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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Apr 21. 2022

[밥이 하늘이다] (1) '식량 안보', 문제없는가?

한국의 딜레마, 자족이냐 활용이냐

식량 자급의 위기의 한국, 그러나 쉽게 판단하기 힘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곡물시장과 식품산업, 그리고 한국의 영향에 대한 큐레이팅을 올렸습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위협이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 난민과 최빈국에게 제일 먼저, 크게 다가온다는 공감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제법 많은 의견이 '식량 자급'과 '곡물기업'에 대한 말씀들이었습니다. 국내에는 왜 수직 계열화된 곡물 대기업이 없는가, 그런 이유로 식량 자급과 식품 제조 단가 방어에 늘 수세적인 것이 아닌가의 문제의식들이었습니다.

https://alook.so/posts/70tere2


코로나19 팬데믹의 긴 터널에 출구가 보이는 듯싶더니, 이번에는 전쟁과 기타 여건으로 국제적인 곡물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는 ‘애그플레이션’과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는 어디쯤 와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연간 곡물 수요량 2000만 톤 중 70% 이상인 1600만 톤 이상을 수입하는 세계 5대 식량수입국입니다.

한국 식량, 곡물 역량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급률은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은 45.8%,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1%에 불과합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입니다. 여러 이유로 경작이 어려운 네덜란드, 이스라엘만 한국보다 낮을 뿐입니다. 자급률이란 한 나라의 국내 농업생산이 국내 식량 소비를 어느 정도 충당하는지 공급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사용됩니다. 식량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자급률은 그 나라의 식량안보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식량이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 것은 오랜 역사에서 드러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 자족'에 관련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식량 자급률을 지켜야 한다"와 "아니다. 이미 경쟁력을 잃은 농업에 무작정 매달리는 건 비생산적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란 두 의견 사이에서 아직 완벽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한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1/0004036888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과 옥수수 등 곡물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는 가운데 세계 각국의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곡물 가격 급등과 각국의 식량 보호주의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또다시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 같은 식량안보 관점에서 여전히 취약점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면서 전 세계의 식량 보호주의를 지켜만 봐야 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기사 본문 중-



그럼에도 '식량자급'이 중요해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노력을 탐탁잖게 여기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농산업계 일각에서는 ‘세계 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GFSI)’를 인용해 자급률 정책에 회의적인 주장을 피고 있습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그룹이 매년 발표하는 이 지수의 2019년 기준 113개 국가 중 1위는 싱가포르이고, 우리나라는 29위입니다. 땅도 거의 없는 나라인 싱가포르가 1위이고, 우리나라도 농업 규모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는 주장이 그럴듯해 보입니다.

세계 식량 안보 지수


“식량안보는 전쟁이나 기후위기를 대비해서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것”이라며 “식량안보는 농경지가 많거나 자급률을 높인다고 지켜지지 않으며, 자급률을 높인다고 쌀처럼 밀과 콩에도 보조금을 주면 결국은 국민 부담”이라는 논리를 피면서, 경작지가 좁은 국토의 1%로도 안 되는 싱가포르가 1위를 하는 이유를 찾자고 합니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문제는 이 지수 자체가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국내 생산을 통한 먹거리의 자급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통한 식량 조달이라는 관점으로 평가합니다. 각국의 경제적 부담능력, 공급능력, 식품 품질과 안전 등 3개 부문을 평가합니다. 교역을 통한 접근성 중심의 평가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수출국'입장에 기울어진 평가로, 우리나라 같은 수입국은 해외조달을 제외한 '국내 자급률'이 진짜 '안보'의 기준에 적합할 수 있습니다. 지수 1위인 싱가포르도 10%대의 '자급률'을 30%까지 올리겠다는 국가적 식량 자급 생산 가속화 전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도시농업, AgriTech 등)


또한 세계 식량안보지수란 것이 왜 만들어졌는지 그 배경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그룹의 식량안보지수는 다름 아닌 초국적 자본 종자회사 ‘듀폰’의 위임으로 발표되는 것입니다. 듀폰은 몬산토, 신젠타 같이 대표적인 바이오 메이저로서, ADM, 카길, 드레퓌스, 붕게 등 곡물 메이저와 함께 세계 농업시장을 지배하는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라고 불리는 초국적 자본 집합 기업입니다.

