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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극장에] 헤어져도 괜찮아

#1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1979, Kramer Vs. Kramer)

by 박 스테파노

https://naver.me/FEJZfYGs

광고 회사에 다니는 테드(더스틴 호프만 분)와 일곱 살 난 아들 빌리(저스틴 헨리 분)는 아침부터 허둥지둥입니다. 뒷바라지하며 살던 아내이자 엄마인 조안나(메릴 스트립 분)가 어느 날 새 인생을 찾겠다고 홀로 집을 나갔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일이라곤 해 본 적도 없는 테드는 졸지에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나름 잘 나가는 직장 생활을 유지하면서 살림에 육아까지 제정신일 수 없는 위급 상황이 일상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게 나름의 적응이 되어 가던 1년 하고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조안나는 빌리를 데려가겠다고 양육권 소송을 제기합니다. 테드는 이대로 양육권을 넘겨줄 생각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하고 만반의 준비를 대 합니다. 그러나, 1인 3역의 가중에 회사 생활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회사는 테드를 해고하고 마는데... 이 가정의 위기는 어떻게 될까요? 억지 봉합이라는 무리수 말고 묘수가 있을까요?
공식 포스터, 한국 개봉 광고. 사진=나무 위키


신파가 없는 신파극


부친과의 극장 관람은 일종의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습니다. 1970년 대부터 시작된 '중동 붐'이라는 해외 건설 수주 호황에 해외 파견 근로자로, 그 떨어진 가족으로 십여 년 생활한 이유에서 '영화 극장 관람'은 중요 행사가 되었습니다. 도산한 집안의 젊은 가장이 선택한 묘수였다고 할수 있는 부친의 부재였지만 나름 상봉의 기쁨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일 년에 한두 번 휴가차 귀국하는 가장의 일정은 빼곡하고 빡빡하기 일쑤였습니다. 가족들과 밀린 여행도 해야 하고, 집안의 대소사도 그때에 맞추어 날을 잡고, 선산 벌초에 시골 동창회까지 한 달 여의 휴가는 말만 '휴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 짬을 내어 꼭 가던 곳이 바로 극장, 영화관이었답니다.


아버지와 함께 본 첫 극장 영화는 기억이 흐릿합니다. 앤서니 퀸의 <사막의 라이언>이었는지, 스티브 맥퀸의 <엑소더스: 영광의 탈출>이었는지, 아니면 비슷한 세계 전쟁 배경의 영화였는지 헷갈리기만 합니다. 하지만, 생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영화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바로 로버트 벤튼 감독, 더스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 주연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였습니다. 명보극장으로 기억되는 단관 개봉관에서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 '첫 눈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눈물을 흘렸는지 그때 아홉 살 소년의 마음을 그대로 기억하기는 힘들지만, 영화에 나오는 대여섯 살 먹은(실제로 일곱 살 역할) 아들 빌리의 모습에 동화되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이혼'이라는 것이 흔하지도 않았던 1980년의 상황에서 무슨 이유로 아빠와 엄마가 떨어져 사는지는 영화 속의 빌리도, 영화를 보는 꼬마 스테파노도 알 턱이 없으니까요. 그냥 어른들의 알 수 없는 갈등과 실랑이로 다니던 학교도 놀이터도 먹던 음식도 잠자리 자장가도 모두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것이 납득이 안 갈 뿐입니다. 그런 이리저리 치이는 아이의 모습에 눈물이 났던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슬픈 사건이라고는 없는데 자꾸 눈물이 나는 그런 신묘한 첫 경험이었지요. 영화를 채운 비발디의 협주곡( 만돌린과 현,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C장조, G장조)의 경쾌한 진행이 구슬프게 들릴 정도이니까요.

그냥 슬픈 영화, 스틸컷=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이혼'해도 괜찮아


40년이 지나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것은 두 주연과 아역의 호연과 그렇고 그런 소소한 사건들이 슬픔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느낀 것들이 있다면, 더스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은 지금의 저보다 젊고 생기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잔잔한 슬픔이 아들 빌리의 시각이 아닌 두 어른의 입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영화의 제목이 직관적으로 말해 주듯이 영화는 '이혼'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미국 재판의 특징이 형사든 민사든 '원고 Vs. 피고'로 지칭되는 바, 테드 크레이머와 조안나 크레이머 사이의 양육권 소송 표제가 제목이 된 것이니까요.


십여 년 전 이혼 후 재혼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아내도 같은 경험을 가진 나름 고통과 위기를 겪어 낸 동기이지요. 우리 두 사람은 방귀는 물론 모든 것을 숨김없이 튼 사이지만, 딱 하가지는 서로 궁금해하거나 물어보지 않습니다. 왜 이혼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도 묻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때의 나도 괜찮지 않고, 그 당시의 아내도 괜찮지 않았겠지만, 지금 우리는 괜찮으니까요. 나름 나름의 불행은 꼬치꼬치 물어서 행복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저자 스캇 펙은 “우리가 성장하게 되는 것은 고통과 위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 중에 부러 고통스러운 위기를 겪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삶은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아픔과 고통을 던져 주고, '견디어내'라고 호통치는 것 같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힘든 상황에서 되새겨볼 중요한 주문 같은 말 한마디를 알려 줍니다.


“나도 괜찮지 않고,
당신도 괜찮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결혼 이야기> 스틸, 포스터=블로그 Moviewer/ 스틸컷=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그때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이혼이 이제 너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나 방송 드라마에서도 등장 인물 중 서넛은 이혼 당사자이거나 이혼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 나옵니다. 2019년에 개봉하고 아카데미를 수상한 <결혼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마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재해석처럼 느껴집니다. 흔해진 이혼의 풍속에도 개인이 받아들이는 고통과 위기감은 덜하거나 더해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결혼 이야기>의 끝 무렵, 주인공 찰리(아담 드라이버)가 부르는 ‘Being alive'(뮤지컬 ’ 컴퍼니‘ 삽입곡)를 들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아빠 테드(더스틴 호프만)의 점점 능숙해진 요리 솜씨와 조응하듯 “봐, 다 괜찮아지잖아.”라고, 우리에게 말해 주는 듯합니다.


괜찮지 않은 분들, 괜찮다고 듣고 싶은 분들에게 보내는 '아빠랑 극장에' 가서 본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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