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의 일상 #8
어릴 적 이사를 무척이나 많이 다녔습니다. 지금도 주민등록 초본을 발행해 보면, 이사로 다닌 횟수가 손가락 발가락을 다 동원하여도 모자를 정도로 많은 이사가 있었습니다. 심할 때는 일 년에 네 번도 이사를 한 기억이 있는데, 이층 집 계단 밑 단칸방부터, 악착같이 부동산에 매달린 모친 덕에 잠실의 '멘숀' 아파트 까지. 그러다 안정이 된 것이 국민학교 5학년 무렵, 중동에 파견 나갔던 부친이 햇수로 10년 만에 퇴직과 함께 완전 귀국한 그때부터입니다. 그러면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동네에서 보내고 재수 삼수의 시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친의 연대보증 부도의 여파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는 이삼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살던 동네 잠실에서 멀찍이 떨어진 일산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모였다 표현하지만 조부모와는 사달이 날 시기에 의절이 되었고, 하나밖에 없는 형제인 친형은 수도 사제가 되기 위해 정동의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겼기에 달랑 세 식구가 전부였지만 말입니다. 그곳에서 제대 후에 복학생을 보냈고, 첫 직장이 반포였음에도 새로 뚫린 3호선 전철을 편도로 69분 타고 다니며 출퇴근을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같은 경기도 위성도시이지만 반대편 남쪽의 분당 가까운 용인으로 단출한 세 가족이 이전을 했고, 그곳에서 결혼과 함께 집을 나와 다시 예전에 살던 동네 잠실에서 신혼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 처가살이로 시작한 신혼집은 이어 작은 전셋집으로 그리고 이내 분양받은 재건축 아파트로 옮기면서 어릴 적 보냈던 동네에서 일상을 보낼 것만 같았습니다. 서로 맞벌이로 바빴지만 재미 가득한 신혼을 보내고, 결혼 4년 만에 아들을 보았고, 그 아들이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 초등학생으로 입학하는 묘한 기분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 안정감은 얼마 가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나의 욕심으로 가족은 다시 해체되었고, 그 길로 전처와 아들이 떠난 집을 일 년 넘게 지키다가 부모님 댁에 잠시, 그리고서는 독거의 시간으로 4년이 넘게 홀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4년 동안 이사를 여섯 번 하였고, 이제 일곱 번째의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길에서 한참 걸어 올라오는 주택가 골목길에 작은 집은 급하게 구한 셋방 치고 만족스럽습니다. 조용한 밤 혼자만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어 좋고, 그간 침대 옆자리를 비우기 힘들어 소파에서 잠들던 쪽잠의 생활도 청산하여 아침마저 거뜬합니다. 이제 상처 난 마음도 뉘우고 지친 몸도 기댈 그런 곳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집'이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소망이라는 것이 생겨 났습니다. 조만간 멀지 않은 내일에 내 작은 집을 갖기로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은 정원을 품은 작은 집을 가꾸며 사는 그런 삶을 목표로 합니다. 잠시 쉬어 가던 발걸음을 재촉해도 이제는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으면 누구든지 내게 힘들면 와도 되는 그런 집.
이사 끝낸 깨끗하고 조용한 작은 방에서 그런 생각을 채워 봅니다.
이제 깊은 잠을 멈추고 께어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