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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Feb 22. 2023

[세컷유감] 쌀은 죄가 없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정치면을 스킵한 지 꽤 되었다. 살아 내기도 퍽퍽한 일상 속에 정치의 국면을 지켜보자니 가슴만 꽉 죄어 온다. 여당은 온통 내년 공천권 다툼이고, 야당은 무능한 정부의 폐부를 정확하게 지적하지 못한 채 연일 헛발질이다. 개싸움들이 따로 없다. <동물농장>을 보니 아직 덜 성숙한 강아지들의 개싸움은 말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 국회나 정부나 사법부나 다들 동물농장의 법칙이 유용할 것만 같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들이 2022년 10월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양곡관리법 처리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민생에 관련된 일들은 매일 뒷전이다. 뉴스는 저런 정치상황을 이런저런 말로 영감훈수 두기 일쑤이고, 클릭과 시청률 위해 연신 트렌드의 뉴스만 쫓기 바쁘다. 한국처럼 외신 인용 기사 보도가 많은 나라도 없을 듯하다. 그런 중에도 주요한 법안들은 처리 계류 중이거나 행정부의 무조건 반대로 멈추어 있다. 최근 기사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어찌 되었을까. 우리의 식량안보와 밥상 물가에 직접 영향이 되는 이 법은 현재 야당주도 국회 통과를 추진하고, 정부는 거부할 기세인 이 법의 쟁점은 무엇일까?


쌀이 풍작이 되어 문제이다. 농자의 노력은 땅을 비옥하게 하고 결실이 넘치게 하는 결과로 나오는데 이것이 문제이다. 이미 쌀의 초과 수확의 문제는 20년이 넘은 숙제가 되었다. 그러나 경작하는 농부와 농토의 관성은 기술의 접목과 생산의 효율화를 거듭하며 계속 수확량 증대로 향하기 마련이다. 어느 농부가 풍작을 마다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문제의 해결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초과 수확분을 처리하는 방법, 농작지나 농민을 감소시키거나 인위적 조절을 통해 생산을 줄이는 방법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전자의 방법을 선택한 법안이다.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5% 이상 떨어지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논에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재배할 때 재정 지원을 하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당장 초과분을 처리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정부미가 늘어나 쌀값은 하락할 수밖에 없고, 정부 매입이 보장하는 쌀농사의 생산이 더 늘어나서 악순환이 된다는 지적이 있다. 일리가 없지 않다.


https://m.blog.naver.com/nlncm/222996359718

쌀 시장격리 의무화는 쌀 농가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보장을 보장하기 때문에, 쌀 소비 감소에도 불구하고 쌀 생산을 유지하거나 늘릴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지금도 평년 수준의 작황이면 20만 톤의 쌀이 초과로 공급되는데, 쌀의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오히려 쌀값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2030년에는 쌀 초과생산량이 63만 톤 수준으로 늘고,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쌀값은 오히려 하락하여 최근 5개년 평균 쌀값보다 10.5% 낮은 17만 원 초반/80kg 수준에서 정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격리에 드는 비용도 연평균 1조 원 이상으로 재정부담이 심화되어 청년농업인, 스마트팜과 같이 미래 농업 발전을 위한 예산을 잠식한다.
- 전한영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 인터뷰 중 -


오랜 기간 양곡관리 실무를 담당한 공무원의 이야기는 귀여겨들을 필요가 있다. 인위적인 '쌀 시장 격리'는 결국 '조삼모사'가 될 뿐이다. 혹자들은 '식량안보'를 위해 쌀의 수확량이 많은 것이 나쁘지 않다고 하는데, 그것은 세계 식량, 곡물 시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식량안보의 주요 전략 작물은 밀과 콩이다. 이 밀과 콩의 경작지와 생산, 수급량을 늘리는 것이 시급한 문제가 된다.


시장격리에 따른 시뮬레이션 (출처=한국농촌경제연구원)


대통령만 보면 답답하겠지만 공무의 영역에 있는 실무자들은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 농식품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인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 식량안보와 농가경영안정체계 구축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미래 농정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개편을 추진하였다. 특히, 가루쌀 산업 육성과 전략작물직불 추진을 통한 자급률 제고 등 식량안보의 질적 향상을 위해 가루쌀산업육성반을 새로 설치하였다.