3대 종자 회사

GMO(유전자 변형 작물)를 포함한 종자와 농화학, 곡물시장을 장악한 이들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들은 비판의 국면에서 방어를 펼칩니다. 바로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이 식량위기에서 인류를 구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식량 안보론을 전파해왔던 것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 무역기구(WTO)의 식량안보 개념도 이런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국의 식량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본래의 의미에서 자유무역을 통한 식량 조달이라는 개념으로 변질된 것이지요(UN이나 국제기구를 마치 중립적인 정의의 사도로 여기는 분들이 많지만).


무역을 통한 식량조달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식량 안보론'은  허구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7년~2012년까지 지속된 애그플레이션에 의한 식량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당시 식량위기는 육류 소비 증가와 바이오연료 개발 등으로 수요는 증가한 반면, 라니냐 등 기후재해로 곡물 수출국의 생산량이 급감, 수출 제한 조치가 잇따르면서 촉발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곡물 투기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위기를 가속화하게 되었습니다.



농자지천하대본야(農者之天下大本也)


2010년 이후 아랍권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재스민 혁명’도 근본 이유가 '이념, 신념'이 아니었습니다. 시작은 버로 식량부족 때문이었습니다. 무역을 통한 조달은 위기 상황에서 식량안보를 담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서도 각국이 앞 다퉈 식량수출을 제한하면서, 무역을 통한 식량 안보 확립이라는 논리는 한계가 있음이 다시 증명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재스민 혁명

이렇게 식량안보 개념이 변질되면서 최근에는 식량안보(food security)라는 개념 대신 식량주권(food sovereignty)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가 존립의 기반인 식량 문제를 초국적 자본에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과 국가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이지요. 밥은 하늘이고, 밥은 쌀과 밀에서 나오고, 쌀과 밀은 땅, 경작지에서 나옵니다.


이런 일들을 살펴보면서도, 식량을 해외에서 잘 조달하면 국가의 식량안보가 달성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곡물의 70% 이상을 수입하는 나라가 식량위기에 대비해 식량자급에 투자하는 게 과도하다는 말은, 전쟁에 대비해 국방 예산을 확보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극단적인 생각은, 국방비를 줄이고 다른 안전, 식량, 인구 예산과 통합하여, 유연한 '국가 안보 예산'으로 편성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제안도 있었다는 정도만 이야기해 봅니다.


https://www.lafent.com/inews/news_view.html?news_id=126877

도시농업이 싱가포르의 식량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도시농업만으로는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에 각 분야에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움직임들이 있고 이는 싱가포르 식품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체 단백질 연구 및 개발은 식품 생산을 늘리기 위한 싱가포르의 또 다른 성장 분야다. -기사 본문 중-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10125/105089301/1

연이은 식량 부족 위기를 겪으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싱가포르 정부는 2019년 3월 자국 내 생산을 통한 식품 공급을 2030년 현재의 10%에서 30%까지 확대하겠다는 ‘30 by 30’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자국 내 식품 생산을 늘리기 위해 관련 연구개발에 1억 4400만 싱가포르달러(약 1200억 원), 농업 회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 도입 지원에 6300만 싱가포르달러(약 524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기사 본문 중-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식량안보지수 1위라는 것만 부각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식량자급률을 높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단지, 경작지를 넓히고 수확량을 높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농수산물 등 1차 산업이 '산업의 혁명'으로 외면받고 있는 동안, 산업은 수직 계열화되면서 '수송, 보관, 배분'이라는 물류의 인프라와 '가공, 표준화'라는 1차 상품화의 제조의 영역까지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연재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농사는 하늘의 일

'농자지천하대본야(農者之天下大本也)'라는 말이 있듯이, 대한민국의 '농부의 땅'이었습니다. 농업을 기반으로 현대의 산업화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산업의 역군이 되었던 기술자, 경영자, 판매자들은 농촌의 부양과 헌신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21세기를 20%를 지나온 지금, 다시 우리는 '농업'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후속 연재) '밥은 하늘이다'

(2) 곡물 공룡 ABCD를 아시나요?

(3) 진짜 4차 산업 '아그리테크(Agri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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