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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Mar 07. 2022

서촌과 싸전, 그리고 가난과 투표

가난으로 또 계급만 나누는 선거

서촌에는 싸전이 있었다


서울 서촌을 걸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올라 선 서촌의 하늘은 유독 넓어 보입니다. 근처 청와대가 있고, 경복궁과 사직이 있는 문화재 인접 지역이라, 서촌은 건물의 고도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광화문 일대의 세종로 높은 마천루가 갑자기 꺼져 내려 사라지는 스카이 라인이 넓고 낮게 펼쳐져 있습니다. 서촌의 매력이 시작되는 순간이지요.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 지역을 일컫는 지명에서 유래합니다. 성곽으로 에워싸인 조선시대 한양의 서북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우대(웃대, 上村), 장동(壯洞), 북리(北里)라고도 불렸습니다. 한성부의 행정구역인 방 구분에서 북부로 불릭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행정동은 매우 잘게 나누어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적 의미가 있는 사직동, 체부동, 통의동, 수많은 예술가들을 품은 누하동, 통인동,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옥인동 일대, 그리고 현대사의 서늘함과 함께 기억되는 효자동, 궁정동, 신교동, 청운동 등 말입니다.

서촌


사극을 보거나 역사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종묘사직'을 접하게 됩니다.  바로 그 종묘사직의 사직단이 교회 네거리의 서쪽 길 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종묘'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곳으로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합니다. 다른 한 편의 '사직단'은 국가에서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결국 종묘와 사직은 나라와 왕실의 상징인 셈인 것이지요.


조금 더 깊게 들여 다 보면, 옥인동 일대에는 서촌의 문인 이상을 비롯해 천경자, 노천명, 이상범과 같은 예술ㆍ문인의 동네이지만, 난개발이라는 흑역사도 있는 곳입니다. 더욱 뼈아픈 역사도 숨어 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들이 나라 팔아 받은 거금으로 엄청난 대지를 사고, 집을 지었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자수궁터 양쪽으로는 매국노 중 투톱인 이완용과 윤덕영의 집터가 매우 널찍하게 자리 잡혀 있습니다. 현재 자수궁터는 군인 아파트 자리가 되었고, 앞길은 겸재 정선이 놀던 곳이라 겸재길이라고 명명되어 있어 그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청계천, 광화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등을 돌아 금천교, 보안여관, 김가진 가문, 이상과 구본웅의 이야기가 서촌에 있습니다.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지역과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들은 일제 침략과 전쟁, 그리고 아픈 현대사(4.19와 10.26,, 12.12등)를 관통합니다. 역설적으로 여러 제약 조건 때문에 개발될 곳이 없어 부상하고 있는 지역이 된 서촌. 역사적으로도 현재 하는 지금도 서촌은 수많은 깊은 이야기가 숨 쉬고 있고, 거쳐 간 사람들의 삶이 녹아나는 곳입니다.

서촌은 참 신묘하다

서촌은 서쪽의 인왕산과 북쪽의 계곡들로 이어진 지형이라, 서북쪽 높은 지대에서 경복궁 영춘문 앞 평지로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서북 쪽 높은 지대에는 고관대작들의 기거처가 자리 잡았고, 평지로 내려오는 골목골목엔 그 댁들의 녹을 먹는 각종 출신 성분의 중인, 서민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북촌은 실세가 살았고, 서촌은 은퇴자나 권력에서 먼 중등 관리의 집들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도 있으나, 조선 초기 한양 천도 후 고관대작들이 자리 잡은 곳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동네의 구성이 살짝 살아 있기도 합니다. 인왕산 자락에 현대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본가가 있고, 아직도 정 회장 기일이면 현대가들이 총집합하곤 합니다. GS그룹 창업자 구 씨 가문의 본산인 효자동 언덕길엔 연수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도로변까지 내려오면 있는 "시장"입니다. 기름 떡볶이와 엽전 도시락으로 유명한 '통인시장'도 있지만, 경복궁역 1,2번 출구 앞 골목 속의 '영천시장'(체부동 먹자골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썰과 유래가 있지만, 영천시장은 '상미전'이라고 하는 '싸전'이라는 유래가 유력합니다. 상미전(上米廛)은 조선 시대 종로 서쪽에 있던 싸전으로, 종로 동쪽에 있던 싸전인 하미전(下米廛)에 상대된 명칭입니다. 특히 품질이 좋은 쌀을 파는 점방으로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고관대작의 녹봉을 "쌀"로 받는 서촌의 서민, 노비들이 쌀과 다른 물품ㆍ화폐로 교환하기 위한 쌀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녹봉의 '정부미'는 양질의 품목이 되어 제법 값을 쳐서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우러짐, 싸전의 흔적


