로 강화되자, 개인정보의 요체인 고유식별자의 유출이 실제로 급감함.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의 서설이 길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이미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법제가 되어 있습니다. 이 법을 떠올릴 때 일반인들은 '유출, 해킹, 도용, 매수'라는 사건ㆍ사고의 개념을 떠 올립니다. 바로 '범죄'에 대한 유추적 사고를 하기 마련입니다. 왜 그럴까요? 법규의 위반 사례가 끊임없고 국민 다수의 법익을 침해하는 일이 거듭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개정되고, 유관 입법이 뒤따르면서 방대한 법령이 되었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그를 이용한 산업의 고도화로 인한 현대적 법령이기도 합니다. 통상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에 관한 기본법으로서 2011년 3월 29일 공포되어 같은 날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구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의 후신)
당초 직관적이고 알기 쉬운 내용이었습니다. 여러 외변적인 이유로 용어와 체계가 다 복잡한 법률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법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설상가상으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특칙이 있는 등 규율이 다원화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더욱 난해합니다.
이 중에서 우리 생활과 직관적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2010년 대한민국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은 대한민국의 주요 사이트가 해킹을 당해 2,000만 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 사건은 수년 전부터 계속 진행되었던 범죄이나, 2010년 3월에 일당이 검거됨으로 인해 큰 이슈로 번졌고 이후 형사 처벌의 규정이 강화되었습니다. 그 법령의 실제 시행되는 2014년부터 유출 사고ㆍ사건이 급감하는 효과를 나타내었습니다.
특히 71조와 72조의 '벌칙'조항에 의하면, 불법으로 타인의 정보를 '수집'하면 3천만 원 이하 벌금, 3년 이하 징역, 그리고, 그 정보를 유출하면 5천만 원ㆍ5년 이하의 처벌이 부과됩니다. 기업의 경우, 보안담당ㆍ개인정보 담당 실무자뿐 아니라 대표이사까지 처벌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업에게는 최대 1억 원 매출의 3%까지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처벌'을 명정 하고 강화하자 관련 범죄의 발생이 줄어듭니다. 매가 약이 된 결과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편식 중인 법감정; 국민정서법
"국민정서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법감정"이라고도 바꾸어 표현하는, "국민정서(國民情緖)"법이란 한 나라의 국민이 특정 사건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감정이나 정서를 뜻한다고 합니다. 흔히 표현하면 여론이라고 읽히기도 하는데, 소위 '국민정서'가 헌법이나 실정법보다 중히 여겨지는 상황을 비꼬는 말으로 보통 "떼법"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최근 음주운전 가중처벌과 양형 강화를 삼아 입법 발의되었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난 "도로교통법 개정안(일명 윤창호 법)"을 대표적인 사례로 삼기도 합니다.
찬반이 팽팽한 것처럼 보입니다(여론조사는 믿을게 못되어서, 논란이 되는 것만으로). 윤창호 법 같이 언론의 스포트 라인을 받는 사안뿐 아니라, 여성ㆍ아동 관련 성법죄나 스토킹ㆍ묻지 마 살인 등, 인간성을 논할 수 있는 여러 사안들에 "처분이 가볍다.", "범죄자에게 인권이 마뜩한 일이냐."등의 불만 가득한 여론들은 늘 옳기만 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여론에 동조하지 않으면, 손가락질도 받고 "동종"으로 여기어지기도 합니다. 다수의 판단과 그 분노는 항상 마땅하고 당연한 것일까요? 그럼 수사와 재판은 왜 필요할까요? 이런 비판만으로 동종 전과자나 그 가족, 그리고 잠재적 범죄자와 공범자로 손가락질받는 것은 "사회적 정의"라고 여기어집니다.
그런데, 중대적 사회재해의 피해자의 구제와 책임자의 엄벌애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아니 관심 없어 보입니다. 확률적으로 기업의 실수와 안일한 위법으로 피해를 입을 확률이 자극적인 형사사건의 희생이 되는 것보다 훨씬 높은데 말이죠. 이곳 얼룩소에서도 매 한 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대선 주자 배우자의 허튼짓에는 관심 가득해도 아직 콘크리트 더미에 갇힌 노동자들의 생사 여부는 스스로 단신 처리합니다. 저 자신부터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