쌀은 적정한 규모로 생산하고, 타작물 재배는 늘려나가는 실질적 전략이 된다. 가루쌀산업육성반을 신규로 설치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루쌀'이 무슨 대책이 되겠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쌀소비, 생산의 거울인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좋을 듯하다.


https://mbiz.heraldcorp.com/view.php?ud=20220904000062

일본 농림수산성 집계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1인당 쌀 연간 소비량은 지난 1962년 118㎏에서 2020년에는 50.7㎏로 절반 가량 감소했다. 일본농업신문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0%가 쌀밥을 “하루 1번 이하 먹는다”라고 답했다. 쌀 소비 감소 문제를 직면한 일본은 쌀가루 이용의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물가 상승 긴급 대책 중 쌀가루 상품개발에 종사하는 사업자 지원책을 내놓기도 했다. 수입밀에서 쌀가루로 원재료를 변경할 경우,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기사 본문 중-


가루쌀은 논에서 쌀처럼 재배하지만 밀의 특성을 가져 수입밀을 대체할 수 있는 품종으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 농업계도 올해부터 재배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식품기업과 연계하여 빵, 면, 과자, 맥주 등 다양한 가공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정부에서는 가루쌀산업육성반을 통해 농가에서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도록 종자 공급부터 재배 관리를 위한 컨설팅, 공공비축을 통한 안정적 판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식품기업에서 가루쌀을 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분 원료와 가루쌀 특성 정보 등을 제공한다. 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소비자 평가와 홍보까지 전 단계를 지원하여 가루쌀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전략작물직불제 (사진=농림수산부)


정부가 순방향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농수산물의 생산 예측은 신의 마음이라는 말처럼 인공지능의 시대에서도 큰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노력들이 무색해지는 탁상행정도 만연하다. 오히려 이런 헛발질이 더 부각되는 것이 언론, 미디어의 환경이 된 지 오래되었다. 문제의 부각도 좋지만 대안도 없는 조소와 비판이 자리 잡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어 놓은 또 한 가지의 방법이 "수확량이 많은 품종 퇴출"이다. 정부의 논리는 '고품질 수확'으로의 전환을 통해 경작지와 경자를 감소시키고, 수확량도 조절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미'가 이전 정부미가 아닌지는 오래되었다. 오히려 정부미가 품질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돌기도 하였다. 농부들의 노력으로 다수확 품종이 품질까지 좋아진 셈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3340029?sid=102

“밥맛이 나빠도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를 장려하더니 이제 맛도 좋고 쌀이 많이 나오는 다수확 우량 벼를 퇴출하라고 배부른 소리를 합니다.” 품질이 좋아 소비자들이 선호해도 수확량이 많은 벼 품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정부가 쌀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해 10a당 570㎏ 이상 생산되는 다수확 품종은 공공 비축미 매입 대상에서 제외하고 종자 공급도 중단하기 때문이다. 풍년 농사의 근원이던 우량 벼 품종이 찬밥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기사 본문 중-


'식량안보'의 문제는 중요한 이슈이다. 환경 문제, 인구 절벽의 문제와 더불어 교차하여 얽혀 있는 고차 함수가 되어 있다. 그러나, 정쟁에 가려 진정한 논의의 지점이 묻혀 버리고 있다. 공론은 여당이 맞니, 야당이 옳니의 정파적 다툼이 아니다. 초과 생산에 대하여 소비를 촉진하고 생산을 조절할 실제적 방법에 대한 의논이 필요하다.


국가별 식량안보 수준-세계식량안보지수(GFSI)에서 한국은 전년 대비 1.8 낮은 71.6을 받아 순위가 29위에서 3계단 하락한 32위. OECD 꼴지 (출처=월간통상)

정치권이 못하면 언론의 각종 미디어가 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생각이 깊어 보이지 않는다. 당장 이슈가 안되고 바로 트래픽으로 반영 안 되는 이야기들인 것이니까. 그래서 '대안'이라는 것을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맨 처음 '대안의 미디어 언론'이 되겠다는 이곳은 어떤 모습인가? 숨은 뉴스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 맥락을 잊는 큐레이팅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글'이 아닌 '사람'과 '행위'에 중점을 두고 가치부여를 하는 한 '정론'은 물론 '대안'도 물 건너간 것이 아닐까. 이 또한 애정 깊은 곳에서의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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