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가 여니에게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봉우리에 이를 수 있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스인 조르바] 중-
그리스 문인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생각보다 잔잔 담담 심심한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내면에는 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크레타인이라 스스로 믿고 싶었던 소망의 모습과 그저 관조하고 현실에 정착한 오늘의 자아가 등을 맞대고 있습니다. 그 소망과 자아가 잘 드러난 작품이 <그리스인 조르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 작품을 읽고 얻어가는 보물은 저마다의 모습이듯, 예전 <희랍인 조르바>라 부르던 소설에서 '행복'이라는 말을 찾아듭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야망의 달성이 아니라, 인생이 한 편의 동화가 되었다고 깨닫는 순간이라는 것이지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사랑할 수 있고, 별밤을 이고 잠에 들며, 한편에는 물을 다른 편에는 뭍을 끼고 산책하는 순간 불현듯 찾아든 비현실감이 행복이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카잔차키스의 내면에는 '메토이소노'라는 가치가 핵심을 이룹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거룩하게 되기' 쯤 됩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해석하자면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물리적 변화이고, 포도즙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 변화이며, 포도주가 거룩한 성혈이 되는 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라는 것이지요. 인생 중 찾아오는 깨우침으로 이루는 거룩한 변모는 결국 내면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나,
죽음 따윈 없이 무감하게 사는 것이나,
험하고 가파르긴 매 한 가지입니다.
죽을 둥 말 둥 힘겨워하는 것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갈길 걷는
자기 자신이 더 무서운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어디를 선택하든지 평지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언제고 저 봉우리엔 다다른다는 것.
그래서 알고 보면,
인생 삶의 모든 날은 휴일일지도 모릅니다.
힘들어도 털썩 앉아 쉼표 찍으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곰탱이 남편의 사랑하는 아내와 나누는 아침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