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의 허망성
<난. 쏘. 공> 작가 조세희 선생의 이야기를 눈에 담다가 작품 배경이 되기도 한 장소에 생각이 멈췄다. 지금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인근의 상대원 공단. 그곳에 "샤니"라는 작은 빵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이 빵속에 넣은 누룩처럼 부풀어나 지금의 "SPC 그룹"이 되었다.
SPC 그룹의 역사는 1945년 해방시기로 올라간다. 황해도 옹진에 세운 빵집 "상미당"이 그 원조가 되었다. 허창성 창업주는 한국 전쟁 직전 서울로 빵집을 옮기고 이어 빵공장을 차려 양산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이 창업 일화를 드라마로 만든 것이었다. 이후 1970년대 '삼립 호빵'과 양산빵 '보름달'의 인기로 시장을 재패했다.
1989년에 두 아들에게 각각 삼립식품과 (주)샤니를 물려주는데, 양분한 가계 승계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이유는 삼립은 거의 독과점 수준의 양산빵 분야 독보적 존재였지만. 샤니는 상대원 공단의 조그마한 빵공장이 다였다. 그러나 경영에는 늘 인사이트가 필요한 법이었다.
삼립식품은 양산빵 시장의 위축으로 매출이 급감하자 폭망의 지름길인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호텔과 리조트 사업도 부진을 겪자 "국찐이 빵"을 마지막으로 부도처리된다. 반면 샤니를 물려받은 둘째 아들(현 SPC 허영인 회장)은 식품 시장 한 곳만 팠다. 호남 샤니를 인수 합병하고 배스킨라빈스와 조인트 벤처 BR코리아를 세우고, 그를 뒷받침할 물류회사 태인상사, 태인유통을 세운다. "태인샤니그룹"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파리바게트의 대성공으로 형이 망가뜨린 삼립식품을 인수하고 가계의 후천성 후계자가 되었다. 명예회장이 타계한 2004년 "SPC그룹"을 출범시켜 식품 제조, 유통의 강자로 자리 잡게 되었다. 허 회장은 열린 경영 마인드로 유명하였다. "해피포인트"같은 한 발 앞서가는 경영기법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했다. 작년에 소개한 발달 장애인 채용 기업 "행복한 베이커리"도 허 회장이 직접 챙긴 일이었다.
그러나, 2010년 대가 되면서 기업의 기조와 방향이 달라졌다. 그전부터의 조짐은 있었으나, 대거 외부 유입한 임원급 자원들의 영향이라는 판단이 제법 된다. 삼성 등 무노조 철학을 이식하게 되고, 편의점 체인스토어 경험자들을 위시로 불평등한 프랜차이즈 계약이 성행되었다. 얌체 가격인상은 물론, 장남의 회사 비용 유용과 마약 사건으로 기업의 이미지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연일 터져 나오는 열악한 노동조건의 하도급과 내부거래가 터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이르렀고, 기어이 "불매운동"까지 퍼졌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기업의 이야기"다. 마지막 커리어를 SPC에서 마무리할 펀했다. 이슈화된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일신상의 이유로 고사하였다. 이전에 수년간 컨설턴트와 클라이언트로 이어 온 인연들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애증이 가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크리스마스 전날 숙소 근처의 파리바게트 매장을 찾았다. 지인이 크리스마스 케이크 쿠폰을 보내 주셨기에, 일용할 빵들로 교환하러 들렀다. 분명 "대목"일 텐데 손님은 커피 한잔 마시고 나오는 30~40분 간 네 팀이 다였다. 점주 명찰의 주인이나 아르바이트 직원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SPC라는 기업 이미지와 불매 운동이 가맹한 자영업자들의 불행을 만들었다. 피해를 고스란히 보는 이들은 결국 소비자와 힘없는 소상공인들이었다. 그들의 재무구조를 잘 알기에, 가맹점 숫자가 유지되는 한 본사의 타격은 크지 않다. 그러나 어느 누가 이런 것을 알기나 할까.
2016년 이랜드 계열 케이터링업체(애슐리)가 아르바이트비를 가로챈 것이 드러나 공분을 사고 불매 운동이 번진 바 있다. 코로나 직전에는 수출 규제로 인한 일본 브랜드 불매도 있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불매였을까. 솔직히 아닌 것은 아니다.
아르바이트비를 가로챈 케이터링업체나 망언 일본기업, 그리고 노동권 파괴와 프랜차이즈 갑질 기업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그 근본 문제와 구조에 대한 지적과 압박은 필수이다. 그런데 말이다. 무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불매운동'이란 포스팅이 SNS에 넘친다. 그래 미운 건 안다. 하지만, 불매를 해서 어떤 효과와 혁신을 기대하는가는 스스로에게 정리해 물어보아야 한다.
우선, 기업의 문화, 지배 구조상의 소유자에 대한 항의와 압박이 '기업'에 전가되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기업=실제소유주체"로 단정하는 개념의 문제이다. 기업이 오너일가의 전유물인가? 아니다. 이해관계자는 투자자, 주주, 종업원, 관계사 등 다양하다. 그들 모두가 기업 경영의 stakehoders 즉 이해당사자인 것이다.
불매하고 기업이 무너진다 치자. 누가 가장 불행할까? 아마도 오너일가의 불행척도는 가장 후순위일 것이다. 종업원들이 우선 고용불안이 되고 주주나 가맹업주 하청업체 등 관계자들이 그다음이다. 이것은 암묵적으로 "오너=기업"이라는 잘못된 등식을 인정하는 것 밖에 안된다.
기업운영한다 하면서 각종 투자금과 대여금으로 개인 일상을 보전하고 회사 비용으로 철마다 차를 바꾸고 아이들 유학을 보낸다. 회사는 재무적으로 만성 적자이지만 그 자체는 관심이 없다. 내 통장에 돈이 쌓이면 되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양아치인 것이다. 일반 법인 운영자뿐이겠는가? 전문직종 개업자들은 더할 것이다. 의사, 변호사 이야기다. 이런 인간들은 기업경영을 하면 안 된다. 그 자체가 범죄이다. 배임이고 횡령이다.
나도 밉다. 이런 기업들.
그런데 원초적인 불매운동에는 여전히 '기업'에 대한 교육 허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경영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기업윤리'를 필수로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다. 기업의 종사자가 소비자에 대한 뒷이야기를 자신의 SNS에 갈겨쓴다고 치자. 보통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권고사직감이다. 이런 의식도 없는 기업들이 넘쳐 난다.
이런 막되 먹은 기업들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불매는 자칫 다른 이들에게 불편과 불행을 가중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가장 권력에서 먼 사람과 바로 그다음 먼 사람들을 갈라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기업들이 "불매 운동"에 움찔하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사회적 규범과 법제도의 완고성은 유지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의 "규제 철폐"라는 연극에 속아 넘어가면서 "불매 운동"에 열을 올리는 일은 멀리서 보면 아주 우스운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