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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단상] 눈 감아야 사는 세상

웅이가 여니에게

by 박 스테파노

넷플릭스 영화 <버드 박스>를 다시 보았다.

커플로 나와도 늘 외로워 보이는 샌드라 블록은 연령 현실감 있게 ‘엄마’로서 열연을 펼친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 연기의 모습이 낯선 만큼 극 중 맬러리(샌드라 불록)는 엄마가 된 자신을 애써 부정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엄마가 답이었다. 세상의 종말 같은 재앙이 닥쳐오고 결국 희망은 아이들이며, 그 희망의 보호자는 엄마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희망가로 여성의 모성을 이야기한다. 요즘 여성의 시각에서, 혹은 여성의 이야기로, 아니면 여성이 만든 소위 F등급의 영화를 자주 보게 된다. 이미 세상의 중심은 여성에게로 모성에게로 전환되었다. 그런 소중한 여성이자 엄마인 내 아내에게 잘 보여야겠다 늘 다짐만 앞선다.

눈을 감아야 산다! (사진=다음영화)


영화에서의 재앙은 ‘보는 것’으로 부터의 시작이다.

그래서 살기 위해 스스로 시각을 차단해야만 한다.


시각의 소실은 엄청난 혼란이 된다.

신체의 감각 중 일상이 가장 의지하고 가장 많은 사용이 되는 시각의 상실은 상상만으로도 답답한 공포감이 온다. 그래서, 눈먼 사람이 등장하는 스릴러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공포감을 준다. 멀리 <어두워질 때까지(1967)>, <블라인드 테러(1973)>로부터 최근 <눈먼 자들의 도시(2008)>, <줄리아의 눈(2010)>, <맨 인 더 다크(2016)>까지 공포 스릴러 영화에 단골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일부러 눈을 거려야만 생존하는 영화들은 소재의 축면에서 희소하다. 최근 소리에 민감한 과생명체와의 사투를 다룬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와 결이 닿아 보인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어느 카피처럼, 보는 것이 위험이 되는 종말이 올 수도 있다. 영화에도 생존하는 집단은 어떤 이유에서 이든지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볼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넷플릭스라는 판도라를 열러 재끼고 처음 본 것이 이 "눈 감아야 사는 세상"이다. 온통 세상은 그럴듯한 이야기와 억지 만들어 낸 담론이 가득하다. 가끔은 눈 감는 것이 여러모로 다행일 것 같은 세상이다. 그러나, 감은 눈을 유지하기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더라. 감은 척 실눈 뜨는 순간 세상의 엉터리들이 달려드니까.


조급함이 자꾸 눈을 뜨게 만든다.

그 조급하게 뜬 눈으로 본 어설픈 이야기에 발끈대는 순간 내 일상의 미천한 계회들은 모두 사라진다. 가끔은 눈을 감고 애써 보지 않는 것도 답인 시간이 되었다. 잠시라도 두 눈에도 평화의 시간을 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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