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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 생각] 고난의 의미

웅이가 여니에게

by 박 스테파노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루카복음 22.43-


부활주간에 다시 고난의 수난 주기를 떠 올립니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이 여전히 괴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터지고,

계획하던 것들은 조금씩 엇갈려 나가고,

어느 하나 속 시원히 매듭짓질 못한 하루 하루였습니다.

그런 하루 중에 이런 생각의 끄트머리라도 잡게 해 주심을 감사드려 봅니다


아이러니하게 예수의 고난의 시작은 성도 예루살렘의 열렬한 환영으로 시작됩니다. 예언자인지 진짜 메시아인지, 아니면 선동가인지 모르지만 대중은 종려나무를 흔들며 예수를 반깁니다. 5일 뒤에는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라 외치는 그들이 됩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고난의 일주일 성주간은 무슨 의미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운명에 순응하며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리스도 이전의 인간 예수의 고뇌의 일주일이었을지,

세상의 구원과 속죄를 위해 곧 일구어질 복음의 시대를 위한 그리스도 메시아의 절치부심의 일주일이었을지...


제가 생각하는 고난 성주간은 예수의 저항의 일주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패악에 대한 저항,

사람들의 정의롭지 못한 욕심과 방관하며 외면하는 일상에 대한 저항,

그리고 스스로의 타협과 자기만족, 그리고 자기 합리화에 대한 저항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결국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그러한 불편부당한 세상에 승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내 안에 있는 불편한 생각의 찌꺼기와

근거 없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미움과

자신에게만 관대한 이중적 잣대로부터의 저항의 시간으로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부활의 봄날,,,

거짓말 같이 우뚝 일어서 승리를 만나고 싶습니다.

내 안의 수많은 질시와 오욕을 무너뜨리고 말입니다.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그림: Gorge Cocco <Gethem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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