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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Nov 21. 2022

주기가 짧아진 빙하기, 공룡들은 어쩌나

빅 테크들의 구조조정

국제 사무기기 회사


'국제 사무기기 회사'라고 아시나요?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 Corp.라는 회사로 이니셜로 줄여 IBM이리고 합니다. 컴퓨팅 산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PC라는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를 본격화시킨 이 기업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 봄직합니다. PC-Peraonal Computer가 원래는 IBM의 고유한 상품명으로 시작되었고, 그런 연유로 지금의 랩탑 형식을 'IBM 호환 기종'이라고 통칭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타임카드 출근부 천공기, 금전 출납기로 시작한 이 회사의 이름은 현대 산업계의 잔산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IBM호횐 기종, 사진=theconversation.com

이런 말은 제가 이 기업에 15년 넘게 근무했던 옛정에만 기댄 것은 아닙니다. IBM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술 특허가 등록되어 있는 기업입니다. 2020년에만 9000개가 넘는 특허를 등록했다지요. 벌써 27년째 세계 최고의 특허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20년에 설립된 이후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떠져도 15만 건이 넘는 특허를 받았으니까요. 단순히 '컴퓨터' 박스를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고, 블록체인 기술의 현실화, 양자 컴퓨팅 등 첨단 기술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여전히 영향력 있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평가됩니다. 그럼에도 불구 집안 어른들은 IBM 다닌다는 말에 "YBM 다닌다고? 영어 선생이여?"리고 묻곤 하셨지요.



거대 기업의 다른 이름 '공룡'


이런 100년 기업도 망해서 없어질 뻔한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컴퓨터 붐으로 팽창 가도의 이 기업은 비대해질만큼 비대해져서 '공룡'이라 불리게 되었지요. 개인용 컴퓨터의 구매 요인이 컴퓨터 박스에서 CPU와 운영 체계로 선회하면서 고전적인 DOS 운영을 고집하던 IBM에 위기가 닥쳤던 것입니다. IBM이 업어 키우던 인텔과 마이크로 소프트의 반격, 그리고 그들과 연합한 신흥 강호- 휴렛패커드, 컴팩, 델 컴퓨터의 거센 도전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빅 블루'라고 지칭되던 기술 산업의 코끼리가 새로운 신흥세력 사자와 하이에나들에게 습격을 당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기어이 1990년 대 초반 연이은 거다 적자로 숨통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지요. 그때 나타난 구원투수, 심폐소생술 응급의가 바로 루 거스너 회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어리둥절하고 말았습니다. 컴퓨터 산업에 문외한이었고, 물류회사(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과자회사(나비스코)를 경영하던 그는 IBM을 무척 싫어하던 인물이었으니까요. 다 망해가는 회사라 판단으로 실리콘벨리의 라이징 스타들은 손을 내 저었고, 루 거스너도 한 번 거절했으니까요.

루 거스너, 사진=Daily Mirror

그러던 그가 '코끼리를 춤추게' 하겠다며 등장합니다. 애국심과 소명이라는 명분과 막대한 연봉과 전권 일임이라는 실리가 담보되었으니  한번 해보자는 식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니면 말고 가 아닌, 쓰러져 가는 공룡기업을 회생할 적임자였습니다. 바로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의 달인이었으니까요. 그에게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 찾아온 것이었지요. 그러나 만만치 않은 일임에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IBM은 창립자 토마스와 그의 아들 토마스 왓슨 주니어의 유지로 만든 전문 경영자의 회사로 유명합니다. 대주주도 국민 연금 등의 공적 자금인 만큼 경영, 임원진들에게는 성취만큼의 보상이 보장되는 직장이어서, 만장일치의 의사결정 구조를 고집하며 보수적 권위를 공고히 했습니다. 미국 내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엘리트들의 보수 성향이 견고해지고, 자신의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협업보다는 무한 경쟁, 견제가 만연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는 퇴자를 맞기 십상이고 자리에 연연한 임원들의 세상이 되었던 것이지요.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루 거스너는 내부 업무 문화부터 칼을 댑니다. 일단 말단부터 임원까지 개인ㆍ부서ㆍ회사의 성과와 연봉을 연동시킵니다. 일명 레버러지 플랜인데, 자신의 월급 중 40%를 성과에 연동해 성과에 따라 계약한 연봉의 60~132%를 받는 '전면 성과제'를 도입합니다. 그리고 One meeting, one act라고 해서 회의는 무조건 결론을 내어 Action plan을 도출하게 하여 모니터링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내부 용어 (제가 다닐 때만 해도 '약어, 용어'해설집이 있었다는)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화이트 셔츠ㆍ블랙 슈트ㆍ브리프케이스라는 드레스 코드를 폐지하고, 관리자의 방을 없애고 임원들 방문을 없앴으며, 직원들은 모바일 오피스를 권장해 Customer facing time(고객 접촉 시간)을 늘립니다.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사진=Scribd

