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책임은 완결을 이야기할까?
세성의 사실과 진실은 다를지도 모릅니다. 드러난 사실이 '법적 해석'으로 달리 규명될 수도 있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특히 최근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도 모든 것을 '법적 해석'으로 일축하는 세태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국가 행정에도 '정치'의 영역이 있듯이, 진실의 규명은 법 너머의 당시 당사자들의 마음과 처지, 그 영향을 고루 밝히고 결단 내리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안우진의 반격에 정당성은 9월에 어느 구단의 내부 해석으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우진의 입장 반격(?) 논란은 이미 지난 9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예견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2023 신인 드래프트에서 두산에 지명되면서 안우진에게도 학폭 논란과 '헤어질 결심'의 옳지 않은 용기를 부여한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https://n.news.naver.com/sports/kbaseball/article/022/0003756402
‘학교폭력’(학폭) 논란 중심에선 두산 투수 김유성(20)이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와 관련한 사과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사 본문 중-
두산의 투수가 된 김유성의 지명은 두산팬마저 비판이 강한 일입니다. 두산이 이유로 삼은 것들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미 징계를 받았으므로, 중복된 징계성의 지명 기피는 불공정하고, 젊은 야구인의 장래를 고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더우기 팀 주축이었던 투수 이영하는 학폭 재판으로 전력 외가 된지 얼마 안된 시기였습니다.
이 말처럼 법적으로는 충분한 처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지명 철회, 학폭 징계, 활동 금지에 대한 처벌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들 누구도 '용서'한 적이 없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어설픈 용서도 없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속이 좁아서? 복수심에? 아닐 것입니다. 예외가 예외를 낳고 또 그것이 결국 면연한 관례가 되니까요.
두산의 이번 지명은 사실 예견이 쉬이 되었습니다. 드래프트 당일 모두 인사에서 두산 김태룡 단장은 뜬금없이 "내가 38년 동안 야구계에서 일해 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라떼 시전을 합니다. 그리고선 김유성을 상위 라운드에 픽합니다. 마치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야구만 잘하면 돼'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약물 전력으로 논란이 많은 두산 4번 타자 김재환의 '봉인 해제'가 애교로 보이는 일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모든 것을 법적 기준으로 판단받으려 할지 모릅니다. 진행되다 보면 사회적 합의, 구성원들의 합의, 그리고 관련 스테이크홀더 간의 합의는 무용하게 되어 버리기 십상입니다. 최근 KBO의 최대 에이전시 '리코'의 한 구단에 에이전시 제한(3명 까지)을 두고, 법원에 가처분을 낸 적도 있습니다. 일단 KBO의 구성원들이 에이전시의 독점 구조로 발생할 수 있는 폐해와 저연차 저연봉 선수들의 기회 부여를 위해 합의한 사항을 '법적 판단'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번 안우진의 반격과 묘하게 연결됩니다.
KBO는 올해 창설 40주년을 맞이 했습니다. 6개 구단이 10팀으로 늘고, 관중도 부침이 있지만 연평균 동원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의 연봉은 1억이 우스운 이야기가 되었고, 작년 989억 원, 올해 현재까지 800억을 넘기고 있습니다. 양적으로 팽창된 만큼 질적 향상이 더디다는 지적은 안팎으로 있습니다. 경기의 수준, 선수들의 기술적 기량, 그리고 선수와 종사자들의 직업의식이 도마 위에 오르곤 합니다.
작년 코로나19 방역 수칙 위반으로 홍역을 치르고도 선수들의 워크 에식(work ethic)은 오히려 뒷걸음치는 듯합니다. 음주운전, 데이트 폭행, 학폭, 지역 폄하, 성 비위 등의 사법적 문제는 물론, 사인이 한계 효용이 있어 아낀다는 국민타자, 자신의 스트라이크 존과 맞지 않는다며 리그를 폄하한 2할 5푼의 27억 연봉 전직 메이저리거 한국인, 그리고 자신의 은퇴 팬미팅에 현금 결제와 취소 불가를 공언한 야구보다 이슈가 많은 선수 까지, 이들의 사회적 나이는 좀처럼 일반인들의 평균에 접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https://alook.so/posts/mbtPJ3
야구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늘 그럴싸하게 대답하곤 합니다. 확률과 통계로 ‘예측’이 가능한 스포츠라고 기업환경이나 실제 사회에서 접목할 부분이 많고 소소하게 인생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며 젠 체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야구는 그런 멋들어진 그럴싸함 이외에도 나를 끌리게 하는 이유는 ‘사람 중심’의 구기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
야구를 좋아하는 50대 필부입니다. 40년 동안 한 팀을 응원하는 골수팬이지요. 올해도 아내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 144경기를 모두 생방 고수하였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결과가 평균에 수렴하고, 실패가 성공의 담보가 되며, 영원한 독주와 승자가 존재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공평한 기회, 세 번의 스트라이크와 세 번의 아웃이라는 형평이 존재하니까요.
안우진 시태의 본질은 '학폭'의 사건 규명이 아닐 것입니다. 바로 '예외'가 쌓이는 것에 대한 경계입니다. 이란 이유로 한 번 봐주고, 저런 이유로 두 번 눈감아 주다가는 '예외'가 일상다반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약물을 안 하니까 상관없고,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후배들이 괜찮다 하니까 넘어가고, 한번 징계받았으니 용서된 것이라는 말. 그것은 '야구만 잘하면 돼'라는 인식의 불변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한번 약물의 힘으로 키운 근육은 운동만 지속되면 유지 가능하고, 학폭의 피해자들은 그 아픈 기억으로 야구 선수의 꿈을 접은 지 오래이고, 징계와 처벌이라는 것은 그 사건이 잊힐 권리를 갖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히 '야구만 잘하면'이라는 전제는 진짜 야구를 잘할 때 성립하는 것이지요. 그라나 우리 프로야구는 진짜 잘하나요?
여전히 우리 야구는 트리플 A 수준의 경기력, 선수 총연봉이 관중 수입의 갑절을 넘는 산업으로서의 낙제점, 소유와 경영을 구분 못하는 재벌에게 환호를 보내는 천박한 팬심, 그리고 무엇보다 구종과 구질도 구분 못하는 방송 중계진의 후진성이 현주소를 대변해 줍니다. '강속구'타령하다가 작년 올림픽 140km/h 도 안 되는 남미 변방의 노장 투수에게 빈타로 고전을 한 국제 경쟁력은 덤입니다.
프랑스어는 '예외가 없는 언어, 그러나 예외를 빼면 할 말이 없어진다'는 오명이 있습니다. 예외가 만연하면 민주주의의 가치인 보편적 자유가 사라집니다. 이제는 예외와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마흔 살의 프로야구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