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다르다
https://v.daum.net/v/20221225093416301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최전선 군인들이 암묵적으로 잠시 전쟁을 멈췄던 '크리스마스 휴전' 같은 동화는 우크라이나에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사 뉴스-
크리스마스에도 전쟁의 포격은 멈추지 않았다. 1차 세계 전쟁 때처럼 "아름다운 휴전"은 없었다고 리포팅은 안타까워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반쯤만 맞은 뉴스이다. 이유는 러시아 정교회 계열 교회들의 성탄절은 12월 25일이 아니라, 1월 7일이다. 물론 우크라이나 정부의 압박으로 일부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12월 25일로 "급하게" 성탄절을 바꾼 바 있다.
우리가 지금 쓰는 달력은 "그레고리 력"이다. '그레고리력'이란 1년의 길이를 365.2425일로 정하는 역법체계이다. 법적으로 명시된 위리나라 공식 역법으로 윤년을 포함하는 양력을 말한다(천문법 제2조 제4호). 현제 세계 표준으로 사용한다. 1582년에 예수회 신부가 제작한 것을 제정하여 실행하였다. 명칭은 달력을 제정하고 반포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전에는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던 "율리우스 력"을 사용하였다. 율리우스 력은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가 로마력을 개정한 새 역법을 공포한 것이다. 이 역법의 문제는 '윤년'을 일률적으로 4년 주기로 상정하여 실제 태양 주기와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역법의 어려운 상세는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일단 명기하 지면 다음과 같지만 암기할 필요는 없다. (나무위키 참조)
- 서기로 연도의 숫자가 4의 배수인 해(2024년, 2028년, 2032년...)는 기본적으로 윤년으로 삼는다. (율리우스력과 동일)
- 연도의 숫자가 100의 배수인 해(1900년, 2100년, 2200년...)는 예외적으로 평년으로 한다.
- 400의 배수인 해(1600년, 2000년, 2400년...)는 윤년으로 한다.
그레고리 력은 기독교가 분열 및 대립하던 혼란기에 탄생했다. 서방과 동방은 가톨릭과 정교회로, 종교개혁으로 개신교와 신흥 교파들이 나오던 시기였다. 가톨릭 서방 교황이 제정한 역법이었기 때문에 개신교나 정교회, 이슬람의 국가들은 율리우스력을 계속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서유럽 대부분은 16세기를 마감하기 전, 실용과 무역 등의 이유로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교회 문화권은 그레고리력이 가톨릭의 역법이란 이유로, 역사적으로 가톨릭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늦게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다. 러시아의 경우 20세기인 1918년에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면서 그레고리력을 도입하였다. 그리스는 러시아보다도 더 늦어서 1924년에서야 도입했다.
다만 이는 '국가'의 조치일 뿐 '정교회'의 교회력은 그레고리력과의 오차와는 상관없이 과거의 전통 율리우스력을 따른다. 가령 러시아 정교회의 성탄절이 1월 7일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양력과 음력을 세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러나, 정교회는 "개별 교회"의 독립성과 자주성이 보장되기에 지역에 따라 그레고리 력을 쓰는 교회들도 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11월에 부랴 부랴 크리스마스도 그레고리 력으로 하자는 일부 교구들의 움직임이 있었고 서방 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했다.
