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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May 31. 2022

토론과 토의, 그리고 논쟁

공론의 가치(1)

공론 형성의 대표 - 토론과 토의


"공론"을 형성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투표와 설문이 있고, 제안과 공모도 있고, 대표적으로 '토론'과 '토의'라는 집합 회의체의 의견 개진이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학급회의부터 공청회, 선거 후보자 토론회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장과 의견을 '토로(吐露)'하는 의사결정과 공론 형성 방법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공론화란

'건강한 공론의 장'을 표방하는 이곳도 그 개념과 해석은 두리뭉실하기만 합니다. 예의를 지키는 것이 맞지만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물음과 논박과 논쟁은 어느 수준이 맞는 것인가 대한 이야기들은 구성원들의 몫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그래서 원론적인 고민부터 해 볼까 합니다. 우리는 사안과 이슈, 그리고 주장에 있어서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토의'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공론 형성의 주된 방법인 토론(debate)과 토의(discuss)는 같은 듯, 달라 보이고, 다른 듯 비슷해 보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이 두 단어가 공식적으로 교육되고 설명된 지 벌써 25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두 말에 대한 개념 규정은 저마다 구구합니다.


토론과 토의, 무엇이 다른가?


 토론은

“어떤 주제에 대하여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논증이나 검증을 통해 자기주장을 정당화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는 말하기 듣기 활동(정문성, 2004)”

“그 방식이 규칙적이고 결정 방식도 일정하기 때문에 결과가 분명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는, 여러 의견들 중 보다 나은 것과 보다 못한 의견을 정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명확히 구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하병학, 2004)”

“참가자들이 대립적인 주장을 통해 바람직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송창석, 2001)”

“정해진 규칙에 따라 긍정과 부정으로 대립하는 두 팀이 주어진 논제에 대해 논거에 의한 주장과 이에 대한 검증, 의논을 되풀이함으로써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강태완 외, 2001)”

이라 규정됩니다.


 토의는

“공동의 관심사가 되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집단 구성원이 협동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교육인적자원부, 2004)”

“제기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수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자기의 견해를 개진하는데 주력하는(하병학, 2003)”

“참가자들이 협력적인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송창석, 2001)”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여 그 주제에 대해 학습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말하기 듣기 활동(정문성, 2004)”

라고 정의되곤 합니다.

토론과 토의


전문가들의 규정과 정의는 도움이 되지만, 참 아리송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해석으로 풀어 보자면 이렇습니다.


토론(討論)과 토의(討議)의 의미 해석의 시작과 끝은 한자 "토(討)"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한자의 훈, 즉 뜻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12번을 보다 웃음이 나왔답니다)


1. 치다, 때리다 2. 공격하다(攻擊--) 3. 정벌하다(征伐--) 4. 다스리다 5. 찾다 6. 탐구하다(探求--), 연구하다(硏究--) 7. 더듬다 8. 어지럽다 9. 비난하다(非難--) 10. 책망하다(責望--) 11. 없애다 12. 장가들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토론과 토의에 쓰인 "토(討)"자의 뜻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토론(討論): 공격할, 정벌할, 비난할 토 + 말할 론

상대편의 의견에 공격하거나 비난할 논거를 대는 의견 개진이 됩니다. 토론은 찬성과 반대로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상대를 설득하는 말하기가 되는 벗이지요. 내 주장과 상대 주장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체급이 맞아야 격투를 할 수 있듯이 서로의 준비와 전문 지식의 급이 맞아야 합니다.


상대를 설득하려면 무조건 우기는 것보다 토론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전문가의 의견 등 적절한 근거를 들어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장의 뉘앙스가 싫다고 준비와 학습 없이 하는 반대는 반론, 토론, 논쟁이 아니라 그저 딴지입니다. 특히 인터넷 검색이 쉬워져 관심 크게 없다가 딴지의 합리화를 위해 급조한 커닝 페이퍼 수준의 반대 의견도 마찬가지입니다. 티가 다 나지요


토의(討議): 찾을, 탐구할, 더듬을 토 + 의논할 의

어떤 문제에 대해 검토하고 의논하며 연구하고 더듬어 답을 구하는 의견 나눔이 됩니다. 토의할 주제를 정했다면 주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왜'나 ' 무엇을'에 대한 찬반도 포함할 수 있지만 보통 '어떻게', '언제', '어디서', '누가'를 이야기 나누게 됩니다. 백인백색의 이야기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이때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입니다. 내 생각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방법의 모색과 합의와 절충, 그리고 대안적 복안이 나오겠지요. 그렇게 각자 다른 생각을 하나하나 모으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가장 좋은 방안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토론과 토의를 균형 있게


토론은 ‘논쟁적, 형식적, 과정적’ 사고가 요구되고 중시합니다. 토의에 비해 토론은 각자의 주장과 관점이 찬성과 반대로 분명하고 확연하게 나뉩니다. 이 두 관점은 본질적으로 타협할 수 없으며 수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각자는 자신의 관점과 주장을 옹호하고 강화하여 상대방을 논박해야 합니다. 둘 다의 공존과 타협은 불가능하고 한쪽의 승리와 다른 쪽의 패배가 있을 뿐입니다.