정치의 갈라치기에 길들여진 


사실 저는 정치 글쓰기를 당분간 지양하려 했습니다. 지향이, 신념이, 경험이, 처지가 자칫 '일방의 선전 포고'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적ㆍ외적 보상의 욕심으로 그 결심을 넘어 서 버렸습니다. 이런저런 시점을 지내고 보니 부끄러웠습니다. 이런저런 의견과 분석들이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날도 세우고 나름 점수도 주면서 '지식인' 놀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2주 전 댓글에 달린 에디터 님의 의견에 갸우뚱도 하고 근거 없는 '통설'이라는 말애 사실 조금 많이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막 반론을 준비했지요. 제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답도 아니었습니다. 참고적으로 이런 문제 제기 반론이었습니다.


통상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개인들은 진보좌파 정당 지지로 기운다는 게 통설인 듯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보수 정당 지지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은 나와있지만 정설이라고 할만한 게 있을진 잘 모르겠습니다. -에디터의 댓글-


사실 저는 반대 개념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으니 '무슨 근거로 이렇게 이야기 하나'라는 반감 깊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서 자료 수집에 불을 켜고 있는 모습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서로의 생각의 지점과 판단의 기반이 다름을 인정하고 살피기보다는, 세상의 갈라치기에 길들여진 생각 머리를 부끄러움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에디터님의 질문 제기에는 얼룩소 에디터들에게 익숙한 이름 '천관율 기자'의 기사 공유로 대신합니다.

http://naver.me/GgeMKabG

“가난한 사람이 보수당을 찍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들 흔히 말하는데, 경제 정책만 보면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보수당은 사회집단 간 차별을 유지해주기 때문에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이익을 제공합니다. 더욱이 성적 엄숙 주의도 가난한 사람에겐 상대적으로 도움이 되지요. 세 가지 쟁점 영역 중 둘에서 보수당 노선과 일치한다면, 그 사람이 보수당 지지자가 될 확률은 낮지 않죠. 신기하거나 비합리적인 일이 아닙니다. 정치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진화적으로 중요했던 영역이 적어도 셋이 있다는 접근법을 택할 때,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던 현상이 꽤 명쾌하게 설명됩니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쇠락한 백인 노동계층을 이 관점으로 다시 보면 어떨까요.” - 기사 중,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또 이짓거리

가난으로  나누고 갈라 치기만 하는 선거


이미 정치 구도가 자리 잡힌 정치 선진국의 빈곤층은 사회경제적으로도 보수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재분배와 개입주의적 정책, 그리고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는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벨기에의 정치학자 안톤 더크스(Anton Derks)는 그 원인을 빈곤층이 가지고 있는 엘리트와 기성 정치질서 전반에 대한 불신에서 찾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하층의 박탈감은 엘리트들에 대한 불신을 낳고 이 불신은 정치체계에도 투사되는 것이지요.


기성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 정부와 정치인들의 능력과 진심에 대한 의구심, 속도가 붙지 않는 재분배와 복지에 대한 냉소, 실제 부담보다 강한 세금에 대한 의심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불신과 냉소는 사회적 연대라는 담론을 막아 서고, 사회적 불만과 문제 제기가 진보 정치 어젠다로 변환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설명입니다. 믿을 곳은 아무 데도 없으며 각자는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는 각자도생 의식이 유포되는 것이지요. 즉 '사회적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득'이 더 중요시됩니다. 바로 "보수적 사고"가 자리 잡습니다.

토마스 프랭크의 책

이런 설명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국가의 권력과 되돌아오지 않는 징세에 대한 피해의식, 진보든 보수든 지배 엘리트들에 대한 반감, 집단주의적 '사회적' 프로젝트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 그리고 보편 인식된 공리주의적 개인주의 등이 한국의 경제적 하층에게서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투표해서 뭐해?",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다 그놈이 그 놈이지", "뽑아주면 뭐해? 도움이 안 되는데".


경제 빈곤층에서도 흔히 나오는 말입니다. 오랜 식민통치와 권위주의 정부 시기 동안 경험한 착취, 억압, 시민권의 부정이 이런 태도를 배양한 역사적 배경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남북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가 지배하는 정치구도 속에서 기성 엘리트 및 정치인들의 부패와 무책임성은 이런 불신과 반감을 더욱 확대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기득권은 그런 인식을 교정하거나, 현실을 타파하거나, 문제를 수정할 생각 없이 날 선 '가난의 고단함'을 자기편에 유리하게 갈라 세울 뿐입니다.


