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분노의 역류 (1991, Backdraft)
순직한 소방관의 아들들인 형제들은 늘 으르렁 대기 일쑤입니다. 형인 스티븐(커트 러셀)은 좀처럼 사명감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동생 브라이언(윌리암 볼드윈)을 못마땅해합니다. 둘 다 소방관의 길을 걷는 데도 말이지요. 한편 관할 지역에 백드래프트라는 희귀한 폭발 현상으로 3명이 차례로 죽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화재조사관인 림게일(로버트 드니로)이 수사에 착수합니다.
형에 대한 열등감 반 반감 반으로 브라이언은 소방서를 나와 조사관 림게일의 조수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조사 결과 방화 살인임이 드러나고 용의자를 지목하지만, 그 용의자마저 방화 살인 미수를 당하게 되고 사건은 미궁에 파집니다. 결국 희대의 살인마에게 조언까지 얻은 끝에 브라이언은 형도 의심해 보지만, 수사 끝에 스티븐과 아버지와도 동료였던 소방관 에드콕스(스콧 글렌)라는 걸 알게 됩니다.
스티븐은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가기에 에드콕스를 설득하려 합니다. 그때 화학공장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모든 소방관들이 출동하게 되는데. 스티븐은 설득에 성공하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브라이언은 열등감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형과 같은 소방관으로 거듭나게 될까요.
1992년 당시 흔하지 않았던 소방관 소재의 영화는 제법 흥행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잘 나가던 액션 스타, 커트 러셀이 불구덩이의 동료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며 외치던 한마디 'You go, We go.'는 술자리 단골 모사 패러디가 될 정도였습니다. 네가 간다면 나도 간다는 다소 낭만적이고 비장한 이 외침은 영화의 첫머리와 클라이맥스에 나오면서 작품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두 해 뒤 입대한 군대에서도 유격 훈련 중 지친 동료를 끌서 올리며 응원의 농담으로 건네었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당시 소방관과 방화범이라는 이야기 소재는 신선한 것이면서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감사한 분들의 존재감을 부각해 주었습니다. 한국 영화계도 놓치지 않고 유사한 소재의 작품을 연신 내어 놓았지요. 단 기획부터 크랭크인까지 시차가 있어 2000년이 되어서야 <싸이렌>과 <리베라 메>가 개봉되었습니다. 작품의 수준은 뒤로 하더라도 그만큼 <분노의 역류>가 큰 임팩트가 된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영화는 소방관 이야기를 내 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제가 가득한 미스터리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넘실대는 화마와 맞서 싸우며 일생을 보낸 배테랑 소방관이 연쇄 방화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시정부와 시의원들의 '소방 예산 삭감'과 그와 연관된 비리 때문이었습니다. 연루된 시의원과 관계자들에 대하여, 가장 두려워 하지만 가장 잘 알고 있는 방법으로 사적 응징을 한 것이지요. 시간이 지나서 지금 돌이켜 보면, '소방관의 나라' 미국에서도 처우와 환경에 대한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미국에서 소방관은 가장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입니다. 안보와 치안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존경이 두드러지는데, 비리와 범죄 연루가 많은 경찰보다 더 존경받는다는 평가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살펴보면 매우 실효적인 평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럽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은 많은 것들을 유럽의 그것과 비슷하게 구현하거나 따라 하곤 했습니다. 단 한 가지 주택, 건물의 건축은 그 양상이 많이 달랐지요. 유럽은 석조 건물, 벽돌 조적 건물이 발달했지만, 미국은 목조 건물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급작스러운 이민과 개척과 개간이라는 단어를 유추해 볼 때 가장 빠르게 수급, 건축 가능한 목재를 선호한 것이지요.