토론은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분명해집니다. 이렇게 격한 논쟁 끝에 남는 승 ‧ 패의 이분법으로 인해 토론을 기피하고 꺼려하는 반작용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토론에서는 절차적 ‧ 형식적 요소가 중요합니다. 토론은 본성이 '치열한 싸움'이기 때문에 공정함이 생명이 되고, 그 공정성을 위해서는 양 자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토론은 더욱 철저하고도 공정한 과정과 절차가 중시되는 언어로 싸우는 결투이자 게임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토론은 서로 대립되는 주장들의 승 ‧ 패를 결정하기 위해, 공정하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각자의 주장을 관철, 설득하려는 절차가 있는 대화 방식이라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준비 없는 입장이나 참여는 시작부터가 무례가 됩니다.


이런 특징은 어원적으로도 확인됩니다. 토론을 뜻하는 영어‘debate’는 라틴어'debattuo’에서 나왔습니다. debattuo는 ‘서로 떨어져 분리되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싸우고 투쟁하는’ 것을 뜻합니다. 라틴어의 battuo는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었지만 토론의 무기는 말과 언어가 됩니다. 그런 이유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debate의 번역은 '토론'보다는 ‘논쟁(論爭)’이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합니다. 논쟁이란 주장을 그 ‘말(言)의 도리(侖)에 따라, 말(言)의 도리를 따라 다투는(爭)’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진정한 토론은 말과 언어를 가지고 서로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니까요. 심화된 토론의 요체는 '논쟁'이 될 것입니다.

비슷한 듯 다른


반면에 토의는 ‘수렴적, 비형식적, 결과적’ 사고 과정을 중시합니다. 토의는 함께 모여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나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과정이 됩니다. 토의에서 중요한 것은 합의할 수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토의의 가장 이상적 형태는 만장일치이고, 그것이 안 될 때는, 다수결처럼 합의할 수 있는 타협적 결과를 끌어내는 것입니다.


또한 토의는 일정한 형식이나 엄격한 룰을 별로 중시하지 않습니다. 토론이 엄격한 룰이나 공정한 규칙이 중시되는 데 비해 토의는 비교적 형식을 따지지 않기 따문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논제도 비교적 열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반론과 재반론도 엄정한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 또한 토의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주장과 관점을 교정하고 심지어는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토의란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진 다양한 의견 교환을 통해, 합의적 결론에 도달하려는, 비형식적 대화방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지요.


어원으로 볼 때 토의(discuss)는 희랍어 ‘dischos’에서 나왔습니다. 이 말은 ‘주의 깊게 검사하다, 검토하다, 세금을 매기고 다시 나누기 위해 검증하다'는 뜻을 갖습니다. 따라서 discussion은 이미 확정된 어떤 대상의 진위를 검토하고 증명한다는 뜻이 강합니다. 새로운 진리나 정의ㆍ개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입증한다는 의미가 강조됩니다. 검토하고 확인하며 짚어 가는 과정이 토의가 됩니다.


토의와 토론은 이처럼 다양하게 정의되어 있어 혼동되지만 전혀 다른 결이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에는 동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외신 언론의 편파적 인용을 주장하는 글에 긴 댓글을 누군가 달았습니다. '유대계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라는 표현 하나에 꽂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비판 원어 아티클을 올리며 한국에 없는 '반유대인 법'을 주장하는 것은 NG라는 것이지요. 변죽이고 삼천포로 빠지는 딴지 성 말꼬리 잡기니까요.


또 한 가지는 '듣기'가 필수 능력이 됩니다. 상대의 주장과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쓰윽 훑어 보고 나서 자신의 정서에 반하는 표현과 주장에 그저 '반대'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특히 이 공론 형성이 '토론'인지 '토의'인지 입장의 표명은 필수입니다. 만약 토론이라 마음 먹고 '반론'을 피려면 원래 주장의 글에 준하는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 진단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자신이 학자이고 연구가라고 밝히면서, 반론에 '더 이상드릴 자로가 없다'는 식의 때 늦은 발뺌은 구려 보이기까지 하니까요.


그럼, 공론의 공간에서 댓글과 답글은 '토론의 장'일까요. '토의의 공간일까요'. 매우 심각한 우문입니다. 둘 다 가능한 '공론의 장'일 테니까요. 그러나, 개인적인 아쉬움과 바람은 있습니다. 일단 기사나 사설에 대한 공론의 목적이 불분명합니다. 찬반이 나뉜 토론인지, 다양한 해결책과 관점, 정보를 모아 이 공간만의 결론을 생산하는 것인지 모호합니다. 그냥 자의식 강한 전문가들의 일방 통보 같으니까요. 그리고, 토론이 필요하다면 두리뭉실한 것이 아닌 이곳만의 엣지 있는 'rules of engagement', 즉 '교전수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의"와 "안전"이라는 포괄적 규정만 덩그러니 있으니, 서로 토론을 주저하지 않나 싶습니다. 가뜩이나 토론이 버거운 한국인들인데 말이지요

rules of engagement for discussion


이런저런 "공론"의 형식에서 대표적인 '토론'과 '토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공론의 장에 대해 나누어 볼까 합니다.


사족)

어휘의 정의로만 보면, "정치 행위"는 토론보다는 토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건을 협의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되도록 다수가 만족하는 합의를 도출하니까요. 그런데 왜 정치인들은 "토론"만 할까요. 전문가들도 아니면서 말이지요.


요즘이야 말로 "100분 토론" 말고 "100분 토의"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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