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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Feb 28. 2023

결백 프로젝트 (Innocence Project)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결백의 기록>

1981년에 한국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사법처리 과정을 보다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접한 <결백의 기록>이 떠올랐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 사법 피해자, 그것도 장기 복역되던 중 무죄가 소명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은 길게는 40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끝내 무죄를 인정받은 이들이지만, 뒤에 숨은 하나의 조력자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84년 10월,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15세 소녀가 실종되었다. 수색에 나선 것도 허사, 결국 그녀는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강간당하고 칼에 찔린 채로 말이다.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1년이 지난 1985년 11월 크리스토퍼 애버나티라는 18세 청년이 경찰에 의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용의 지목의 이유는 증언과 증인이었다. 그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을 했다는 친구 데니스의 증언이 있었다. 정황 증거라 자백이 필요했다. 경찰은 40시간의 심문 끝에 그의 자백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는 경계성 지능을 가진 장애인이었다. 자백하면 집에 보내 주겠다는 경찰의 말에 억지 대답한 것이었다. 나중에 이를 안 부모와 변호인의 항의로 자백 철회를 하였으나,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1987년 기소된 그는 배심원 재판에서 1급 살인죄가 인정되어 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증거는 친구의 전언 정황 증언과 철회하려던 억지 자백이 다였다.

크리스토퍼 애버나티 (사진=innocenceproject)

15년 이상이 지난 후에 어느 대학생 기자에 의해 다시 조명되기 시작하였다. 끈질긴 추적 끝에 데니스가 자신의 증언은 거짓이라는 자백을 받았다. 자신이 저지른 경범죄를 무마해 주겠다는 경찰이 종용한 거짓 증언이라는 것이었다. 대학생 기자는 자신의 조사 결과를 캐세버그 변호서에게 알렸고, 수임되어 결백 증명이 시작되었다. 2013년에 캐세버그는 일리노이주 '결백 프로젝트'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재심 청원 끝에 법원은 DNA 분석을 결정했다. 2014년 8월의 일이었다.


피해자의 의류, 지갑, 질 내용물 등 총을 포함한 8개 증거물에 대한 분석이 진행되었다. 분석 결과 크리스토퍼의 DNA는 어디서도 검출되지 않었다. 대신 다른 남성의 부분 DNA가 검출되었다. 검출된 부분 DNA는 DNA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기 에는 충분치 않았다. 그럼에도 법원은 진범은 지목되지 않았어도 무죄의 증거로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2015년 2월 11일 석방되는 날 그는 가족들과 뜨거운 포옹을 할 수 있었다. 거의 30년 동안이나 1,000번 이상 아들을 면회 온 그의 엄마 및 가족들이었다.



미국의 결백 프로젝트 (Innocence Project)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05/2010100500075.html

이들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의 평균 나이는 27세였고 무죄가 밝혀져 출소했을 때의 평균 나이는 42세다. 뒤늦게 자유의 몸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감옥에서 허무하게 흘려버린 이들의 시간을 보상할 방법은 요원해 보인다. 셰크 변호사는 "진범을 잡았을 경우 72건의 강력범죄를 예방할 수 있었다"며 "억울한 수감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빼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철저한 증인 검증, 수사 전(全) 과정 녹화, 증거물 보관기간 연장 등 수사 시스템 개선을 통해 무고한 사람이 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사 본문 중-


다큐멘터리의 사례는 법과학이 만들어내 감동 실화들이다. 그러나 감동 밑에 분노도 일게 된다. 과학적 증거가 미비한 기소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DNA 분석이나 포렌식 같은 법과학이 범인 지목이나 범행 입증이란 수사 목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의 원리 아래에서는 이 법과학은 다르게도 공평히 쓰여야 한다. 억울하게 기소가 되거나 수감된 사람을 돕는 것. 사법정의와 인권보호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엄연히 ‘법과학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innocenceproject.org 홈페이지 대문

시작은 1990년대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한 DNA 기술이 바탕이 되었다. 억울한 사람을 풀어주기 위해 생겨난 ‘Innocence Project'는 민간 NGO로 시작되었다. 1992년 미국 예시바 대학 로스쿨 교수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지금 그 프로젝트가 국가적인 소송 관련 공공정책 재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법제도를 개혁하는 대표적인 유용한 시스템으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www.innocenceproject.org). 운영에 필요한 예산은 재단 적립금과 민간의 자발적 기부에 의해 충당되고 있다.