가난은 그냥 곤란한 처지이지. 이념이 아닙니다. 가난해서 정치적 진영을 보수와 진보로 치우쳐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이 정치와 엘리트 주도의 사회 전반에 반감을 주는 것입니다. 고단한 그들이 보기에 "덜 엘리트 같은" 보수에게 마음이 조금 더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난은 이념이 아니라 생활의 양상, 문화적 인식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보다 우선 "내"가 급한데, 다양성, 환경, 성인지, 평화, 공정, 재벌의 해체가 눈에 들어오기 힘들 테니까요. 내 보지도 않은 '종부세'는 '모든 세금'을 대표하는 '대명사'처럼 들리고, '기업'이라는 것은 '경제'를 대변해 내 주머니를 채워 줄지도 모르니까요.

잘난체의 자의식


서촌의 하늘을 넓다.


서촌의 싸전은 '시장'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시대의 모습이 어쩔 수 없어, 태어나서 "계급"을 부여받지만, 계급의 고하를 떠나, 한 동네에서 의지하고 살아갔다는 반증이 '싸전'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귀족과 관리, 기득권층은 일자리를 만들고, 그들과 함께 마을을 이루고, 녹봉을 내려 시장이 형성되게 했습니다. 계급이 한 동네에, 한 구역에 함께 하는 모습은 다른 문화에서 찾아보기 힘들기도 합니다.


'가난'이 투표에 미치는 주장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다 의미 있는 '서울'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원래는 지역의 빈부 격차를 도출해 투표 성향을 유추하려 한 탐구였는데, 농어촌 지역과 도시 지역의 소득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지역 성향 투표"가 강한 촌 지역의 지표에서는 유의미한 것을 찾지 못했고, 도시, 그중 "작은 대한민국"이라는 서울의 각 행정구역별 자료에서는 생각지 못한 의미만 눈에 띄었습니다.


25개 자치구, 110여 개의 행정동, 2200여 개의 투표소의 지난 투표 성향과 소득 수준을 비교하려다가, 앞서 말한 반성의 부끄러움과 지표에서 관련한 유의미는 찾기 힘들다는 생각에 전체의 그림을 보다가,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바로 서울에는 '부자만의 동네', '가난한 이들의 동네'는 "아파트"에 의해서 나누어질 뿐, 부자라 생각하는 강남 3 구도 부자와 빈곤층이 공존하고 있고, 상대적 경제 소외 지역인 자치구도 극도로 가난한 지표는 "소득"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주택', 그것도 '아파트'의 개발과 부동산 가격 형성에 따라 자산이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곧 투표 성향으로 이어졌습니다.

서울은 '한마디'로 정의가 어렵다

'계급 배반투표'라는 이야기도 있듯, 각 경제 계층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성향을 내는 것이 바로 이 '아파트' 가격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강남 3구의 아파트 가격은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에 가장 많은 상승 혜택을 보았는데, 투표는 반대입니다. 거꾸로 극빈의 동네는 재분배와 복지의 진보 어젠다 보다, 실행도 없고, 정작 세입자 보호도 없었던 '뉴타운' 공약에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토건, 부동산 투기 세력과 주택 소유자에게만 가는 혜택이 언젠가는 나에게 오는 '행운'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리적 개인주의, 즉 보수의 투표 성향이 된 것이지요.


20대 대선에서 후보들은 200~300만 호 이상의 '수도권 아파트 공급'을 경쟁하듯 공약합니다. 모든 부동산, 서민 경제가 '아파트'에 달린 것 같이 집중합니다. 제 것이 될 리가 없는 빈곤층까지 말이지요. 서울이 고향이 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울려 살던 동네는 비싼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의 담장으로 가로막혀 버리고, 넉넉한 이들의 십시일반은 자신들의 호주머니로 되돌아가고, 시장의 자영업자들은 빚으로 살아가는 같은 처지의 이웃들 주머니에 기대어 삽니다.

서울도 고향이 될 수 있을까?

오늘따라, 서촌의 넓은 하늘이 그립습니다. 그 옛날 신분과 재물이 차이가 있어도, 권문세가이든 기술 좋은 중인이든 열심히 노동하는 서민이든 어울려 한 동네를 이어가던 곳, 넉넉하게 받은 나라님의 녹봉을 아래로 내려 그 쌀이 싸전으로 모여들어 작은 경제 공동체가 되는 그곳, 서촌의 하늘 말입니다. 누가 이런 내일을 약속해 줄까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고 있는, 하지만 고향이 어디인지 쉬이 말 꺼내기 힘든 쉰 살 아재의 바람은 그저 꿈일까요.


그래도 꿈꾸어 봅니다. 고향이 되는 서울, 그런 대한민국.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함께 꾸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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