https://m.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066270.html?_fr=nv
이번 결정으로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교회들은 예수 탄생일을 그레고리 달력에 따라 12월 25일로 정해 축하행사를 할 수 있다. 그동안 러시아 정교회는 율리우스 달력에 따라 1월 7일을 예수 탄생일로 기념해 왔다. -기사 본문 중-
아직 그레고리 력을 쓰지 않는 나라는 네 곳이다. 이란(페르시아력 사용), 아프가니스탄(페르시아력 사용), 에티오피아(에티오피아력 사용), 네팔(비크람력 사용)
크리스마스 휴전은 익히 알려졌듯 1차 세계대전 때 일어난 일회이다. 러시아와 프랑스를 상대해야 했던 독일은 먼저 프랑스를 치기 위해 길목에 있던 중립국 벨기에에 침공했다. 벨기에와 사이가 좋았던 영국은, 중립국을 침범했다며 독일에 비난을 가하면서 전쟁에 뛰어든 명분을 얻었다. 독일이 프랑스로 향하는 길목엔 벨기에의 '이프르(Ypres)'란 지역이 있었다. 이곳이 독일군과 연합군이 대치하던 중에 일어난 '감동적인 사건', 바로 크리스마스 휴전의 무대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은 가장 참혹하고 잔인한 전투로 남아 있다. 주로 참호를 파고 각자의 참호를 뺐고 뺏기는 것이 전투의 양상이었다. 참호전을 할 수밖에 없었고 잔혹했단 이유는 무기의 성능이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무기인 기관총, 대포, 탱크, 전투기, 독가스 같은 무기의 위력을 체감하기도 전에 전쟁에 투입이 되었다. 파괴력에 상관없이 이전 전투 방식으로 적군 머리 하나하나를 노리는 것이 여전해서 살상이 잔인해졌다는 것이다.
참호 속은 그야말로 처참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플랑드르 지역에 속한 이곳의 토양은 진흙질이다. 비가 내리면 물이 빠지지 않아 참호는 진흙탕이 된다 평소에도 습하고 축축해 온갖 벌레와 이와 쥐가 뒤끓는 데에 전우들의 시체마저 치우기 버거운 상황이 되었다. 겨울은 더욱더 끔찍했다. 악조건에 혹독한 추위까지 덮쳐 병사들은 동상과도 싸워야 했다.
1914년 12월 24일이 됐다. 프랑스-영국 동맹군과 독일군은 각자의 참호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전투식량과 보급품으로 크리스마스 식탁을 차려놓고 프랑스군은 와인을, 독일군은 맥주를, 영국군은 위스키를 꺼냈다. 저마다의 술로 목을 축이며 참혹함과 공포와 외로움과 증오를 덜어냈다. 눈까지 흩날리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전야에 노랫소리가 퍼졌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영국 참호에서 시작된 노래는 독일 참호에서 제창되고, 이윽고 전장은 노래로 가득 차게 되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 3국의 장교들이 모여 그날엔 전투를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프랑스 장교는 얼른 진지로 뛰어가 샴페인을 가져왔다. 그들은 군용 식기에 샴페인을 따라 마시며 크리스마스 휴전을 위해 건배했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로도 잘 알려진 이야기는 이 것이 끝이었다. 2차 세계 대전 1944년 크리스마스는 연합구긔 패튼이 독일을 몰아붙이면서 바스통 지역을 초토화시킨 날이 12일 25일이었다. 전쟁에 낭만이 깃들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떠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한 주간을 알리는 세계 축제의 날이다. 그늘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날은 소소한 다툼이라도 그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지 않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총성과 포격이 난무한 날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 언론의 무지와 게으름에 대해 지적을 아니할 수가 없다. 러시아 정교회와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교회 간의 갈등은 "종교적 논쟁"이 아니라, 각 국가 지도자의 대리전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부터 취재 확인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성탄이 1월 7일이라는 사실은 구글링만 해도 나오는 사실 아닌가. 리포팅 내내 정교회 사제를 "목사"라고 외신을 그대로 옮겨 쓴 게으름은 어찌 보아주어야 할까.
우크라이나에 많은 사람들이 연민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 틀린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나라의 위정자의 행동과 지침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정치적 중립을 표방한 월드컵에 자신의 영상을 틀어 달라 종용하고, 전쟁 중에 고국을 비운 군통수권자의 행보는 비판의 지점이 있다. 유대계 우크라이나 정치세력이 정교회를 이용한다는 비판은 2014년 부터 지속되었다. 최대한 정치와 분리하려는 동방 정교회의 역사적 노력을 훼손하는 일들의 배후에 정치세력이 있다는 것도 서방 언론 누구도 취재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체적으로 옳다고 모든 것이 옳게 인지되는 것이 인지 부조리이며 확증 편향이고, 거짓의 다른 양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