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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Nov 04. 2020

《용서하기 그리고 용서받기》에 수록되어 있는 글들

― 머리말 中


용서는 의지의 문제이자 무의식의 문제입니다. 용서하겠다는 진심 어린 의지가 우리에게 있다고 해도 용서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의식이 원한의 뿌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한을 뿌리까지 뽑는 것은 여러 가지 깨달음과 수용 그리고 훈련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나는 용서의 땅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용서에 관한 다양한 것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용서에 관해 공부하면 할수록 이것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요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혹자는 “지구의 모든 문제들이 ‘대상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했는데요. 그 말이 더는 과장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용서만이 진실로 분노를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괴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감정은 분노입니다. 인류가 서로와 서로의 보금자리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 책은 전적으로 여러분 개개인을 위한 책입니다. 나는 인류 전체를 분노의 화염으로부터 구조해 내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런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인 변화는 부분적인 변화들의 합입니다. 나만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자기 내부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뿐임을 나는 모르지 않습니다. 이 책은 여러분이 가져다 쓸 수 있는 소화기입니다. 소화기는 저절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사용자에 의해 작동될 뿐입니다.


이 책이 용서의 땅에 정착하고자 하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여러분의 자유와 평안을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 달라도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해방과 평화이기에 나는 여러분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고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 미리 보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을 다 잊어버리는 게 용서일까요. 그것들을 없던 셈 치는 게 용서일까요. 상처를 무작정 외면하는 게 용서일까요. 그 모두는 용서가 아닙니다. / 흔히 잊어버리는 게 용서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용서는 단순한 망각이 아닙니다. ― 〈용서의 의미〉 중


내 발로 내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이 용서입니다. 나에게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지만 내가 거기에 더 이상 사로잡혀 있지 않는 것이 용서입니다. / 그래서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이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자유롭게 해 주는 행위입니다. ― 〈용서의 의미〉 중


복수(復讐)의 복(復)에는 ‘원한을 갚는다.’라는 의미가 있고 수(讐)에는 ‘원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복수는 ‘원수에게 원한을 갚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復)에는 ‘돌아가다. 되돌리다. 되풀이하다.’ 따위의 의미도 있습니다. 복수는 원한을 갚는 일인 동시에 원수에게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과거의 아픔을 되돌리고 되풀이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일까요. ― 〈용서를 가로막는 것들〉 중


용서에 관한 가장 큰 오해들 가운데 하나는 용서가 면죄(免罪)와 똑같다는 생각입니다. 면죄는 죄를 면하게 해 주는 것인데요. 면한다는 것은 책임이나 의무를 지지 않는 것입니다. / 용서는 잘못 자체를 없던 셈 쳐 주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묵인이 아닙니다. 잘못이 잘못인 걸 알면서도 그것을 그냥 모른 척해 주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 용서는 잘못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상태에서 하는 일입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잘못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잘못의 심각성을 경감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 용서는 미래지향적인 일이지만 과거를 삭제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 〈무엇을 위한 용서인가〉 중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타인을 용서하는 일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타인을 진실로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대하듯 타인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외부 관계는 내부 관계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 〈나 자신〉 중


이렇게 살기 싫다는 얘기를 매일 하면서도 내가 내 행동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내가 이렇게 계속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는 게 그나마 제일 편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 쓰레기장에서 나는 악취를 맡으면 모든 사람들이 얼른 숨을 참습니다. “아, 난 이 냄새 진짜 싫어!” 하면서 계속 그 냄새를 맡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뭔가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취하지 않습니다. ― 〈나 자신〉 중


본의 아니게 우리를 다치게 한 사람을 두고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것이 적절치 못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 존중받아야 하는 일입니다. ― 〈타인〉 중


머리에 담아 놓은 지식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일어난 통찰이 변화를 만듭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통찰은 지속적인 알아차림을 통해 준비됩니다. ― 〈과거〉 중


