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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Jul 23. 202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은 더 그러하다.

수해, 노인의 날, 노인과 바다, 그리고 야구


"2021 프란치스코 교황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고독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신앙의 전수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기며 그들의 소명을 격려하고자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제정하였다.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와 함께 ‘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 26) 가까운 7 넷째 주일을 ‘조부모와 노인의  지낸다(주교회의 2021 추계 정기 총회)."-오늘의 미사-


오늘은 천주교에서 '노인의 날'로 미사 지향을 지낸다. 오래간만에 소통한 독거노인네가 알려 주었다.


감염병에 경제위기적 인플레이션에 수해까지.

가장 큰 위험에 놓인 이들은 '노인'이 아닐까 싶다. 참사의 경중이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인지는 그 무게를 가늠하는 경향이 짙다.


이태원 참사 같은 어이없는 젊은이의 죽음도 허망하고 가슴 아프지만, 큰비에 하천에서 쓸려 쓰리지고 산사태에 묻힌 노인들의 죽음은 그보다 덜 비극적인 것인가? 뉴스는 수해복구 작업 중 안타깝게 사망한 해병장병의 이야기로 가득이다. 평소 눈감고도 건너던 지류 하천의 잠수교에서 급류에 휩쓸린 60대 노인의 이야기는 그저 단신처리일 뿐이다.


'노인'의 기준은 뉴스들을 맞대어 보면 알 수 있을 만큼이다. 과장의 반올림을 한다면 인구의 4할이 노령인구인데, 인구의 4할이 소외되는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어부는 몇 살이었을까? 알려진 일화에 따르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쿠바 어부 푸엔테스는 1897년생이고 작품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53년이니 이 작품 속의 '노인'은 50대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2000년에 타계한 푸엔테스는 인생의 절반을 '노인'으로 살아간 셈이다.

영화 <노인과 버다>

푸엔테스는 알려진 이야기로는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 후반기를 보냈다고 한다. 단지 친구 헤밍웨이가 건넨 이야기 제공 사례 2만 달러(당시 미국 주택  2채 가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낙천적이고 건강한 인생관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노년이 길어지면 많은 노인들은 고통스러운 여생을 마주하는 것이 사실이다. <걸리버 여행기>의 불사의 나라 럭사 왕국처럼  그저 '억지 살아낼' 뿐이다. 그리고 세상은 <노인과 바다>의 'a boy'들 중심으로 돌아갈 뿐이다.


<노인과 바다>에는 대서양과 카리브해의 다양한 수생동물들만큼 '야구' 이야기가 많다. 조 디마지오를 신격화하는 내용도 인상 깊었지만, 헤밍웨이는 노인의 고초 가득한 여정이 야구와 같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7할의 실패를 딛고, 치고 달리기를 거듭하여 1점을 위해 돌아오는 오각형 집모양의 '홈베이스'는 푸엔테스가 돌아고픈 '나의 집'과 조응한다.


상어와 상아리에게 다 뜯긴 청새치가 인생의 목표인 적이 없었다. 대형 장외 홈런이든 빗맞은 바가지 안타든 목표는 홈으로의 귀환이다. 인생의 목표는 평온한 나의 집으로의 귀환일 뿐이다.

코엔 형제의 2007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살아간다면 말이다.

주력 정책이 '청년'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노인을 위한 나라'란 있을까...


이 폭염에 수해에 묻혀간 노인들의 영원한 안식과 영면을 기도해 본다.


https://naver.me/xPpZZ6dj


* 첨부 기사 

"수해 복구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50대 일용직 근로자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풍수해로 인한 사망이 아니어서 정부 집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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