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썰] 뉴스를 썰어 봅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24443?sid=100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이 임명 4개월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조 실장이 김규현 국정원장에게 사의를 표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실이 국정원에 조 실장의 사의를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사 본문 중-
0.
연일 생경한 뉴스 천지입니다. 레고랜드가 쏘아 올린 이슈가 아파트 공사를 멈추게 하고, 때 아닌 <동백 아가씨>가 회자되고, 빅 스텝이니 자이언트 스텝이니 알듯 말듯한 이야기가 일상을 덮습니다. 오늘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 실장의 사의가 화제라니요. 고위 공무원의 일신상 이유에 의한 사표가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일까요. 역시 친절한 설명은 언론에게 기대할 것은 아닌가 봅니다.
1.
예전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지금의 국가정보원-국정원에 기조실장이라는 자리가 있답니다. 조직도 상 공식적으로 넘버 2입니다. 실질적으로 실세라고 인정됩니다. 국정원은 정보기관 특징상 철저히 칸막이 구조라, 1 차장, 2 차장으로 나눈 국외 조직, 대북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요. 하지만, 기조실장은 인사와 예산을 통제 관리하기에 유일하게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리이지요. 그래서 조직이 개편될 때 기조실장 파워가 가장 세다고 하지요.
2.
10월 28일 저녁에 국정원 기조실장이 돌연 사의를 표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과정이 이상합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정원장에게 사표 수리를 통보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국정원장은 본인에게 직접 연락받은 적이 없다고 비공개 국감에서 증언합니다. 이상하지요. 직제상 직속상관을 건너뛰고 사표를 내고, 그것을 수리하다니요.
3.
엉뚱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맥락을 살펴봐야 합니다.
국정원장이 아니라, 왜 대통령실에 사의를 표했나?
왜 이 시점에 사의를 표했나?
4.
사의를 표한 국정원 기조실장은 검찰 출신 조상준이라는 인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에 있던 시절 '우동훈 좌상준'으로 불린 만큼 현정권의 실세 중 실세라고 합니다. 조상준은 윤 대통령의 심복 같은 존재로 한동훈 보다 기수도 한기수 위에 더 위용이 있다는 평가가 많았지요.
5.
윤 대통령은 국정원을 꽉 잡기 위해 자리 핵심 측근을 실세 자리에 심어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대표 사정기관은 양지의 검찰과 음지의 국정원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검찰의 권력이 비대해진 이유도 과거 정보기관인 국정원 전신들의 정치개입을 막고자 한 하나의 방편으로 보기도 합니다. 최근 대통령실에 문자 메시지 보고한 감사원 실세 유병호 사무총장과는 급이 다른 인물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보스는 윤 대통령이고 직접 소통했을 것입니다. 검찰과 법무부가 그러하듯이 말이지요. 그러니 사표는 당연히 자신의 Hiring Manager인 대통령에게 쓰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6.
이런 실세가 왜 지금 사표를 썼을까요? 대통령이라는 스폰서도 확실하고, 신나게 칼춤을 시작한 참인데 말이지요. 그 답은 아마도, 국정원 비공개 국감에서 나온 이야기를 참조하면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7.
취임 직후부터 줄곧 대통령실과 감사원, 검찰 등은 전임 정권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진보 정권=종북 주사파'라는 묶은 프레임을 씌우려고 집요하게 노력한 것은 사실로 인식됩니다. 서욱 전 국방장관 등을 구속하면서 탄력을 받게 되었지요. 그런 중요한 시기에 국정원에서 국회에 이런 보고를 합니다.
- SI첩보로 파악 월북 단어 들어가 있어
- 서해 공무원 피격 당시 주변에 중국어선 존재는 파악 안 되었고, 휴민트는 없었음.
- 합참에서 파악한 시점보다 51분 전에 알았다는 감사원의 검찰 조사 의뢰 내용은 '착오'
8.
이것이 국회에 보고되면 감사원과 검찰의 티키타카로 지금까지 열심히 만든 그림이 망가지게 됩니다. 이 정권은 그걸 막으려고 노력했을 것이지만, 국정원 내부에서 예상치 못한 반발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국정원이 어떤 기관이었단가 회고해 보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과거에는 검찰보다 훨씬 힘이 셌던 권력 그 자체의 조직이었지요. 그런데, 검찰 출신 낙하산이 무엇이든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라고 시키면 그걸 그대로 따라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9.
그럴 것이라고 생각 드는 이유는 MB시절 서울시 수도 국장 출신을 원장으로 앉혀 댓글부대로 전락시킨 흑역사와 특활비를 용돈처럼 사용하던 청와대를 거쳐, 대북 공작, 첩보를 축소당하는 굴욕의 정부를 만나기도 했지요. 이빨과 발톱이 다 뽑힌 야수의 심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지요. 원훈마저 군사독재 시절로 도루묵이 되었으니까요.
10.
여기에 더해 국정원은 윤 정부에게 무척 아픈 IRA 관련 내용도 공개합니다. 입법 이전에 동향 및 내용까지 미리 다 전파했다는 내용입니다. 정부의 변명과 배치되는 이야기입니다
"IRA 미 의회 통과 전 파악… 관계부처 전파했다"
11.
"감사원은 독립성은 내팽개치고 대통령실에 문자 메시지 보고하는 조직이 됐지만 국정원은 원칙과 상식을 지켰다"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반만 동의합니다. 감사원이 망가진 것은 확실하나 국정원이 정의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아직 지켜볼 것이 많으니까요. 그간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큰 흠결을 남긴 것도 사실이니까요.
12.
전임 감사원장이 최재형이었고, 전임 국정원장이 박지원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유구한 권력 지형에서 다져진 본성이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다음 타깃인 서훈 전 안보실장의 경우 안기부 공채 출신의 뼛속까지 정보통인 대표적인 인물이라, 기관의 명예와 자존심의 문제로 일어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더 싱겁고 우습게도, 좌상준이라던 기조실장이 자신보다 아래인 한동훈에게는 장관 자리와 스포트라이트를 주고, 자신에게는 차관급 자리에 음지에서 뒤처리를 맡겼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과 항변일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이 정부... 어디까지 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