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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Nov 17. 2020

무엇을 위한 용서인가

죄는 취소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용서될 뿐입니다.
-스트라빈스키-



용서는 면죄나 묵인이 아니다


용서에 관한 가장 큰 오해들 가운데 하나는 용서가 면죄(免罪)와 똑같다는 생각입니다. 면죄는 죄를 면하게 해 주는 것인데요. 면한다는 것은 책임이나 의무를 지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는 잘못 자체를 없던 셈 쳐 주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묵인이 아닙니다. 잘못이 잘못인 걸 알면서도 그것을 그냥 모른 척해 주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는 잘못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상태에서 하는 일입니다. 용서는 가해자를 잘못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잘못의 심각성을 경감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미래지향적인 일이지만 과거를 삭제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용서는 가해자에게 이득을 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것은 가해자를 도망치게 해 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용서는 희석이나 망각이 아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건이 먼 과거의 일이 될수록 그에 대한 우리 감정의 강도는 낮아질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때 그 일을 잊고 하루를 한 주를 한 달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적인 희석과 일시적인 망각은 용서가 아닙니다. 가해자에 대한 원한, 적개심, 분노, 복수심 따위가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발적으로’ 해소하는 일입니다. 용서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이만 벗어나는 일입니다. 용서는 사건의 족쇄를 스스로 깨고 자유를 얻는 일입니다. 그 족쇄의 존재를 문득문득 까먹거나 거기에 서서히 적응되어 가는 일은 용서가 아닙니다.


감정적인 희석과 일시적인 망각 덕분에 피해자의 생활이 한결 여유로워지는 것은 분명한 희소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용서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용서는 의무가 아닙니다. 가해자에 대한 감정적인 희석과 일시적인 망각에 만족한다면 피해자가 굳이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고 살아가도 됩니다. 뭐든 본인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용서는 정당화가 아니다


본격적인 용서는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 데는 그 나름의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공감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당화와 다릅니다.


정당화는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 데는 그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이치에 맞는 행동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용서는 그 사람을 두둔해 주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허용해 주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실수합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실수합니다.


용서는 불완전한 인간의 실수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것을 실수가 아닌 것으로 바꿔 주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은 잘못입니다. 용서는 사실의 형태를 함부로 일그러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서는 사실의 형태를 가장 온전하게 보존합니다.



용서는 과거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누군가는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용서가 ‘우리 예전처럼 지내자.’라는 메시지를 가해자에게 전달할까 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자.’라는 메시지를 가해자에게 전달할까 봐.


용서는 과거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가 아닙니다. 과거를 복원하는 일은 무엇을 통해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그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사건은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모른 척한 채로 살 수 있지만 그것들을 이 세계에서 없애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용서는 가해의 주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덜어내는 행위이지 그에 대한 기억들까지 덜어내는 행위가 아닙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그 사건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 사건이 뒤바꾸어 놓은 세계를 똑똑히 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제대로 용서한 사람은 그 사건이 만들어 놓은 새 세계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니까요.


참된 용서는 붕괴된 자신의 생활을 직면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용서는 폐허 위에 새로운 집을 짓는 첫 단계입니다.


때로는 우리에게서 용서를 받은 사람이 우리 쪽으로 그런 메시지들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처럼 지내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자고.


그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용서를 어기는 행위가 아닙니다. 용서는 용서일 뿐입니다. 누군가는 용서를 통해 관계 회복을 할 수 있지만 모두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은 자기 계발서 《용서하기 그리고 용서받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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