가해자가 나에게 물리적인 배상을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엎어진 내 인생을 들어올려 주지는 않습니다. 나를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게 하는 건 나뿐입니다. 오직 나뿐입니다. ― 〈용서하지 못하면 내 인생을 살지 못한다〉 중


어떤 기대가 너무 커져 버리면 우리 마음속에 현실 감각이 들어설 자리가 비좁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기대와 현실을 혼동할 수 있습니다. 그 혼동은 대상에 대한 인지의 왜곡을 일으킵니다. / 예를 들어 볼까요. ‘이 사람은 이걸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내 기대가 너무 커져버리면 나는 ‘이 사람이 이것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못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걸 못해.’라는 내 인지가 ‘이 사람은 이걸 할 수 있는데도 안 하고 있어.’라는 인지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 착각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착각 때문에 그 사람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 〈이미 벌어진 일, 바꿀 수 없는 일이다〉 중


화병은 단순히 속이 답답하고 뜨거운 증상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두통, 불안, 공황, 공포, 우울, 호흡 곤란 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 화병이 생기면 몸 곳곳에 통증이 일어나거나 소화 장애가 자주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화병 때문에 생리 불순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 〈원한은 나를 파괴한다〉 중


용서나 관계 회복은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 타인이 어떻게 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용서에 대한 강요나 관계 회복에 대한 채근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 정말 상대를 위해 상대에게 용서와 관계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요. 자기 마음 편해지려고 상대에게 용서나 관계 회복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요. / 내가 정말 상대를 생각하고 상대를 위한다면 그 사람이 내린 선택을 최우선으로 존중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이런 선택을 내리라고 하기보다는요. 내가 생각하는 최선은 내가 생각하는 최선일 뿐 그 사람의 최선은 아닐 수 있습니다. ― 〈가해자와 다시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 중


‘이런 일은 있어선 안 되는 거야.’라는 거부적인 생각이 괴로움을 일으킵니다. 이상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지은 괴로움을 스스로 버릴 수 있습니다. ― 〈나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중


누군가를 용서하는 데까지

오래 걸려도 괜찮습니다.

그게 보통이에요.

그 어디에도 사소한 상처는 없기 때문입니다. ― 〈오래 걸려도 괜찮다〉 중


용서를 빨리하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가장 큰 요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상처에 대한 외면이나 방치 또는 그것에 대한 과소평가입니다. 자신이 다쳤고 아픈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외부적인 문제 해결에만 몰두할 수 있습니다. ― 〈오래 걸려도 괜찮다〉 중


사과(謝過)는 자신의 잘못(過)을 이르는(謝) 행위입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똑똑히 말하는 것이 사과의 첫 순서이자 본질입니다. ― 〈사과의 목적〉 중


가족, 연인, 친구에게 사과할 때는 변화에 대한 약속과 그에 대한 실천이 더더욱 필요합니다. 관계에 생긴 균열을 메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가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 나는 내가 내 잘못보다 더 큰 존재임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그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요. ― 〈사과의 목적〉 중


사과와 용서는 ‘상품에 대한 금전 지불’과 ‘상품 수령’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과를 할 때마다 매번 그 대가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가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아도 마음으로는 그걸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사과하러 갔다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그 사람 때문에 내 마음을 크게 다치게 되는 것입니다. ― 〈상대가 나를 용서해 주지 않을 때〉 중


누군가가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실수나 잘못을 이해해 줄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삶을 문득 긍정하게 됩니다. 그 긍정적인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다르지 않은 타인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의지를 일으킵니다. / 우리는 우리가 들은 괜찮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해 주기 시작합니다. / 이렇듯 따뜻한 용서는 선순환을 만듭니다. ― 〈이 마음 간직하기〉 중


이런 면에서 나는 여러분이 좀 이기적인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거고 저거고 이제 다 상관 안 하고 나는 내 건강이나 챙기련다.’ 하는 단호한 태도로 자신의 마음을 깔끔히 비워 버릴 수 있는 힘이 여러분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용서와 육체 건강〉 중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만큼 누군가와 헤어져야 할 이유들은 줄어듭니다. ― 〈용서와 대인관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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