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학다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 스테파노 Dec 23. 2022

벌레/버러지에 대한 짧은 생각들……

아직도 버러지가 있다

1.

얼마 전까지 세상에 회자되던, 세계관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포스팅하고 퍼 나르는 사이트, ‘일간베스트’라는 사이트가 화제였습니다. 흔히 이 곳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들을 반대진영이나 냉소적인 중간진영에서는 ‘일베충(蟲)’이라고 비하하여 부르곤 합니다. 예전부터 무언가 한가지에만 꽂혀 그 외의 기여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충(蟲)’이라고 부르곤 했던 기억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식충이’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가벼운 생각으로 ‘충(蟲)’이라는 말, 즉 우리말로 ‘벌레/ 버러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습니다.


2.

벌레와 버러지의 사전적 뜻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벌레: 1) [동물] 여러 무척추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사람, 짐승, 물고기, 조개 따위를 제외한 작은 동물들로,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두루 이른다. 2) 어떤 일에만 몰두하거나 열심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버러지: 사람, 짐승, 새, 물고기 따위를 제외한 작은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두 단어 다, 하등 동물을 빗대어 부르는 말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곤충’의 범위보다는 매우 넓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그 중의적인 뜻도 사용하는 모양새와 단어의 선택에 따라 매우 달라집니다. 한 단어는 한가지에 몰두하여 무언가 남다른 우월함이 부각되고 있다면, 다른 한 단어는 그 한가지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는 쓸모 없는 존재로 불립니다.


‘책벌레, 일벌레, 공부벌레, 연습벌레……’

‘밥버러지, 버러지만도 못한 놈, 버러지가 살 곳도 못 되는 누추한 집……’


3.

‘일베’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모두 버러지 같은 놈들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습니다.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정답을 채점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은, 익명으로 보호되는 활동과 행위들이 생산적이지 못하고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더 나아가 집단적인 사고의 오류로 폭력적인 양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일베버러지’가 아닌 ‘일베벌레’로 인정받고 싶다면, 당당히 존재를 밝히고 그 사유와 논리에 대한 주장을 정당히 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그들의 행위는 가벼운 항변이라기 보다는 무서운 폭력에 가까운 일로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그 ‘버러지 근성’에 감추어진 무시 무시한 비논리성과 인지부조리 –본인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때문일 것입니다. '본인들이 믿고 싶은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인지의 부조리를 낳고 사실과 망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이는 다시 사회적인 현상으로 '확증편향 - confirmation bias', '편향확증'이라는 믿음의 오류현상을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4.

가끔은 이러한 비판적 견해를 내 자신에게 우리 자신에게도 겨누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정의로운 세상, 진보적 가치관, 그리고 세상의 변화라는 것이 자칫, 절대 불변한 섭리로 인한 진리가 아니고 그저 내가 믿고 싶은 것이 아닌지 말입니다.


내 가치와 세계관을 잘 설명하지 못할 때, 반대 의견을 설득하지 못할 때, 그들에게 ‘버러지’ 같은 손가락질을 받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 아마도 지금 현재 이세상 권력으로 단단히 만들어진 의제설정과 프레임 속에서 이미 제 자신은 ‘버러지’로 취급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5.

아침부터 기분이 더러웠습니다. 자신의 확증적 편향은 거울상과 같이 세상을 비춥니다. 비뚤어지고 깨진 거울에 세상의 모습이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것처럼, 비틀어진 인지의 부조리는 자기 합리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세상의 비상식에 분노하고 절규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학습하고 내재화해서 스스로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이 버러지와 다른 차별점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작은 애벌레로 열심히 꿈틀대다가 나비가 되든, 나방이 되든 언젠가 날아 오르는 준비를 열심히 하려 합니다.


단 책은 읽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닙니다. 책은 일이 되듯 읽어야 합니다. 글도 그렇습니다. 스쳐 가듯 읽지 않고 보는 순간, 자의식의 필터로 저자의 기획과 의도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선입견으로 마무리하게 되니까요. 스스로 독서가 취미라는 생각을 경계하기 바랍니다. 독서를 특기로 만들어 보세요.


개미박사님 (사진=페이스북 릴스)


매거진의 이전글 메시는 진정한 GOAT, 그리고 GOD이 되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