신대륙에 나무는 엄청 많아 수급이나 건축에는 문제가 없는데, 가장 큰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화재의 위협입니다. 꼭 약탈이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취사와 난방 등에서 화기와 불을 필수적으로 사용하기에 취약성에 노출이 쉽게 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치안과 행정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의용 소방대와 소방관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그 넓은 미국에서 소방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약 115만 명(전임 소방관 40만 명, 의용 소방관 75만 명)으로 소방관 1인당 300명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은 소방관 1명 당 1,200명)
소방관들의 연봉은 매우 정치적인데, 주의 자치적인 결정이지만, 대략 미국인의 평균 소득에 수렴합니다. 5만 달러 전후로 책정 되는 셈이고, 기본급은 시급 13달러에 준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최저 시급을 약간 상회하는 것이지요. 바이든 대통령이 부자 증세를 강조하며, 이 소방관들의 처우와 세금 부과에 대해 격노한 일화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소방관들의 노고들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직접적'으로 지켜주는 공무 행사자들입니다. 군대나 경찰보다 더 중요한 공권력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10.29 참사, 그리고, First in Last out
최근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에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책임지는 관료들의 모습을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초기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용산 소방서장은 직무유기라는 죄명으로 입건이 되었습니다. 비상상황 단계 발효를 행정적 소통으로 늦게 했다는 이유입니다. 솔직히 어처구니없어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많습니다. 소방관은 이처럼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 '최선'때문에 자신은 정작 구해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03/0011529687
소리 없는 눈물과 함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이들의 망치질은 멈추지 않는다. 영하의 날씨에도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구조작업이 진행됐다. 2001년 3월 4일,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그날'의 이야기와 그 후 밝혀진 충격적인 진실이 공개된다. -기사 본문 중-
지난 11월 10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3>에서는 '홍재동 화재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사건은 2001년 3월 어이없는 방화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불이 크게 번진 홍제동 2층 집에 사람이 있다는 주인집 어머니의 하소연으로 화마의 입안으로 다시 들어간 6명의 대원들 머리 위로 집이 붕괴됩니다. 250여 명의 동료들이 달려들지만, 결국 찾아 올린 동료들은 병원 치료 중 목숨을 잃고 맙니다. 조사 결과 집에 남아 있다던 주인집 아들은 이미 집을 떠난 상태이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아들이 홧김에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 방화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충격적인 범행뿐 아니라, 소방관들의 처우와 소방법의 문제들이 대중들에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놓인 차량들로 소방차의 진입이 어려워진 것에 대응해 소방법을 개정 보완해, 소방 지역에서 회피하지 않는 차량에 대한 강제 견인 이동, 강제 개문이나 고의 파손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용 문제로 방수복을 지급했던 행정 꼼수가 밝혀졌고, 그제야 방화복 구입 지원이 공식화되었습니다. (아직도 고효율 장비는 사비로 충당)
24시간 맞교대의 열악한 환경은 지금의 3교대로 바뀌었으며, 이날 사고를 목격한 근접 동료들이 바로 다음 날 출동하는 등 문제가 지적되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사회의 주목을 받고 관심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같은 '의용 소방대'가 발족되었고, 각 지자체에서 소방 예산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소방 관련 사람들은 '홍제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꼬꼬무> 방송에 나와 어렵게 당시 증언을 한 소방관의 등 한편에는 커다란 타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화상 상처를 커버한 타투에는 'First In, Last out'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있습니다.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온다.'라는 소명, 천명의 다짐이 새겨져 있는 것이지요. 30년 전 영화의 'You Go, We Go'만큼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 누가 뭐래도 그 자리에 가장 먼저 온 공적 임무, 공무원들은 소방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의 하나를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책임을 묻는 시간이 되자 모두 소방에게 손가락을 겨눈 듯합니다. 그 이유는 국가 행정 체계상 가장 힘이 없는 내청 구조이고 지방에 분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 검찰과 비교)
한 나라에는 사회 안전 보장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화재, 홍수, 지진, 환자 이송 등 각종 국가 재난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입니다. 화재 진압 모습부터 최근에 집중 호우로 인한 침수 지역에서 구조 임무를 하던 모습까지, 소방관은 국민 안전의 처음이자 마지막 보루 역할을 담당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감염병 대응에도 소방관의 임무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안보 요소들, 군대와 경찰, 검찰보다 열악한 처우와 미약한 공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극성기에 구급대원들은 방호복, 고글, 장갑, 마스크, 버선을 벗지 못한 채 대기를 하기 일쑤였습니다. 코로나가 잦아들어도 그들의 근무 환경을 늘 과로와 긴장이 뒤덮고 있습니다. 최근 대형 화재 사건에서 생명 위험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고, 장비와 여건이 좋아져도 인력이 부족하여 좀처럼 휴식을 청할 수 없는 일상이 거듭됩니다. 최근 10년간 순직한 소방관은 55명입니다(국민의 힘 이용호 의원실). 전쟁 위기의 군인보다, 범죄 위협의 경찰보다 높은 비율입니다.