단지 매너와 겉모습만 바꾼 것이 아닙니다. PC사업을 축소하고 프리미엄 노트북에 집중하고, 이내 PC 부문을 매각합니다. 그리고 하드웨어는 서버와 서버 기술에 집중하고,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변신을 도모합니다. 협업 툴, 그룹웨어 로터스. 시스템 매니지먼트 티볼리 등 수백 개의 소프트웨어 기업을 인수합니다. 그리고 고객들의 의견을 담아 컨설팅부터 구축, 관리까지 이어지는 통합 비즈니스 체계를 갖추고 비즈니스 컨설팅 강자인 PWC를 인수합니다. 이제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 산업 생태계의 다른 업체들과 협업의 체계를 만드는 일에 성공을 거둡니다.


IBM의 컨설팅 서비스 비즈니스는 성장을 거듭하여 2005년 I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서게 되었답니다. IBM은 이제 소프트웨어 회사이자 서비스 업체로 성공적으로 변신하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루 거스너가 퇴임하던 2002년 300억 달러의 매출로 완벽한 부활을 시켰다 평가받았답니다. 그 사이 신흥 강자였던 HP, 컴팩, 델 컴퓨터는 이빨이 다 뽑히고 존재감을 잃고 말았으니 참 묘한 운명입니다.



'구조조정'  유효하다


루 거스너의 성공 비결은 역시 컨설팅 업체에서부터 다져진 그의 냉철한 경영 노하우 라고 이야기합니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그 기저에는 '구조조정'이라는 서슬 퍼런 칼춤이 있었습니다. 당시 전체 인원의 1/3인 10만의 직원을 잘라 낸 것이 혁신의 시작이었습니다. 무려 10만 명. 그 구조조정의 위에 데이터에 근간한 변화 관리, 내부 혁신, 비전 재설정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50년 전 기업 평가 100대 기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 후 기업들의 부침은 지속되었습니다. FAANG이라고 불리는 애플, 아마존, 구글은 이미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어 낸 바가 있습니다. 2010년 전후 하드웨어 기업들인 HP, 컴팩 등은 고비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소니, 파나소닉, NEC 등의 하이테크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트위터나 메타의 구조조정 바람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이 서비스를 위해 종사하는 사람이나 소비자들이 그 험난한 '공룡 기업들의 빙하기'를 겪어 보지 못해 화들짝 놀라는 듯합니다. 그 빙하기의 주기는 계속 짧아지고 있기에 머지않아 또 겨울이 온다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시작, 사진=동아일보

'구조조정'은 뼈아픈 일이 됩니다. 잘려 나가는 사람도 남은 사람도, 지켜보는 소비자들도 걱정이 앞서겠지요. 그러나 생각을 좀 더 깊게 해 본다면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IBM과 같은 고전적인 기순 공룡들은 실재하는 '기술'을 내 세웠음에도 위기를 맞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술'의 실체보다는 마케팅 구호와 모호한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의 길에 접어든 것이 지금의 '빅 테크 기업'들입니다. '빅 테크'에 정작 눈에 띄는 '기술'은 없으니까요. 선배 격인 애플, 구글, 아마존이 메타나 트위터와 섞이기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종사자들은 항변하겠지요. 엄청난 기술적인 엔지니어링을 하고 있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진짜 그런가요. 개발자 도구 위에 숱한 작업은 개발이 아니라 그저 복붙의 노가다가 아닐까요?


기업은 지속적인 탈바꿈이 되어야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하드웨어 회사를 소프트웨어 회사로 뼛속까지 바꾸는 과감한 혁신, 권위와 폼생폼사, 그리고 자기들만의 도취감을 내려놓고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는 체질의 변신, 그리고 그 전략을 전력을 다해 실행에 옮기는 루 거스너가 만든 '기업가 정신'은 새겨 볼만 합니다. 산업의 종류와 업태를 떠나 경영과 혁신을 위한 리더의 초심, 그리고 그 초심의 실현은 늘 유효합니다.


지금의 빙하기는 '자아도취'의 준비 안된 기업가들에 대한 오래된 이치의 경고일지도 모릅니다. 겨울은 또 옵니다.

너도 조심해, 사진=루리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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