미국에서 결백 프로젝트의 도움을 요청하는 죄수들의 요청 건수는 일 년에 약 3천 건 정도나 된다고 한다. 실제 억울한 죄수의 통계는 불가능하지만, 대략 2~5%의 미국 죄수가 무고한 사람으로 추정된다는 연구가 있다(4~10만 명). 결백 프로젝트에 상주하는 6명의 변호는 사례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대상 사건을 심사한다. 그중에서 재조사가 실제로 필요한 사건을 진행한다.


현재 약 300건 정도가 실질적인 조사 단계에 와 있다고 한다. 결백여부에 대한 재조사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82% 정도가 DNA 검사 동의 필요한데 이것이 시간을 들이는 이유가 된다. 당시 당사자들은 물론 판사와 검사의 동의가 필요한데, 그들이 자신의 판결을 부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조산일보



'결백의 조건'이라는 것이 있을까?

풀려난 죄수들의 케이스로부터 무슨 원인에 의해 잘못된 판결을 받았는지에 대한 통계 (첨부 도표=innocenceproject.org)

위의 통계를 보면 거의 90%에 이르는 사건에서 잘못된 목격자의 증언(72%)이나, 밀고 등(15%)이다. 이들 모두 인적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일부러 거짓을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기억에 의존한 확증편향으로 또 다른 왜곡을 유발하기도 한다. 인간의 인지와 기억은 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최근 미국에서는 인종 간의 안면인식의 확률이 다르고 상이하다는 점도 고려된다.


이뿐이 아니다. 과학적 검증도 마찬가지이다. 정확하다고 인식되어온 법과학에서도 오류는 발생한다.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거나 부적절한 감정 기술이 잘못된 기소의 원인이 된다. 절반 가까운 사례에서 보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표작인 것이 '치아 검증', 즉 '물린 자국 검증'인데, 이는 희대의 살인마 테드 번디를 유죄로 입증한 기법으로 유행하였으나, 당시의 케이스가 요행이라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법과학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고 DNA 검사가 사용되지 않던 오래된 과거에 기소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놀라운 사실은 부적절한 법과학 기술 사용의 내역에 있다. 식별력이 떨어지고 주관성이 많이 개입되는 혈청학이나 모발 검사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정확하다고 알려진 DNA나 지문도 일부 포함된다. 법과학의 오류 위험성은 늘 상존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과학적 도구에 의한 분석 결과라도 맹목적인 과신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과학의 산출물은 결국 '의도'에 의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결백의 기록> 스틸컷 (사진=Netflix)

결백 프로젝트를 관찰하다가 지난 잊고 싶던 기억들이 피어났다. 검사, 검찰 수사관들의 협박과 능멸, 조롱과 핀잔은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모든 상식적 자각이 멈추는 하얀 방에 갇힌 기분이 들게 된다. 재백의 순수성은 늘 의심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아는 사람만 아는 나름 나름 불행의 기록이니까.


한국에서도 이런 활동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그 반작용이 만만치 않다. 우선 DNA 같은 증거 보존이 완결성을 지닌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입증의 방법이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주별로 DNA 증거 보관에 대한 법령으로 보존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법령은커녕 하위 규칙조차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법제도와 국민 법정서, 사법 정서의 경직성이다. 재심 청구는 반려되기 일쑤이다. 진범이 나타나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 최근 박준영 변호사의 사례는 그야말로 의지가 작용한 운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82%의 검사 당국이 재조사를 동의했다. 미국의 검찰은 주민이 직접 뽑기에 조직의 눈치를 비교적 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일반화의 정서이다. 자백, 증인, 포렌식을 진실 이상의 진리로 믿는 무조건적인 신뢰도 경계해야 한다. 과학적 조사는 과학의 도구를 쓰지만 사람이 의도하고 설계하고 해석한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과학적 도구는 죄의 입증뿐 아니라 무죄의 증거로도 활용되어야 법 형평에 맞는 일이 된다. 결백의 증거가 아닌 유죄의 증거가 요구되는 것이 사법 정의가 된다.


40년 전의 살인사건에서 얻은 사법제도와 미디어의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누군가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한 번 제대로 들어주는 성의, 그것이 국가와 사회의 존재기 아닐까 한다.



참고: 법과 과학 연구자 이승훈 블로그

https://m.blog.naver.com/lshdna2/22239812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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