이 순직은 어쩔 수 없는 사고라기보다 인재에 가깝다는 평가들이 이어집니다. 수도권이야 나은 편이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기피 직업이 되어 인력난에 부딪힌 지 오래입니다. 인력난으로 집중 훈련받은 고유의 임무 수행이 아닌 구멍이 난 공석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고는 필수가 된다는 것이지요. 어깨너머 배운 업무 지식으로 대응하다가 긴급 투입된 현장에서 사고 위험에 바로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소방청으로 승격되면서 지휘부, 중앙 관료들은 현장 경험 없는 이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지난 평택 물류 창고의 순직도 경험이 없는 지휘관의 무리한 진입 명령이 참사의 이유가 된 바가 있습니다. 대형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이 순직할 때마다, 국가적 재난에 처했을 때 소방관의 헌신이 부각될 때마다 정부는 소방공무원의 처우를 대폭 개선한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근본 이유는 손을 못 대고 있는 실정이지요. 바로 '탁상행정' 그것 말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대규모 증원이 있었고, 국가직 전환의 공론이 진전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디테일에 있는데 방향만 그럴듯했습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간 2만 3789명이 증원되었다 합니다. 신설된 규칙을 근거로 행정부서 재, 개편이 이뤄지면서 전체 인력 대비 현장 인력의 비율은 2016년 80%에서 2020년 76%로 되려 감소했습니다. 행안부 공무원들의 행정직 증원만 늘어나 실질적으로 옥상옥만 쌓아 놓은 샘이 되었습니다. 실력 없는 어쩌다 공무원이 된 정치인들의 작품이지요.
우리나라 공무 사회의 가장 큰 단점인데, 소방도 현장 출신보다 행정 공무원의 진급이 빠르고 수월합니다. 그러니 현장에서의 대응이 구멍이 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종 수당 현실화와 연금제도 개선, 근무 교체 체계 변경, 소방인권센터 설립, 현업 근무자 별도 보수체계 마련 등 아직도 개선돼야 할 소방관 처우 문제가 산재해 있는 실정입니다. 경찰병원, 군인병원은 있지만 소방병원은 이제야 첫 삽을 떴습니다(국립 소방병원 2025년 완공 예정). 이것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의 마지막 보루 소방관의 현실입니다.
소방관들이 긴급 방재 구호 임무에 투입되면 자신들의 통신망으로 끊임없이 상황을 주고받습니다. 그중 가장 반가운 소리는 '47(사십칠)'이라는 암구호입니다. 시간의 단축과 전달의 명료성을 위해 숫자의 조합으로 통신을 하게 되는데, '46?'하고 묻는 것은 '너 괜찮니? 거기 있니?'라는 호소의 질문이고, '47'이라는 대답은 '나 괜찮아, 여기 살아 있어'라는 화답이라는 것이지요.
국가의 안보는 안전보장의 줄임말입니다. 용공 좌익 세력을 추출하고 주사파를 때려잡는 일이 안보가 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전쟁과 군사적 위협으로부터의 방어와 안전 보장을 위한 국가 방위, 각종 범죄와 사건 시고로 부터의 안전을 지키는 경ㆍ검찰력 만큼 중요한 것이 소방의 영역이 아닐까 합니다. 어찌 보면 만의 하나라는 개념에서 더 실질적이고 현재적인 공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 '46? 관찮아요?'라고 물어야 하는 시간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기꺼이 '47! 네 괜찮습니다!'라고 답 줄 때까지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